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9- 국가의 두 눈, 검찰과 경찰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39

국가의 두 눈, 검찰과 경찰

 

들메끈이란 신이 벗어지지 않도록 신을 발에다 동여매는 끈을 가리킨다. 먼 길을 가거나 위험한 산길을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들메끈을 단단히 조여 매야 한다. 오늘날의 신발은 공학적으로 잘 만들어져서 벗겨지지 않지만, 옛날의 신발은 잘 벗겨졌기 때문에 들메끈이 꼭 필요했다. 북한에서는 이를 신들메라고 한다.

맨발보다 신을 신고 뛰어야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텐데, 속담에 신을 벗고 따라가도 못 따라간다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옛날에는 맨발로 뛰는 것이 더 빨랐거나, 아니면 신을 신고 들메끈까지 매는 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상대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신을 벗고 따라가는 쪽이 더 빠르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은 지금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국방 등 어느 것 하나 발에 맞는 신발이 없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들메끈을 바짝 동여매야 한다. 그런데 청탁금지법만은 들메끈을 지나치게 조이게 매어 발에 상처가 날 지경이기도 하다.

해현경장(解弦更張)’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라는 뜻으로, 이 말은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 나온다. 한나라 경제 때의 동중서가 뒤이어 즉위한 무제(武帝)에게 올린 글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사회적, 정치적으로 제도를 개혁(改革)해야 함을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다.

 

지금 한나라는 진()나라의 뒤를 계승하여 썩은 나무와 똥으로 뒤덮인 담장과 같아서, 아무리 이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해도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법이 나오면 간사한 짓이 발생하고, 명령을 내리면 속임수가 일어나서 마치 뜨거운 물로 끓는 것을 그치게 하는 것과 같고, 땔감을 안고서 불을 끄려고 하는 것과 같아서 힘을 들이면 들일수록 무익할 뿐입니다. 이를 비유하자면 거문고의 소리가 맞지 않으면 심한 때는 반드시 줄을 풀어서 고쳐 매어야만 연주가 가능한 것과 같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치를 해도 제대로 행하여지지 않는 경우가 심하면 반드시 법을 바꾸어 개혁함으로써 교화를 베풀어야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새롭게 줄을 매어야 할 때 새롭게 매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악사가 있다 하더라도 연주를 잘할 수 없듯이, 개혁해야 할 때 개혁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현인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나라를 잘 통치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이래로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잘 다스릴 수 없었던 것은 개혁해야 할 때를 잃고 개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무제는 고조선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는 등 우리로서는 기분 나쁜 황제이지만 한나라 처지에서 보면 가장 강성한 국가를 건설한 황제였다. 조선 시대 말기에 발생한 갑오경장(甲午更張갑오개혁)의 명칭도 여기서 유래했다. 해현경장(解弦更張)의 해() 자는 (소 우)(뿔 각)(칼 도)의 합자(合字)로서 소의 살과 뼈를 따로 바르다에서 물건을 풀어헤치다’, ‘물건을 가르다의 뜻으로 바뀌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매야 한다. 먼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는 들메끈을 매어야 한다. 지금 그 역할을 하는 기관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어려운 때일수록 공공질서를 보장하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고 있는 경찰 또한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검찰(檢察)과 경찰(警察)이라는 말에는 공통으로 살필 찰()’ 자가 들어있어서 국가의 두 눈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돌림자가 있는 것을 보면 마치 형제처럼 느껴진다. 검찰과 경찰, 양찰(兩察)의 주된 역할은 국가와 국민의 앞길을 잘 살펴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다.

한자 중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제정일치 시대 제의(祭儀)에서 비롯한 글자가 많은데 살필 찰()’ 자도 그중의 하나다. () 자는 [] 안에서 제사상[]에 고기[]를 손[]으로 올리는 모양으로 제사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살피다의 뜻은 제사상의 제물을 잘 살핌에서 왔다고 본다.

그러면 검찰의 검사할 검()’과 경찰의 경계할 경()’의 차이는 무엇일까.

범죄를 수사하고 공소를 제기하며 재판을 집행하는 사법관을 가리키는 검사(檢事)’, 살피고 조사한다는 뜻의 검사(檢査)’에서 똑같은 검사할 검()’자를 쓰고 있다.

검사(檢査)라고 할 때의 검사할 검()’ 자는 어딘가 모르게 친숙한 글자라고 생각했더니,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숙제 검사의 표시로 파란 스탬프로 찍은 동그란 도장 안의 ()’ 자가 떠오른다.

나무 목()’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말하다라는 의미의 다 첨()’ 자가 합하여 이루어진 검() 자는 옛날 중국의 조정에서 귀한 문서를 나무 상자에 넣어 칼로 표시해 두고 다 함께 확인한 데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사람을 벌하려면 여럿이서 죄상을 두루 살피고 법을 적용함에 확인하고 또 확인해 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죄를 살피고 또 살펴도 잘못되거나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있으므로, 하급 법원의 판결에 따르지 않고 상급 법원에 재심을 요구하는 상소(上訴) 제도가 있는 것이다.

김 첨지, 박 첨지 등에서처럼 성 아래에 붙는 첨지(僉知)여러 사람이 모두 아는 사람이란 뜻으로, 특별한 사회적 지위가 없는 나이 많은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경계할 경()’ 자는 공경할 경()’말씀 언()’의 합자이다. ()에는 엄숙’ ‘신중의 뜻이 있으므로 경()엄숙히 말하다’ ‘신중히 말하다등의 뜻이 들어있다. 다시 말하면 경() 자에는 말로써 엄숙히 경계한다는 뜻으로 예방의 의미가 짙다. 경찰관의 제복과 모자를 눈에 잘 띄게 디자인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여러 친구로부터 똑같은 카톡 문자가 왔다. 오는 21일부터는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으면 6만 원 범칙금에 벌점 10점까지 받게 된다는 것, 혈중알코올농도가 0.2% 이상이면 최고 1천만 원 벌금에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경찰 5천 명이 투입되어 집중 단속 예정이라는 것도 덧붙였다. 엄숙한 경계의 소리이다. 그물을 쳐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전 예방의 목적이 크다 하겠다.

 

부정부패에 찌든 나라, 법을 이현령비현령으로 운용하는 나라일수록 검찰과 경찰은 절대 권력 조직이다. 후진국을 여행할 때마다 거리에서 만나는 비만자는 경찰이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자들은 예외 없이 제일 먼저 검경 쌍찰을 장악하여 수족으로 삼고, 검경은 권력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국민 위에 호가호위해 왔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검사진이 구성되어 현재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의 칼은 무나 배추 한 포기도 자르지 못할 정도로 무뎠다. 권력의 시녀나 다름없었다. 이번에 구성된 검사는 특별하니 그 칼날 또한 더욱 번뜩이리라. 단군 이래 최대 국기 농단 사건을 요리하는 데에는 정의로운 서릿발 칼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왕 내디딘 걸음이라면, 빨리 가기보다 정확한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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