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때아닌 큰눈이 내렸다. 3월중의 적설량으로 보면, 100년만의 폭설(暴雪)이란다. 설해(雪害)는 생각지도 않고 눈이 내리기 시작한 초저녁부터 뜻밖의 큰눈에 설래는 마음 가눌 길없어 붓질을 하다 말고 창문을 열어 놓고 완상하기까지 하고, 나뭇가지에 쌓이는 눈은 즐기고 차 위에 쌓여 가는 눈은 몇 차례 떨곤 하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신나게 대책없이 뛰어다녔다. 눈 탓인지 붓글씨 회원들도 서너 명 밖에는 오지 않았다. 흰눈에 여지없이 짓눌리는 먹빛이리라. 내 먹울림이 눈의 희롱에 질새라 힘차게 붓질을 했다. 열두 시쯤 해서 운전대를 잡았다. 수위 아저씨의 만류에도 불구하여 즐기기 위한 운전을 했다. 스릴 만점. 10여 년 전에 어느 시골에서 가족을 태우고 프라이드 차를 몰다가 빙판길에 굴러 의식을 찾았을 때는 의자가 머리 위에 매달려 있지 않았던가. 예천에서 문경새재 넘어 한양 오는 눈길이 자그마치 24시간의 대장정이었던 적도 있다.
오늘 같은 이런 대낭만이 국가 총체적 ‘대란(大亂)’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겨울눈을 분주히 쓸며 부엌길, 정낭길, 삽작길, 나아가 샘터길, 마을길 등을 분주히 내던 마을 사람들이 생각난다. 아이들은 눈싸움을 하거나 무덤이 많은 뒷동산에서 미끄럼 타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고속도로 날밤 새우기’라니. 모든 매스컴은 앵무새처럼 설해 상황만 읊어대고 있다. 뒷북치는 정부도 안타깝다. 재해 지역 선포하고 돈 대주면 되는 세상이 아닌가.
적어도 어린 시절의 눈은 근심 덩어리가 아니라 천사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