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가장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실수 없이 정도를 걸러가는 한분의
삶의 비결을 찾았다.
忙中閑
바로 그것이었다.
그분은 인사동 거리를
年晩하심에도 불구하고
동심어린 눈으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결국은 길바닥에서
싸구려 골동품
연꽃 수반을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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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안의사가 1910년 2월 중국 뤼순 감옥에서 쓴 이 행서종액은 "욕심없고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게 가질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단부에는 안 의사의 "손바닥 도장(掌印)"이 찍혀 있다.
이날 경매에서는 또 18세기 도자기 항아리 작품인 "청화백자파초국화분재문호"가 5억1천만원에 팔려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두번째 고가 기록을 세웠다.
최고가는 지난해 4월 7억원에 팔린 겸재 정선의 회화 "노송영지(老松靈芝)"였다.
이상문
서민들이 막 사용했다고 해서 막사발이라 불린 조선 초 백자그릇이 일본의 국보가 된 것은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진주 지리산 자락의 한 가마에서 만들어진 막사발이 일본에서 ‘이도차완’이란 이름의 국보로 지정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진주 지역에서 출토된 막사발은 다른 곳의 그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크기가 약간 작아 말찻잔으로 쓰기에 알맞고 구연부도 밖으로 눕지 않아 차를 마실 때 옆으로 새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사용하면 할수록 찻물의 색이 잔의 몸체에 배어 마치 그림을 그려넣은 듯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한다. 그러나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막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된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가져간 이 막사발은 수백년 동안 쓰이면서 상세한 족보를 남기고 있다. 찻잔에 얽힌 내력을 비롯해 찻잔으로 누구와 무슨 차를 마시며 무슨 이야기를 했다는 것까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이런 역사가 이 찻잔을 국보로 지정하게 만든 진짜 이유인지 모른다.
‘골동품을 알면 역사와 돈이 보인다’(이상문 지음,선 펴냄)는 이같은 골동품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우리 문화재를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은 어떤 것인지 일러준다. 고미술품은 오래 돼야만 값이 나가고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천년이 됐어도 가치가 없는 물건이 있는가 하면,시대상을 생생히 전해주는 명품은 몇십년만 지나도 문화재로 인정받기도 한다. 고미술의 값을 매기는 데는 무엇보다 그 작품에 녹아 있는 정신과 역사,즉 무형의 가치가 중요하다. 당대의 명필 이완용의 글씨는 친일 행적으로 인해 그 가치가 20만원대에 불과하지만,손바닥 낙관이 찍힌 안중근 의사의 ‘담박명지영정치원(澹泊明志寧靜致遠)’ 같은 글씨는 2억원이 훨씬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해야 뜻을 밝게 가질 수 있고,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해야 원대한 포부를 이룰 수 있다는 고귀한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골동품의 진위는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고미술 감정전문가인 저자는 “화가의 붓놀림은 백번을 고쳐 그어도 변함이 없는 법”이라고 말한다. 작가마다의 독특한 그림 버릇이 진위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얘기다. 예컨대 단원의 인물화는 얼굴 표정이 분명하다. 어느 곳을 주시하는지 눈동자의 방향이 확실히 찍혀 있다. 손의 모양은 정교하지 않게 시늉만 그리고 옷자락은 인물의 지위에 걸맞게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림이나 글씨에 찍는 유명작가의 낙관은 대부분 돌낙관으로,나무도장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하다. 나무도장이 찍혀 있으면 십중팔구 위작이다.
도자기의 경우 높이에 비해 몸통이 너무 크거나 작으면 가짜일 가능성이 많다. 크기에 비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도 안된다. 도자기 속에 감춰진 은은한 색깔도 캐낼 줄 알아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분청사기는 원래 색깔이 희면서도 연한 노란색을 띠고 있지만 모조품은 완전 흰색이거나 진한 베이지색에 가깝다. 저자는 우리 도자기의 발전을 위해서는 가품은 물론 재현품의 남발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외국 사람들은 흔히 “한국에는 고려청자가 있고 조선백자가 있으나 한국 자기는 없다. ”고 말한다. 업계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 가운데 80%가 옛 것의 재현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본다. 특히 북한에서 제작되는 청자는 고려청자와 너무 똑같아 전문가도 구분하기 힘들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도 당시에는 생활도자기였다. ”는 게 저자의 말.보다 새로운 기술과 재료로 창의성을 발휘해 우리 도자기의 실용성과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저자는 우리 문화재의 ‘대외개방’을 특별히 강조한다. 국보나 보물,중요 문화재 외의 것은 적극적으로 해외로 내보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100년 전부터 해외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하고 일본실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것 말고는 별도의 감정절차 없이 해외반출이 자유롭다. 문부성이 기증하는 문화재 보호 도구까지 싸서 보내는 정성과 기업들의 후원으로 일본은 이미 ‘문화대국’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중국 또한 올해 문화재 보호법을 크게 고쳐 국보나 보물,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 외에는 해외반출을 자유롭게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야흐로 ‘문화재 전쟁’의 시대다.
혼자만 보는 고미술품은 ‘고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대가 함께 공유하는 고미술품은 작품으로 거듭 난다. 골동품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유통방식은 경매다. 그래야만 억울하게 싸게 팔거나 너무 비싸게 사는 일이 없고 자금의 회전도 원활하게 된다. 최근엔 국내에도 고미술 전문 경매회사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고미술품 경매가 활성화돼 도쿄도내에만 50여 곳의 경매장이 있다. 고미술은 결코 사유물이 돼서는 안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1만 5000원.
김종면기자 <a href=mailto:jmkim@seoul.co.kr>jmkim@seoul.co.k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