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不是土
도정문자연구소
赤, 走, 志 등에 공통적으로 ‘土’ 자가 들어있다. 과연 ‘흙’과 관련한 글자일까?
赤(붉을 적; ⾚-총7획; chì): 갑골문을 보면 ‘大+火’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火자는 山 자처럼 보이는데, 아래가 둥글면 火, 평평하면 山이다. 赤 자의 土는 大가 변한 것이기 때문에 흙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처음부터 사람과 관련한 글자이다. 赤 자에 대한 학자들의 해설을 보면
①어두운 밤에 큰 불빛(大火)를 보면 붉은 빛이다. 여기에서 ‘붉다’의 뜻이 나온다. 적색(赤色), 홍색(紅色) 적혈구(赤血球), 적신호(赤信號), 적도무풍대(赤道無風帶).
②사람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제사로 보기도 한다. 여기에는 다리를 꼬아 묶은 사람을 불에 태우는 모습의 烄(태울 교{지질 요}; jiǎo) 자가 힘을 실어주고 있다.
③사람의 옷을 모두 태워 버리다(烧光). 여기에서 ‘벌거벗다[赤身], 아무것도 없다’ 등의 의미가 탄생한 것으로 본다. 적신(赤身=裸體, 벌거벗은 몸), 적나라(赤裸裸), 적심(赤心,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적수(赤手, 맨손) 적수성가(赤手成家, 맨손으로 가산을 이룸), 적자(赤字).
④필자는 ‘사람이 큰 불꽃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본다. 그 불빛에서 ‘붉다’의 의미가 나오고, 더워서 옷을 걸치지 않게 되니 ‘벌거벗다(赤身),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 발전했다고 본다. 나아가 赤 자에는 ‘갓난아이(赤子)’의 의미도 있는데, 이는 아무 옷도 걸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기 때문으로 본다.
길쭉한 종방형의 전서에서 납작한 횡방형의 예서로 바뀌면서 大, 火 두 글자는 짓눌려 각각 土, 灬로 바뀌게 된다. 赤 자의 해서만 보고 본뜻을 찾을 수 없게 됨은 예서 탓이라 할 수 있다. ‘불탈 염(炎)’ 자는 난쟁이 예서 시대에 고생이 많았던 글자임에 틀림없다.
亦(또 역; ⼇-총6획; yì): 亦의 본뜻은 ‘겨드랑이’이다. ‘大’ 자가 사람이니 두 점은 겨드랑이 위치를 뜻한다. 좌우 두 점을 불꽃[火花]으로 보기도 하나, 이는 다만 위치를 나타내는 점으로 봄이 옳다. 따라서 亦 자는 점으로 위치와 방향을 나타내는 지사(指事)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자가 ‘또’의 의미로 사용되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腋(겨드랑이 액)’ 자를 다시 만들었다. 우리 몸 가운데 밤처럼 어두운 곳을 가리키는 모습니다. 亦 자 역시 예서 시대를 겪으면서 大 자는 ‘亠+灬’로 변해 버렸다. 초서는 예서에서 왔으므로 亠 밑에 가로 3점으로 쓰기도 한다. 亦是, 亦然.
奕(클 혁; ⼤-총9획; yì) 사람의 두 어께 위에 사람이 올라 탄 모습이다. 중국어 발음은 亦과 같다. ‘亦+大’의 모양으로 ‘역시(亦是) 크다’의 뜻이다. 奕奕하다: 크고 아름답고 성하다.
赫(붉을 혁; ⾚-총14획; hè): ‘赤+赤’으로 구성된 글자이다. 소리의 여음을 운(韻)이하 하는데, ‘赤, 亦, 赫, 爀’ 등은 운이 같다. 赫赫하다: 赫赫하다: 공로나 업적 등이 빛나다. 赫赫之功.
爀(붉을 혁; ⽕-총18획; hè): 불빛이 더욱 붉다. 爀爀하다: 가문이나 업적 등이 매우 빛나다.
嚇(성낼 혁, 웃음소리 하; ⼝-총17획; xià,è) = 간체자는 吓[hè]로 주로 웃음소리를 형용하는 글자다. 恐吓[공혁, kǒnghè] 으르다, 협박하다. 謔言嚇語(학언혁어: 우스개로 하는 말과 협박하는 말). 吓吓(하하): 하하, 껄껄.
赦(용서할 사; ⾚-총11획; shè): ‘赤+攵’로 구성된 글자이다. 아무것도(아무 죄도) 없으니 손에 매를 들고 훈도하며 ’사면(赦免)하다’의 뜻이다. 赦(용서할 사), 放(놓을 방), 散(흩을 산), 收(거둘 수), 牧(칠 목), 改(고칠 개), 數(셀 수), 敎(가르침 교), 效(본받을 효), 敢(감히 감), 敏(재빠를 민), 政(정사 정), 攻(칠 공), 救(건질 구) 자 등에서 보듯이 ‘攵(칠 복)’은 ‘회초리로 독려하다. 편달하여 좋은 길로 인도하다’는 뜻으로 주로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殺(죽일 살), 負役의 役(부릴 역), 毆打의 毆(때릴 구), 沈沒의 沒(가라앉을 몰), 자에서처럼 ‘殳(창 수)’는 ‘창으로 찔러 죽이다’의 뜻으로 좋지 못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斂(거둘 렴), 敗(깨뜨릴 패), 撤收의 撤(거둘 철) / 投(던질 투), 段(구분 단) 등은 예외이다. 赦罪(사죄): 허물을 용서함. 赦免(사면): 죄를 용서하여 형벌을 면제하다. 光復節 特赦.
