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구(口)’ 이야기
도정 권상호
인생의 시작을 나타내는 한자는 시작할 시(始) 자이다. 이 글자의 모양은 여(女) 자에 코를 가리키는 사(厶)와 입을 가리키는 구(口)로 이루어져 있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 순간 탯줄을 끊고, 코와 입을 열어 주는 것이 인생의 시작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기도와 식도를 열어주기 위해 아기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때리는 간호사의 모습은 안타깝기까지 하다. ‘응아’ 하고 울지 않으면 위험하다. ‘목’을 틔우고 ‘숨’을 쉬어야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입은 하나지만 눈과 귀는 둘이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보고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 말할 왈(曰) 자에는 한 일(一) 자가 보이지만 눈 목(目)과 귀 이(耳) 속에 두 이(二) 자가 보인다.
입 구(口) 자는 입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口 자의 전서는 ‘ㅂ’과 닮은꼴로 미소 짓는 모양이다. 아기가 사랑스럽게 웃는 모습을 ‘방실방실’ 웃는다고 한다. ‘방글’, ‘방긋’, ‘배시시’ 등은 모두 웃는 모양을 꾸미는 말로 신비하게도 ‘ㅂ’으로 시작한다.
口를 발음할 때의 입 모양은 둥글다. 놀랍게도 우리말 ‘구슬’, ‘구르다’, ‘구멍’은 물론 한자 ‘공 구(球)’도 둥근 이미지이다.
말할 왈(曰)은 입속의 혀가 보이는 모양이고, 고백할 백(白)은 입김이 쏙 빠져나오는 모습이다. 고백을 하고 나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여기에서 ‘흰 백’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白 자의 전서 모양은 윗입술을 잡아당기는 모습이다. 그러면 아플 것이고 또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고백하면 百(일백 백) 가지 모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 더러는 죽음 선택한다.
말씀 언(言)은 입 밖으로 입김이 계속 나오는 모양에서, 소리 음(音)은 서서 입을 벌리고 혀를 보이며 노래하는 모습에서 나왔다. 곧 口에서 言이 생기고, 曰에서 音이 생겼다.
우리말로 ‘이’ 하면 앞니가 보이고, ‘아’ 하면 어금니가 보이듯, 한자로는 ‘치’ 하면 ‘이 치(齒)’가 보이고, ‘아’ 하면 ‘어금니 아(牙)’가 보인다. 그래서 이를 ‘치아(齒牙)’라고 하는 것이다.
말 재주가 뛰어나면 ‘구변(口辯) 또는 언변(言辯)이 좋다.’라고 하고, 소리를 매우 잘하면 ‘득음(得音)했다.’라고 한다.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을 잘할 때 현하구변(懸河口辯)이라 한다. 필기시험에서는 논술(論述)을 잘해야 하고 면접시험에서는 구술(口述)을 잘해야 한다. 세종시 문제로 여론이 구구(區區)한 걸 보면 정치가의 일구이언(一口二言)은 참으로 조심스럽다. 언어(言語) 생활이든 음악(音樂) 활동이든 言과 音의 옛 글자의 모습을 보면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글자는 입 위에 죄인을 다스리는 형구 ‘메울 신(辛)’ 자가 있었음을 명심할 일이다.
말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치(齒)에도 있다. 전서 口 자(ㅂ) 안에 윗니와 아랫니가 보인다. 말조심하라는 뜻에서 그칠 지(止) 자가 위에서 누르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나서 죽을 때까지 말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되도록 말하지 말라는 경계의 뜻에서 우리말도 /말/이라 하지 않는가.
권상호
권상호
제 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어떤 이는 필받으려고 벽에 붙여 놓고
어떤 이는 필받아 꼬박꼬박 읽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영광이 노원구민의 지혜로운 즐거움으로 이어지고
노원의 이목구비인 노원신문의 발전으로 이어져 나가길 기도합니다.
권상호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말들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말 중에 대부분은 남의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것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아픈 곳을 말하면서
그 말에서 기쁨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자기를 드러내려 합니다.
어떤 이는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할 뿐입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여러 이야기를 생각 없이 합니다.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확실한 이야기도 아닌 추측을 가지고 말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랑의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삶의 힘을 돋우어 주는 그런 말을 나눈다면
얼마나 우리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할까...
사람들은 드러내는 말보다는 밝은 미소로 침묵으로
조용한 물이 깊은 것처럼 깊이 있는 말로
사랑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바른 삶이 아닐까요?
어느 옛 시조의 말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말은 총칼보다 더 사람을 많이 해친답니다.
그러니 남을 해치는 일에 쓰면 안 됩니다.
하지만 쓰기에 따라 쓰러져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속 깊은 사람이 간혹 말을 하면
그 말은 남의 마음을 헤아려 하니
지니는 뜻도 깊어
남을 해하기보다 도움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