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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문화교육원 사업개요
concept, masterplan 작성
다산 정신의 계승과 발전을 통해 global inspiration 진작
생태 환경에 맞게 건설
문화자원으로 up grade
edutainment [èʤutéinmənt] 에듀테인먼트(특히 초등학교 학생을 위한, 교육 효과와 오락성을 함께 한 TV 프로그램·영화·책 등).
지역 마케팅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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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anim -- 다산문화 만들기
We have a dream!
We have a spirit!
We have a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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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열정
조각 공원, 미술관 등 설립
global leader 육성
농악과 b-boys
판소리, 연극, 영화로 개발
실학강론
서양도 동양에서 solution(解法)을 찾고 있다.
지식, 정보화 시대, 문화 전쟁의 시대! -> 다산 문화 교육 절실 - path finding
다산의 삶과 리더십 연계
정약용 [丁若鏞, 1762.6.16~1836]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삼미(三眉)·여유당(與猶堂)·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탁옹(籜翁)·태수(苔叟)·문암일인(門巖逸人)·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안드레아.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출생이다.
1776년(정조 즉위) 남인 시파가 등용될 때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가환(李家煥) 및 이승훈(李昇薰)을 통해 이익(李瀷)의 유고를 얻어보고 그 학문에 감동되었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經義進土)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고, 1784년 이벽(李蘗)에게서 서학(西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假注書)를 거쳐 검열(檢閱)이 되었으나, 가톨릭교인이라 하여 같은 남인인 공서파(功西派)의 탄핵을 받고 해미(海美)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持平)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水原城) 수축에 기여하였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徐龍輔)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의로 있을 때 주문모(周文謨)사건에 둘째 형 약전(若銓)과 함께 연루되어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으로 좌천되었다가 규장각의 부사직(副司直)을 맡고 97년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 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있으면서 치적을 올렸고, 1799년 다시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순조 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장기(長鬐)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에 연루되어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다.
그 곳 다산(茶山) 기슭에 있는 윤박(尹博)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학문체계는 유형원(柳馨遠)과 이익을 잇는 실학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한 것이며, 또한 박지원(朴趾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北學派)의 기술도입론을 받아들여 실학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에 뛰어나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1910년(융희 4) 규장각제학(提學)에 추증되었고, 1959년 정다산기념사업회에 의해 마현(馬峴) 묘전(墓前)에 비가 건립되었다. 저서에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가 있고, 그 속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마과회통(麻科會通)》 《모시강의(毛詩講義)》 《매씨서평(梅氏書平)》 《상서고훈(尙書古訓)》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 《상례사전(喪禮四箋)》 《사례가식(四禮家式)》 《악서고존(樂書孤存)》 《주역심전(周易心箋)》 《역학제언(易學諸言)》 《춘추고징(春秋考徵)》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실려 있다.
[동아일보]
한국에서 시작된 실학(實學) 연구가 중국과 일본으로 확장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실학 연구가 21세기 새로운 지성(知性)의 개념을 동양에서 서양으로 발산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17일 경기 남양주시에서 열린 실학박물관 기공식을 축하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의 대표적인 실학 연구 석학들이 내한했다. 이를 계기로 본보는 송재소(63·성균관대 교수) 한국실학학회 회장과 거룽진(葛榮晋·71·런민대 교수) 중국실학연구회 회장, 고지마 야스노리(小島康敬·57·국제기독교대 교수) 일본사상사학회 이사를 초청해 한중일 3국의 실학 연구에 대한 좌담을 마련했다. 서울프라자호텔에서 진행된 좌담은 송 회장이 사회를 맡고 박현규(중문학) 순천향대 교수와 하우봉(사학) 전북대 교수가 통역을 도왔다.
