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앙모존숭대통령(仰慕尊崇大統領) 존경하고 숭배하는 대통령을 우러러 사모합니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40
명절과 기념일, 그리고 국경일
2017년에는 명절보다 즐겁고 국경일보다 경사스러운 기념일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공휴일이지만 그날은 대한민국의 앞날을 밝고 희망차게 만들어 줄 감격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세종대왕과 같은 지혜와 이순신 장군과 같은 기개를 지닌 대통령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大統領)! ‘큰 대(大)’ 자처럼 크고도 널리 두루 살필 줄 아는 대통령, ‘큰 줄기 통(統)’ 자처럼 고통(苦痛)의 실타래를 풀어 소통(疏通)으로 국민의 마음을 채워줄 대통령, ‘거느릴 령(領)’ 자처럼 당신의 명령에 온 국민이 머리를 조아리며 따르고 싶은, 그런 대통령을 모실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유권자들도 투표 직전까지는 촛불을 들든, 태극기를 들든 신랄하게 토론하며 밤을 새워도 좋다. 그러나 성숙한 국민답게 선거 결과에는 깨끗하게 승복하고, 당선자가 멋지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 줄 줄 아는 그런 선진 국민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먼 훗날 이번 대선일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선진국 진입일, 곧 ‘선진국절’로 지정되기를 기대하면서 우리의 전통 명절과 기념일, 그리고 국경일에 대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하늘과 땅, 해와 달, 낮과 밤, 남자와 여자처럼 모든 것을 ‘양(陽)’과 ‘음(陰)’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음과 양은 대립적이지만 상보적 관계로서 일체 만물은 음양 이기(二氣)에 의해 생장 소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행도 목(木)·화(火)는 양에, 금(金)·수(水)는 음에, 토(土)는 그 중간에 있어 이들의 상생과 상극, 소멸과 성장으로 천지의 변화와 길흉이 일어난다고 믿어왔다.
‘그림자’와 ‘햇빛’의 이미지로 나타낸 음양(陰陽)이라는 두 글자는 만물을 생성케 하는 핵심요소이다. 이는 현대 과학에서 빛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지니지만 상보적인 관계에 있는 것과 같으며, 2진법으로 표현되는 컴퓨터 언어와도 그 원리가 서로 통한다.
음양오행설은 철학이라기보다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하나의 사유의 틀이었다. 이 사상은 수리관(數理觀)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1·3·5·7·9는 양의 수, 2·4·6·8·10은 음의 수로 여겼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홀수를 천수(天數) 또는 길수(吉數), 짝수를 지수(地數) 또는 흉수(兇數)로 간주했다.
명절(名節)이란 ‘유명한 날’, ‘이름난 날’의 뜻으로 민속적으로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며 즐기거나 기념하는 날을 말한다. 전통적으로는 ‘설날(1.1)’, ‘삼짇날(3.3)’, ‘단오(5.5)’, ‘칠석(7.7)’, ‘중양절(9.9)’ 등과 같이 똑같은 홀수인 길수가 만나는 날을 명절로 여겼다.
그러나 명절과 세시풍속도 시대가 바뀌면서 급속히 바뀌어 오늘날은 공휴일로 지정된 명절과 그렇지 않은 명절로 크게 나뉜다. 법정 공휴일로 지정된 명절로는 ‘신정’, ‘설날’, ‘추석’뿐이고, 그렇지 않은 명절로는 ‘제석’, ‘정월 대보름’, ‘머슴날’, ‘삼짇날’, ‘한식’, ‘단오’, ‘유둣날’, ‘칠석’, ‘백중’, ‘한가위’, ‘중양절’, ‘동지’ 등이 있다.
날이 밝아오거나 어두워 오는 것을 뜻하는 한자의 발음은 똑같이 /명/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글자는 ‘밝을 명(明)’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글자는 ‘어두울 명(冥, 暝, 溟)’이다. 날이 어두우면 손짓으로 사람을 부를 수 없으므로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글자가 ‘이름 명(名)’이다. 명(名) 자는 달이 막 떠오르는 모습의 ‘저녁 석(夕)’과 ‘입 구(口)’로 이루어져 있다.
