벌레[虫] 이야기(2)
- 무지개도 벌레인가 -
도정 권상호
요즈음 조상 산소에 벌초하러 가거나 약초를 캐러 갔다가 벌[蜂(봉)]에 쏘여 숨지는 사고가 연일 발생하고 있다. 벌레에 물려서 고생한 기억을 누구든 갖고 것을 것이다. 딴 나라의 경우 거미[砥(지)], 개미[蟻(의)], 전갈[蠆(채)] 등의 벌레에 물려 죽는 일도 흔히 발생한다. 그래선지 벌이나 벌레를 보면 벌벌 떨 수밖에 없다. 조심할 일.
虹(무지개 홍) 자를 보면 무지개를 하나의 거대한 벌레로 생각했나 보다. 虹(홍) 자의 갑골문을 보면 구부정하게 생긴 용이나 뱀으로 보인다. 무지개를 아치형으로 두 줄로 그리고 양쪽 끝에다 용이나 뱀의 머리를 붙여놓았다. 이후에는 ‘虫(벌레 충)+工(장인 공, 공교할 공)’으로 썼다. 물론 工(공) 자는 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무지개의 그 고운 빛깔과 우아한 모양이 工巧(공교)하다는 뜻도 된다. 빛깔 고운 무지개는 彩虹(채홍), 무지개 모양의 다리는 虹橋(홍교)라 한다.
우리말 무지개는 ‘물+지게[戶(호)]’로 분석된다. 우리 선조들은 무지개를 ‘물이 만든 문’으로 보았으니 상당히 과학적이다. 무지개는 언제 보아도 무지 아름답다. 쌍무지개는 더더욱 무지무지 아름답다. 그래서 무지개는 우리 인생의 행복이나 아름다운 미래를 상징하기도 한다.
<추구(推句)>에 ‘春北秋南雁(춘북추남안) 朝西暮東虹(조서모동홍)’란 시구가 나온다. ‘봄에는 북쪽으로 가을에는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요, 아침에는 서쪽에 저녁에는 동쪽에 뜨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조개를 뜻하는 글자로는 貝(조개 패), 蚌(조개 방), 蛤(대합 합) 자가 있다. 貝(패)는 조개껍질을 열어젖히니 진주가 박혀 있는 형상으로 돈으로 사용되던 조개를 일컫는다. 蚌(방)은 丰(예쁠 봉)이 붙어있으니 일반적으로 모양이 예쁜 조개를, 蛤(합)은 그릇의 뚜껑이 덮인 모양의 合(합)이 붙어있음으로 볼 때 오동통 살이 붙어 그릇처럼 큰 조개를 가리킨다. 大蛤(대합), 紅蛤(홍합), 白蛤(백합)이로다. 아무리 좋은 조개라도 쪼개야? 먹을 수 있나니... 조개는 두 쪽이 붙어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어원이 ‘죡(쪽)+애’에서 왔다.
蛇(뱀 사) 자를 보면 뱀[虫]이 집[宀(면)] 안에서 사람[匕(비)]과 함께 살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허걱. 그러나 걱정일랑 뚝. 이는 필경 토담집에 구멍 내고 지붕을 훼손하는 쥐를 막아 주는 뱀이니 고마운 뱀이렷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 살 때 구렁이가 집 밖으로 가끔 나와 소스라치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주로 여름 장마철에 얼굴을 내밀면 아버님께서는 ‘해코지하면 안 된다. 집지킴이다.’ 라고 하며 타이르곤 하셨다. 평생 배를 땅에 대고 살아가니 뱀이요, 구멍에서 산다고 구렁이렷다.
토양을 살리는 눈물겹게 고마운 지렁이는 한자어로 蚯蚓(구인)이라 한다. 蚯(지렁이 구) 자를 보면 지렁이는 丘陵(구릉)에 살고 있고, 蚓(지렁이 인) 자를 보면 지렁이가 나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끌었다가 내밀면서 나아가기 때문에 引(끌 인) 자를 붙여 놓았다. 징그러운 지렁이가 알고 보면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벌레이기에 ‘地龍(지룡)’이라고도 하며, 우리말 지렁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蟄(숨을 칩)은 벌레를 잡으려[執(집)] 하면 숨는 모습이다. 驚蟄(경칩), 蟄居(칩거)로다.
蜜(꿀 밀) 자를 보면 ‘벌은 꿀을 반드시[必(필)] 집[宀(면)] 안에 쌓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口蜜腹劍(구밀복검)이란 ‘입으로는 달콤하게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함’을 가리킨다.
누에[蠶(잠)]는 누에고치[繭(견)]가 되었다가 천연 단백질 섬유인 명주(明紬)를 제공한다. 아싸. 緋緞(비단)은 명주 가운데 프리즘처럼 화려한 광택을 띠는 천을 가리킨다. 좋고.
떠돌아다니는 벌레로는 하루살이 蜉蝣(부유)가 있다. 귀뚜라미 蟋蟀(실솔)은 그 소리를 흉내 냈다. 그물 처 놓고 먹고 사는 머리 좋은 벌레는 蜘蛛(지주). 잠자리는 蜻蛉(청령), 올챙이는 蝌蚪(과두), 개구리는 靑蛙(청와), 개구리 소리는 와글와글 蛙聲(와성), 달팽이는 집을 지고 다는 소 모양이니 蝸牛(와우), 이 외에도 이는 虱(슬), 벼룩은 蚤(조), 파리는 蠅(승) 등, 끝이 보이지 않는다. 허걱...
인간도 버러지 같은 놈이 있으니 오랑캐 蠻(만)이다. 중국에서 많은 벌레, 특히 뱀과 더불어 사는 오랑캐를 일러 南蠻(남만)이라 하니 듣는 사람은 기분 더럽겠다.
蝕(좀먹을 식)은 벌레가 조금씩 파먹는 상황이다. 해를 파먹으면 日蝕(일식), 달을 파먹으면 月蝕(월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