走(달릴 주; zǒu): 갑골문을 보면 大와 비슷하지만, 走는 두 팔을 흔들며 빨리 달리는 모습이다. 그런데 현재는 ‘걷다’의 뜻으로 사용하고, ‘달리다’의 의미로는 ‘跑, 奔跑’를 사용하고 있다.
徒(무리 도, 헛되이 도; tú): 徒 안에 走가 있지만 자보(字譜)를 달리한다. 走와는 달리 徒는 土(tǔ)에서 발음과 의미가 모두 생성되었다. 갑골문을 보면 ‘土+止’로 구성되었으며, ‘여럿이 걷다’의 의미를 흙먼지가 날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부터 土가 위에 있음은 흙먼지가 날림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금문에서부터 彳이 붙음은 ‘길을 걷다’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먼지에서 ‘무리, 제자’의 뜻은 물론 ‘헛되이’라는 의미까지 나온다. 徒步旅行, 信徒, 門徒[제자], 徒勞無益(헛되이 수고함).
趙(나라 조, 작다, 빠르다; zhào): ‘走+肖’로 구성되어 있다. 肖(닮을 초; xiào)는 ‘작은 고기’ 곧 ‘다진 고기’(쇄육, 碎肉)로 여기에서 ‘닮다, 본뜨다’의 의미가 생성된다. 반대로 不肖는 ‘자식이 부모를 닮지 못하다’에서 ‘못나다’는 의미의 겸손어로 사용된다. 예) 不肖子=不孝子, 肖像畵. 따라서 趙 자는 작기 때문에 ‘조급(躁急)히 달리다’의 의미가 있으나 주로 姓이나 나라이름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간체자는 赵.
<참고> 趨(달릴 추)→추세(趨勢: 세상 일이 되어 가는 형편). 귀추(歸趨: 일이 되어 나가는 형편. 귀착하는 곳). 간체자는 趋. 속자는 趍.
起(일어날 기; qǐ): 발음을 살리기 위해 己jǐ를 붙이고 있으나 원래는 아직 두 팔이 생기지 않은 태아를 뜻하는 已yǐ였다. 이 아이가 일어나야만 걸을 수 있음에서 ‘일어나다, 발생하다’의 의미가 탄생한다. 아이처럼 쉬다가 다시 일어나 걷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起立, 起工, 起死回生
志(뜻 지; zhì): ‘之(zhī, 음)+心’이었으나 예서 이후 士로 바꾸고 ‘선비의 마음’을 강조했다. ‘마음이 가다’에서 ‘뜻’의 의미가 나온다. ‘뜻 의(意)’와 비슷한 뜻이나 意는 생각을, 志는 실천을 강조한다. 志士, 意志. 雜誌를 일본에서는 雑誌로, 간체자로는 杂志로 쓴다. / 雜(襍이 본자)=衣+集: 옷이 뒤섞인 모습.
時(때 시; shí): 본래는 ‘之zhī+日’로 ‘해가 가는 것’에서 ‘시간’의 의미가 나타냈으나, 나중에 ‘헤아릴 寸’ 자를 더하여 의미와 소리 ‘寺sì’를 나타냈다.
<참고> 寺(절 사{관청 시}; sì): 사찰(寺刹)은 ‘절, 사(寺), 도량(道場), 총림(叢林), 산문(山門), 사찰(寺刹), 사원(寺院), 암자(庵子, 庵), 난야(蘭若), 원(院), 선원(禪院), 포교당(布敎堂, 院), 정사(精舍) 또는 가람’ 등과 같이 다양하게 부르지만 일반적으로 ‘절’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절을 사(寺)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①원래 사(寺)는 외국 사신을 대접하는 공사(公司)였다. 후한 때에 마등(摩騰)과 법난(法蘭)이 처음으로 불교 경전을 가지고 와서 ②홍로사(鴻臚寺)에 머물렀기 때문에 사(寺)가 스님들이 머무는 절을 뜻하는 말로 변화되어 쓰였다. 후한 명제(明帝)는 이들을 위해 ③백마사(白馬寺)를 지어 머무르게 했는데 이는 그들이 백마에 불경을 싣고 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④도량(道場)은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장소이며, ⑤정사(精舍)는 vihara를 말하며 스님들이 정진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⑥난야(蘭若)는 아란야(aranya)의 준말로 번잡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즉 수행하기 한적한 수도처라는 의미이며, ⑦선원(禪院)은 참선하는 장소를 일컬으며, ⑧가람(伽藍)은 승가람마(僧伽藍摩)의 준말로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집을 뜻하며, ⑨포교원(布敎院)은 최근 산중불교가 생활불교를 표방하며 도심으로 나오면서 생긴 이름이다.
詩(시 시; shī): 원래는 ‘言+之’로 말이 가는 대로 표현하는 문학 장르를 뜻하였으나, 나중에 之를 寺로 바꾸어 말을 헤아려서 표현하는 ‘시’를 뜻하게 되었다.
侍(모실 시; shì): ‘사람이 가는 것을 헤아리다’에서 ‘모시다’의 의미가 나온다. 侍奉, 侍女, 內侍, 侍講院.
恃(믿을 시; shì): ‘마음이 가는 것을 헤아리는 사람은 믿음이 간다’에서 ‘믿다, 의지하다, 어머니’ 등의 의미가 나온다. 恃賴=恃憑, 恃德者昌, 恃而不恐, 恃鄰處女不娶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