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48
中학교·重학교·衆학교
대한민국헌법은 대한민국의 최상위 법이다. 전체 10장 130조로 짜여 있는데, 제2장에서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중 헌법 제31조 1항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기본법 제8조(의무교육) 1항의 내용은 ‘의무교육은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으로 한다’, 2항의 내용은 ‘모든 국민은 제1항에 따른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인간의 일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인생의 초석이 되는 청소년기가 중요하다. 청소년기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시기는 아무래도 중학교(中學校) 시절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소년기라 할 수 있는 초등학교 때와 하이틴에 해당하는 고등학교 때를 이어주는 때가 중학교 시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생의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은 인생의 골든타임이다. 책임과 의무감을 깨닫고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가기 위한 준비 기간이다. 중학교 시절은 격랑이 이는 감정의 바다를 건너는 시기이다. 그 배는 이성의 섬을 향해 가고 있다. 아직 완전한 개인으로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로서 매우 위험해 보이지만 열정과 도전으로 무조건 노를 저으며 항해해 나가는 때이다.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인생에서 건너지 않을 수 없는 소중한 학창시절이므로 ‘소중할 중(重)’ 자를 써서 ‘중(重)학교’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따라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중학교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므로 ‘무리 중(衆)’ 자를 써서 ‘중(衆)학교’라 할 수도 있다.
14~16세의 중학교 시절은 이른바 사춘기가 시작되는 때이다. 사춘기에는 누구나 몸에 이상한 변화가 오지만 아무도 거부할 수 없다. 성숙을 위해 더 먹고, 더 뛰는 것은 기본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필자의 친구인 경찰서장이 모 중학교 특강 부탁을 받고 정장으로 당당하게 강당 앞에 섰다. 경찰서장의 위엄 앞에서도 3분은커녕 말이 나오자마자 떠들어대는 천방지축의 중학생들을 접하고 나서 다시는 학생들 앞에 서지 않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상한 봄인 사춘기. 어른이 볼 때는 아직도 어린데, 어린이가 아니라고 몸짓으로 보여준다. 어른이 되는 길목에 들어선 그들이다. 번데기가 우화를 통하여 성충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시기이다. 소동파의 명문장 ‘전적벽부’에 ‘우화등선(羽化登仙)’이란 말이 나온다. 이는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이 날개가 돋친 듯 날아올라 신선이 되고 싶다는 뜻으로 이상에 대한 동경을 표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의 열정과 야망은 ‘우화등성(羽化登成)’으로 어른이 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나는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吾十有五而志于學)’라고 고백하고 있다. 생이지지(生而知之)한 천재들에 비하면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는 공자의 고백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흔히 말하는 중2병을 겪은 뒤에 공부를 시작해도 누구나 공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공자의 고백은 이처럼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15세가 인생에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도 깨우쳐 준다. 공부가 아니라 운동이나 요리라도 15세에 뜻을 둔다면 그 분야의 공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른이 되고 난 뒤에 자신의 사춘기를 돌이켜보면 아쉬우면서도 아름답고, 쑥스러우면서도 웃음이 나오지만, 사춘기의 자식이나 제자를 바라보는 부모나 선생님은 언제나 긴장 속에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부모와 어떤 대화도 나눌 마음이 없는, 닫힌 중학생. 이유 없는 반항에 가끔 사고도 치고, 화가 나면 참지 못하고 맨주먹이라도 휘둘러야 직성이 풀리는 나이다. ‘세상의 중심은 나야!’, ‘세상에서 내가 최고야!’라고 생각하며 돈키호테가 되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 화장에 공들이고, 시도 때도 없이 외출하는 사춘기의 딸을 둔 부모도 있다. 늦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딸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도무지 그 속은 알 길이 없다. 물론 딸도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한다.
중학교 시절엔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우울증에 빠져 있다가도 금세 기쁨에 들뜨기도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의기양양하다가도, 스스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할 때는 자학하기도 한다. 또래끼리 무리 지어 다니기를 좋아하고, 감정조절이 안 될 때는 폭력을 쓰기도 한다. 흡연 음주로 어른이 된 양하며, 성적으로 어른 짓을 하기도 한다. 주차된 차량의 유리를 깨고 금품을 털기도 한다. 화물차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오토바이를 상습 절도하기도 한다. 질풍노도와 왕따의 시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때때로 그들은 선생님보다 더 힘세어 보이고 싶어 한다. 이러한 행동이 그들 사이에는 우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가장 교육하기 힘든 중2, 그래서 선생님들도 중2 담임은 맡기를 꺼린다. 이러한 사춘기 병을 일본에서는 ‘중2병’으로 명명한 적이 있다.
왜 이럴까.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다. 호르몬의 변화로 2차 성징이 나타나고 심리적 이유가 발생한다. 쉽게 분노하고, 조그마한 손해에도 울며불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이처럼 부정적 감정 반응이 증가하는 원인을 ‘전두엽의 가지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사춘기, 특히 중학교 시절은 사회적응을 위한 훈련이 필요한 때이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특별하면서도 양질의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예술이나 체육 활동을 통한 스트레스 배출도 중요하다. 자유학기제를 통하여 궁금한 직업 체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적성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도 맛보게 해야 한다.
농사나 등산을 통하여 땀의 고귀함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지한 학습이나 독서를 통하여 정적인 태도를 기르는 것 또한 필요하다. 종교나 명상을 통한 영성 체험도 이 시기에 이뤄져야 한다.
학부모 중에는 중학교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끼어 있으므로 중학교 과정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도 있다. 중학생이 되면 가속기는 완성되어 가나 제동장치는 미완성인 나이다. 이때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을 겪어봐야 한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온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때로 그들이 지나치게 장난치며 떠들더라도 어른들은 인내하며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중학교 시기는 몸과 마음이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 많이 자라고 변화하는 때이다. 신체적 변화도 커서 남성성과 여성성이 뚜렷이 구분되는 시기이다. 어떤 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인가? 장차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스스로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고 목표를 세우며 진지하게 대응전략을 세울 때이다. 칼릴 지브란이 말했다.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 마라”
아침나절에 산자락을 걷는다. 온갖 새 소리가 유난히도 요란하다. 새들도 사춘기를 맞이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