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강북구 번동 두부마을
행복누림권
대개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운’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으나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란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문제는
하나의 네 잎 클로버를 따기 위해
많은 세 잎 클로버를 밟고 다닌다는 사실.
하나의 행운을 얻기 위해
많은 행복을 밟으며 살아간다는 현실.
행운은 좋은 운수(運數)이기 때문에
행운을 빌거나 행운을 따라야 한다.
찾는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행운은 요행(僥倖)의 선물일 뿐이다.
행복은 욕구의 충족과 만족에서 오는 기쁨이므로
행복에 젖거나 행복을 누릴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 얻고 누릴 수 있다.
행복은 행복(行福)하면 된다.
행복의 앞글자 幸(다행 행)자는 辛(고생 신)자를 깔고 있다.
고생을 많이 한 만큼 행복의 키도 커간다.
‘어려서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라는 말은 덕담이다.
내게 주어지는 고생은 겪을 게 아니라 즐길 일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행복의 뒷글자 福(복 복) 자는
하늘이 내리는 복[示(보일 시)]에
내가 짓는 복[畐(가득할 복)]을 더한 글자이다.
하늘이 내리는 복[示]은
하늘[亠]에서 햇빛·달빛·별빛[小] 삼광(三光)으로
보이고·알리고·가르칠 뿐이다.
내가 짓는 복[畐]은
스스로 생각하고[一]·말하고[口]·일궈야[田] 한다.
그 끝은 모두[宀] 부자[富] 되는 신나는 세상이다.
복은 빌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여기서부터 나부터
반드시 지어야 할 성스러운 일이다.
행복은 존엄하다. 그런데...
누군가 건드리나 보다.
행복추구권(幸福追求權)이 헌법으로 보장된 걸 보면.
행복은 복된 자리다.
용서와 배려의 두 손잡이가 달린 회전의자이다.
행복누림권은 생래적 마음법이다.
권상호
Birth부터 Death까지 Choice를 잘하란 뜻인데
대개 대입수능 마친 뒤에 찾는 것은
Bear와 Cigar와 Date가 아닌가?
권상호
Omnivore’s Dilemma - Michael Pollan
잡식동물의 축복은 자연에 있는 아주 많은 것들을 모두 먹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반면 잡식동물의 저주는 그 가운데서 먹어도 안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