/명/이란 발음은 울림이 크다. 그래서 새끼리 울며 서로 교신하는 것은 ‘울 명(鳴=口+鳥)’이고, 사람이 사람에게 명령하는 것은 ‘명령 명(命=口+令)’이다. 그래서 사람, 사물, 사건 등의 대상에 이름을 지어 붙이는 것을 ‘명명(命名)’이라 한다. 종소리의 울림을 크게 하려고 종 밑에 항아리를 묻었듯이, 그릇에 입을 대고 말하면 울림이 크므로 그릇도 명(皿)이다.
명절(名節)의 ‘이름 명(名)’은 사회적 약속이므로 쉬이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름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금속에 글자를 새기기도 했는데 이를 ‘새길 명(銘)’이라 하고, 새긴 글은 명문(銘文)이라 했다. 가장 어려운 새김질은 ‘명심(銘心)’이다. 마음에 새긴 일은 본인만이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명심하면 명심 덕(德)이 있다’라고 했다. 마음을 다잡은 만큼 이익이 있다는 말이니, 연초에 세운 계획을 수시로 검토하고, 반드시 실천할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이란 얼마나 믿을 게 못되면 ‘똥 누러 갈 때 마음과 똥 누고 올 때 마음이 다르다’라고 했을까. 작심삼일(作心三日)은 그나마 낫다 하겠다.
명절의 ‘마디 절(節)’은 ‘대마디’의 뜻에서 출발하여, ‘관절, 예절, 절제, 절약, 절개, 단락, 계절, 명절(名節)’ 등과 같이 엄청난 의미확대가 이루어졌다. 대마디에서 뼈마디인 ‘관절(關節, joint)’로의 의미확대는 쉬이 이해가 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마디처럼 질서가 있고 관절을 굽혀 표하는 것을 ‘예절(禮節, propriety)’이라 한다. 예절을 지키더라도 정도에 넘치지 않게 언행을 알맞게 조절하는 것은 ‘절제(節制)’이고, 물질적으로 알맞게 조절하는 것은 ‘절약(節約)’이다. 신념을 굽히지 않고 대마디처럼 굳게 지키는 태도는 ‘절개(節槪)’라 한다. 글이나 노래에도 대마디처럼 구획이 있으니 ‘단락’ 또는 ‘절(節)’이라 하고, 일 년을 구분하면 ‘계절(季節)’로 나뉜다. 명절(名節)도 해마다 일정한 날을 기념하거나 즐기기 위하여 정한 날이므로 규칙성에서는 대마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개교기념일, 창사기념일처럼 명절과는 다른 ‘기념일(紀念日)’이 있다. 기념일이란 축하하거나 기릴 만한 일이 있을 때 그 날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만든 날이다.
공휴일인 법정기념일은 ‘어린이날’과 ‘현충일’뿐이지만, 이 외에 ‘식목일’, ‘4·19혁명 기념일’, ‘근로자의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환경의 날’, ‘국군의 날’, ‘노인의 날’, ‘체육의 날’, ‘경찰의 날’, ‘문화의 날’, ‘순국선열의 날’, ‘무역의 날’ 등의 각종 기념일을 포함하면 연중의 기념일은 모두 60여 개나 된다. 종교기념일로는 부활절, 석가탄신일, 크리스마스 따위가 있다.
기념일(紀念日)은 한자를 달리하여 기념일(記念日)이라고도 쓴다. ‘벼리 기(紀)’ 자는 ‘뒤섞인 실타래를 풀어서 실마리를 정리하다’ 또는 ‘일이나 글의 뼈대가 되는 벼리’의 의미이고, ‘생각 념(念)’ 자는 ‘언제나 지금처럼 마음 깊이 생각하여 잊지 않음’을 뜻한다. 따라서 기념일이란 뜻깊은 일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속에 꼭 간직하기 위하여 만든 날이다.
국경일(國慶日)은 나라의 경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법률로 정한 경축일로 우리나라에는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의 5대 국경일이 있다. 국경일에는 집집이 국기를 게양한다.
‘경사 경(慶)’을 살펴보면 ‘사슴 록(鹿)’, ‘마음 심(心)’, ‘천천히 걸을 쇠(夊)’의 합자이다. 그렇다면 경사스런 일에는 축하의 마음과 함께 사슴 가죽과 같은 선물을 가지고 간다는 얘기인데, 이 글자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아마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없었나 보다.
연중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온다. 국민이 마음 편히 윷놀이하고 널뛰기할 수 있도록 나라 기강이 우뚝 설 날이 온다면 참 좋겠다. 아마 이번 설날은 선물 보따리는 작지만, 얘기 보따리는 가장 큰 명절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