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대신 비로써 소설(小說), 대설(大雪) 다 보내고
오늘은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양기가 새로 생겨나는 때
천기로 보면 일 년의 시작이 바로 오늘이다.
빨간 팥죽 속의 하얀 찹쌀 새알심을
나이만큼 헤아리며 먹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입 천정 델지 모르니 천천히 먹으라던
어머님의 말씀이 간절하다.
옛날에는 관상감에서 달력을 만들어 벼슬아치들에게만 나누어 주었는데
오늘날은 이곳저곳에 던져주는 광고 달력만큼은 흔하다.
하기야 저마다 주머니 속에 만세력(萬歲曆)-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니
일력, 월력, 연력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
그러고 보니 팥죽 맛을 못 보고 보낸 갑신(甲申) 동지로구다.
궁중에선 담장에 팥죽을 뿌려 액막이 삼았다는데
내사 내일 팥죽 빛깔 글씨를 써서 앙화(殃禍)를 막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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