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꿈
- 창의적인 여가활동으로 신명나는 직장생활을-
심사위원장 도정(塗丁) 권상호(權相浩)
먼저 수상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권면을 보냅니다.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끼듯이, 땀 흘린 만큼 보람을 느끼리라 믿습니다.
‘근로자(勤勞者)’라고 하면 부지런함과 수고로움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근로’라는 말보다 ‘일’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합니다. 인간은 ‘일’어나면 ‘일’을 해야 하고, 일을 ‘놓’으면 ‘놀’게 마련이지요. 이처럼 일은 우리의 삶의 의미이자 신성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일 자체가 주는 쾌감도 있지만 일을 놓고 잠시 쉬는 동안의 취미생활은 꽃의 향기처럼 인간의 인품을 더해 줍니다. 취미로 붓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즐거우며, 장소와 날씨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 ‘저비용 고효율’이라고나 할까요?
이번 근로자미술제가 36회라는 연륜이 말해주듯이 출품수와 작품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더러는 전업작가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기능올림픽에서도 증명되었듯이 한국인의 손은 정녕 미다스(Midas)의 손인가 봅니다.
저를 포함해 셋이서 심사한 분야는 서예장르로서 한글, 한문, 문인화, 그리고 새로 추가된 캘리그래피(calligraphy)가 심사 대상이었습니다. 서예에 허락된 수상작은 총 24점이었고, 후보작으로 1점을 점지했습니다. 심사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그 많은 출품자의 노고를 생각하면 소수의 수상작만을 뽑는 작업이란 살을 깎는 아픔입니다.
전체적으로 한번 돌아보고 출품작의 평균수준을 가늠하고 난 뒤에 본선 작업에 들어갑니다. 규격을 벗어났거나 오·탈자가 있거나 먹색이 좋지 못한 작품은 우선 배제합니다. 본문은 잘 썼는데 낙관이 아니다 싶어도 역시 배제 대상입니다. 따라서 선문(選文)과 필력, 참신한 장법을 살린 작품이 수상권에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최종 결선까지 나간 금상 작품은 이상의 요소를 모두 충족함과 동시에 붓질의 아우라를 느끼게 한 강순희 씨의 묵죽이었습니다. 신광훈 씨의 예서 채근담(菜根譚) 구, 정종열 씨의 국한문 혼용의 화석정(花石亭) 시도 끝까지 경합을 벌인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최근에 주목받기 시작한 캘리그래피는 활자 이외의 모든 서체를 아우르는 손글씨로 생활속의 글씨를 말합니다. 인터넷으로 예심을 거쳤지만 출품수에 비해 장르에 대한 이해와 성의가 부족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폰트에 싫증이 난 현대인에게 무한한 창의력을 길러주는 캘리그래피가 앞으로는 커다란 에너지로 다가오리라 믿고, 출품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출품작마다 일일이 심사평을 올려놓았습니다.
출품작 비율로 보면 한문이 절대적이고 수준 또한 높았습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수상권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한문은 예서체가 많이 출품되기도 했거니와 수준 또한 높았습니다. 해서와 전서는 기초가 탄탄했고, 행초서는 의욕에 비해 성과가 적었습니다. 한글은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았지만 오자가 더러 나타나 잘 쓰고도 떨어지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문인화는 전반적으로 고른 수준이었으나 출품수가 적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일을 먹고 사는 우리들. 우리는 일이 어려워 손을 못 대는 게 아니라,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일이 어려운 것입니다. 작품 창작도 일이고 출품도 일입니다. 내년에는 좀더 많은 일꾼?들이 동참하여 창의적인 여가활동이 신명나는 직장 생활로 이어지기를 갈망합니다.
2015.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