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문화 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47
꽃샘바람 속에 불어온 사드 보복 역풍
속담은 단순히 속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로부터 여러 사람의 생각과 지혜가 모여서 비석처럼 굳어진 민간의 살아있는 격언이다. ‘큰집 잔치에 작은집 돼지 잡는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힘센 이웃과 가까이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일에 약한 쪽이 억울하게 희생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구한말의 대한제국은 발목 밑의 일제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국새를 빼앗겼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좌중우미(左中右美)의 힘겨루기에 짓밟혀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도 있다. 아무리 위급한 경우를 당하더라도 지혜롭게 잘 대처하면 위기를 벗어날 수가 있다는 말이다.
3% 정도의 염분농도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의인(義人)이 3%만 있어도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국운을 일으켜 선진국 반열에 씩씩하게 진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의인이 되어야 한다. ‘옳을 의(義)’ 자를 살펴보면 ‘나 아(我)’ 위에 ‘아름다울 미(美)’ 자가 숨어있다. 의로운 행동이란 남이 아닌 나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다.
‘가빈사현처(家貧思賢妻) 국난사양상(國難思良相)’이라는 말도 있다. 집안이 가난하면 현명한 아내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지러우면 훌륭한 재상이 그립다는 뜻이다. 마침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참여를 바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있음에도, 고심 끝에 현재의 국가위기 대처와 안정적 국정관리 및 공정한 대선 관리를 위해 대선 불출마 의지를 밝혔다. 탁월한 선택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친족 암살도 서슴지 않는 김정은발 북풍은 원래 냉혹한 바람인 줄 알고 있다. 게다가 미국발 사드풍과 중국발 사드역풍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중국발 사드역풍은 회오리바람으로 발전하여 경제, 관광, 문화 등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 불어온 미풍(미국 바람)과 중풍(중국 바람)은 계절풍 정도의 순풍이었다. 그러나 이 두 바람이 G2 엔진을 다는 순간, 지구촌의 작은 집 돼지는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군사문제와 경제문제를 분간하지 못하는 중풍을 잘못 맞으면 중풍(中風, 뇌졸중)에 걸리기 십상이다.
춘분을 앞둔 요즘은 꽃샘바람이 자주 불어오는 때이다. 꽃샘바람.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러나 꽃샘의 ‘샘’은 ‘샘물’의 ‘샘’이 아니라, ‘시샘’의 ‘샘’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원래 봄바람의 다른 이름은 동풍 또는 광풍(光風)이었다. 동풍은 샛바람이라고도 하며 동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다. 광풍은 화창한 봄날에 맑은 햇살과 함께 불어오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올봄엔 다사로운 동풍 대신에 뜻밖의 중풍이 몰아치고, 광풍(光風) 대신에 ‘미칠 광(狂)’ 자 광풍(狂風)이 불어오고 있다. 미친 듯이 휘몰아치며 사납게 부는 광풍은 참으로 고약한 바람으로 중국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바람이 바로 그것이다.
안방에서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패한 한국야구도 같은 형편이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 올림픽 금메달 등 국제대회에서 승승장구하던 대표팀이 아니던가.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미·중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미국은 중국의 사드 반대에 대해 ‘중국의 우려를 인정하지만, 이는 한국과 일본의 안보문제’라며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한·중 수교 25년의 성과는 소중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미 사드 배치를 고집하는 것으로, 이는 분명히 잘못된 선택이고, 한국 안보를 더 위험하게 하는 행위’라고 경고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세라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어느 한쪽에 편승하여 큰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가관이다. ‘두려울 구(懼)’ 자를 보면 위기일수록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만약 남북한이 미·중을 등에 업고 눈치 보는 나라로 전락한다면, 이는 한민족의 망신이요 꼴불견이라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정부와 매스컴의 주도 아래 한국 관광상품 판매를 전면금지하고 반한 감정은 폭력과 시위로 바뀌었다. 문화적으로는 한한령(限韓令, 한류 금지령)을 강조하고 사회적으로는 한국산 불매운동을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롯데가 중국에 선전포고했다며 벌인 롯데 제품 불매 운동이 한국 제품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는 한국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미국도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대응 전략을 세우고 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ZTE에 약 1조 3702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미국이 외국 기업에 물린 최대 벌금액이다.
북한의 핵미사일(核 missile) 위협에 대응한다는 사드 배치의 당위성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고 있다. 문제는 중국과의 갈등 심화이다. 중국은 한국에게 사드 철회를 요구하고 경제적 제재를 가하면서도 북한과는 제재보다는 협상을 앞세우는 이중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러한 안보 위기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과 국민의 흔들림 없는 자기 자리 지키기이다. 그런데 우리 야당은 거꾸로다. 중국이나 북한의 행동을 비판하기는커녕 사드 배치를 추진하는 정부를 향해 삿대질을 해대고 있다. 나라의 존망이 걸린 안보의 격랑을 헤쳐가기 위해선 내부 결속과 단합이 절대 필요하다. 적 앞에서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런 정치권이, 어떻게 국가의 안위를 지켜낼 수 있겠는가.
사드 배치는 어디까지나 북에 대한 자위적 조치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았거나 중국이 이를 말렸다면 사드는 불필요한 장치일 수 있다.
사드 보복의 역풍이 국내의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을 틈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심각함이 있다. 중국은 사드에 대한 여야 견해차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한목소릴 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온 국민은 정신 바짝 차리고 위기를 극복하도록 하고, 기업은 이런 때일수록 중국 법규를 잘 지길 것이며, 정부는 그야말로 효율적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중수교 25주년을 기념하는 한중우호음악회 ‘Spring Big Concert’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되었다. 한·중 성악가들의 열창에 3천여 명의 양국 관객은 격의 없이 모두 서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고 보면 사대 배치로 인한 양국의 갈등은 오직 정치적인 문제일 뿐이다. 양 국민 사이의 꽌시(關係)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지구 위에 마지막 남은 야생동물의 최대 피난처로 아프리카 동부 세렝게티(Serengeti) 초원이 있다. 얼핏 보기에는 다양하고 많은 동물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듯하지만, 다른 동물이 자기 영역에 쳐들어오면 평화롭던 초원은 아수라장으로 바뀐다. 인간세계도 이와 같다면 금수와 다를 바 없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저자인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 1892~1971)는 개인과 사회의 도덕 기준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도 사회의 어느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한다’라고 했다.
개인과 사회, 국가 간의 이상적인 윤리는 대립적 관계보다 상보적인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 개인의 자아실현과 사회나 국가가 추구하는 공동의 선이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