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 49 그래도 배는 띄워야 한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49

그래도 배는 띄워야 한다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정에 있는 한옥 주련 내용 중 다음의 대구가 눈에 들었다. 당나라 때의 문필가 한유(韩愈, 768824)가 쓴 권학시이다.

書山有路勤爲徑(서산유로근위경) 책의 산에 길이 있으니 근면을 지름길로 삼고, 學海無涯苦作舟(학해무애고작주)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으니 힘들어도 배를 만들어야 한다.’

부지런히 독서하고 꾸준히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배가 육지에 정박 중이거나 항구에 묶여 있을 때는 파선과 침몰의 염려가 없다. 그러나 그러려고 배를 만들진 않는다. 설령 난파선이 되고 가라앉을지라도 배는 띄우고 저어야 한다.

 

교통수단의 발달로 땅 위만을 걸어 다니던 인간이 바다를 건넘은 물론 하늘을 날 수도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이동 속도도 점점 빨라져 이제는 누구나 다 축지법 도사가 되었다.

수렵사회의 인간은 더 많은 먹을거리를 찾아 말을 길들여 타고 다니며 사냥을 하고, 배를 만들어 강을 건너고 물속의 고기를 잡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더 큰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좀 더 빠르고 그러면서도 안전한 교통수단을 찾아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육상교통의 발달은 수레, 자동차, 기차 등을 낳고, 수상교통의 발달은 뗏목, 돛단배, 여객선 등을 낳고, 항공교통의 발달은 비행기, 헬리콥터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드론까지 만들어냈다.

그런데 교통수단이 빠르고 거대해진 만큼 그 위험도 점차 커지고 있다. KAL기 폭파, 서해 훼리호 침몰, 괌 비행기 추락, 대구 지하철 화재, 천안함 참사, 세월호 침몰 등 생각하기조차 힘든 끔찍한 대형 사고들은 모두 교통과 관련한 사고였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지 않은가. 차고에 장식용으로 세워두기 위해 차를 만들지는 않았고, 항구를 장식하기 배를 만들지는 않았다. 차는 달리고 배는 띄우고, 비행기는 날려야 한다.

문제는 절대 안전이다. 안전 불감증에 젖어 있는 한 대형 참사는 피할 수 없다. 온 국민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감추거나 잊어버릴 게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나 고속도로 입구, 항만, 공항 등의 교통요지에 사고 현장 모습이나 사진 등을 전시라도 해야 한다고 본다. 304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가 침몰 1073일 만에 만신창이가 된 민낯을 드러냈다. 잭킹바지선으로 시험인양까지 거치며 고요와 긴장 속에 어렵사리 해저에서 끌어올렸다. 안타까운 사실은 세월호가 바닷속에 잠겨있는 동안 우리 사회의 비전과 경제성장도 가라앉아 있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세월호 대신에 갈등과 분열의 찌든 병폐를 가라앉히고 국민 대통합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와 고개 숙인 경제를 끌어올려야 한다.

참사 당일, 그날의 뼈아픈 기억을 상기하면 우리의 가슴은 미어질 듯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내 탓이오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없었다. 책임을 서로 전가하고, 심지어 외부 충돌설’ ‘핵폐기물 폭발설등의 괴담과 가짜뉴스까지 양산해 왔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 침몰 사건을 통하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부터 치료해야 한다. 모든 교통 담당자들은 물론 대통령 이하 각 분야의 공직자들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듯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칠 것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고 완벽하게 대비할 줄 알아야겠다.

 

우리 문학 속의 []’는 교통수단이라기보다 유희 장소였다. 성종의 친형인 월산대군(1454~1488)의 시조에 나오는 뱃놀이는 낭만과 여유 그 자체이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 낚시 들이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빈 배에 실은 것은 사람도 물고기도 아닌 욕심 없는 달빛이다. 물욕에서 벗어난 초탈의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가을 달밤에 작은 배 한 척을 강 위에 띄워 놓고, 무엇을 잡겠다는 생각도 없이 한가롭고 여유 있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유유자적(悠悠自適)의 경지랄까.

다음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연시조 어부사시사중 한 수이다.

앞강에 안개 걷고 뒷산에 해 비친다. / 배 띄워라. 배 띄워라. / 썰물은 내려가고 밀물은 밀려온다.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강촌에 온갖 꽃이 멀리 비치니 더욱 좋다.’

후렴구에 나타나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를 비롯하여 배 띄워라, 닻 들어라, 돛 달아라, 이어라, 닻 내려라, 배 세워라, 배 매어라, 닻 내려라, 배 붙여라등을 보면 고산은 아예 배와 함께 생활하며 즐기고 있다. 강호가도(江湖歌道)의 경지랄까.

 

그러나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전쟁가사 선상탄(船上嘆)’에 오면 배는 증오의 대상이 된다.

진실로 배 아니면 풍파만리(風波萬里) 밖에 / 어느 사이(四夷) 엿볼런고 / 무슨 일을 하려고 배 만들기를 시작했는가.’

배를 처음 만든 헌원(軒轅) 씨를 원망하고 있다. 이는 배를 타고 왜적이 쳐들어와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리라.

한편 우리 문학 속의 배는 낭만과 원망의 상반된 이미지 외에 희생의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다음은 일제 강점기에 시작 활동을 하다가 광복 1년 전에 열반에 든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시 나룻배와 행인이다.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도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

나룻배인 나는 당신이 흙발로 짓밟더라도,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급한 여울을 건너간다고 했다. 당신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희생정신을 엿볼 수 있다. 갖은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없이 당신을 기다리는 인내와 기다림의 자세가 돋보인다.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리는 무관심한 당신인데도, 언제든 다시 오실 것을 믿고 있다.

 

아무 흔적도 남지 아니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배 지나간 자리라는 말이 있다. 배가 이미 지나간 자리라면 아무리 증거를 찾아봐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배가 지나가지 못하고 가라앉았다면 숱한 상처의 흔적과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남긴다. 미수습자 9명의 유해가 조속히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한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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