▽송재소=한중일 3국의 실학 연구가 아무래도 콘텐츠에 있어서는 나라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거룽진=중국 실학의 역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중국 실학의 기원은 북송 시절의 장재(張載)를 기원으로 봐야 한다. 송대는 주희의 이학(理學·성리학), 육구연의 심학(心學·양명학), 장재의 실학이 정립된 시기다. 실학의 전성기인 2기는 명청대의 고증학이었고, 3기는 전통적 실학이 쇠퇴하고 가톨릭을 통한 서학의 영향을 받은 아편전쟁 전후기였다. 중국실학학회는 1992년 설립돼 14년이 지났는데 회원이 수백 명에 이른다.
▽고지마 야스노리=일본의 실학은 17세기 공맹사상을 독자적으로 연구한 고학(古學), 네덜란드를 통해 서양 실용학문을 도입한 난학(蘭學), 영미를 통해 서구사상을 들여온 서학(西學)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에 비하면 학자 수도 적고 실학이라는 개념이 크게 확산되진 못했다. 일본실학학회가 1991년 만들어졌지만 전국적인 규모는 아니다.
▽송=한중일 3국은 역사적 정치적 상황도 달랐고, 근대화의 속도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학의 공동 연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거=한중일 실학의 공통점은 민족이 위난에 처했을 때 등장한 사상이라는 점이다. 명청대의 중국 실학은 명이 무너지고 청이 세워지는 국가적 위난 상황에서 성립됐다. 한국의 실학도 17세기 봉건에서 근대로 바뀔 때 민족의 위기의식에서 태동됐다. 다만 문화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일본의 실학은 과학기술 등 잡학에 치중했고, 한국은 경세치용(經世致用)이라 해서 정치경제 개혁에 중점을 뒀으며, 중국 실학은 실체달용(實體達用)이라 해서 철학과 사상에 중점을 뒀다.
▽고지마=일본에서 실(實)의 개념은 실용성, 진실성, 실증성 등 3가지다. 실학의 이런 면모는 지식과 지혜의 의미가 포함된 지(知)의 전체성을 회복해야 할 오늘날의 시대 과제에 부응한다. 오늘날 지는 어느 한쪽으로 편중됐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처럼 파편화, 단편화, 상품화됐다. 이런 지의 유기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게 공동 실학 연구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송=실학이 전환기의 사상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또 실용, 진실, 실증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에도 적용된다. 실학이 지닌 치열한 현실 인식과 새로운 가치 체계의 모색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정신이다. 실학은 모든 시대에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21세기 실학의 의미를 찾는다면 뭐라 말할 수 있는가.
▽거=중국 유학사상의 큰 줄기를 송대의 이학, 심학, 실학이라 할 때 20세기 들어 신(新)이학과 현대 심학은 등장했지만 현대 실학은 수립되지 못했다. 21세기 환경보호와 경제발전을 병행하며 평화를 유지하려면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도덕과 철학이 필요하다. 현대 실학은 거기에 부응하는 사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당 기관지 광밍(光明)일보에 최근 실학 전문 칼럼을 신설하고 광범위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실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사상을 발전시켜 서세동점(西勢東漸)을 동세서점(東勢西漸)으로 전환시켰으면 좋겠다.
▽고지마=전근대는 덕의 시대, 근대는 지의 시대, 현대는 정보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정보는 일회용으로 흘러가는 것이고, 지는 축적되고 연계되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선 지는 버려지고 정보만 성행한다. 근대적 지의 개념도 아는 것이 힘이고 이익이라는 이해타산적 성격이 강했다. 반면 전근대적 덕의 개념에는 도덕적 실천이 포함돼 있었다. 21세기에는 정보도 아니고 지식도 아닌 지의 양식, 곧 전인격적이고 총체성을 갖춘 그런 지의 양식을 복원해야 한다. 실학이 그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송=두 분의 말씀처럼 실학 연구는 영원한 현재성을 지닌다. 연구를 기다리는 실학 원전 저술이 아직도 많다. 실학박물관 건립을 계기로 실학 연구가 중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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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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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인사말: 김남기 이사장
국방대 김종두 이사
현용순 교수
이갑노 이사
임진택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
양정순 이사 극단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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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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