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복날의 독설(毒舌), 개를 생각하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19
복날의 독설(毒舌), 개를 생각하다

삼복(三伏)이 지나갔다. 그런데도 덥다. 지구가 열을 덮고 있어서 그렇단다. 그렇다. 덮으면 더운 게 당연한 이치다. 심리적 차원에서 보면 리우올림픽의 열기가 더해졌기 때문에 더 덥게 느껴진다. 8.15 광복절 이전에 오던 말복이 올해는 광복절 다음 날에 왔다. 왠지 한자로는 다르지만, 광복도 복날로 느껴진다.
지난해와 같이 올해도 월복(越伏)이었다. 월복이란 초복에서 시작된 말복이 달을 건너 들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초복부터 말복까지 30일 간격이지만, 날수로는 31일이다.
알다시피 하지(夏至) 지나 셋째 경일(庚日)과 넷째 경일에 각각 초복과 중복이 들고, 입추(立秋) 지나 첫째 경일에 말복이 든다. 따라서 초복과 중복은 일정하게 10일 간격이지만 중복과 말복 사이는 입추 날짜에 따라서 10일 또는 20일 간격으로 바뀐다. 보통은 해를 갈마들며 바뀌는데, 예년과 달리 작년과 올해는 연거푸 20일 간격이었다. 그러니 마음으로 느끼는 더위는 더 길게 다가온다. 말복이 지났음에도 여지없이 국민안전처에서는 오늘도 거의 전국에 걸쳐 불안한 폭염 경보를 내렸다.
복날은 일진으로 봐서 경일(庚日)로 정해져 있다. ‘경(庚)’ 자의 고문자 형태는 ‘탈곡’하는 모습으로 음양오행으로 보면 금(金)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계절로는 가을에 해당한다. 가을을 생각하며 더위를 참으라는 의미인가 보다. 하지를 지나면 태양은 실제로 기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날씨는 더 뜨겁다. 이는 군불을 지필 때보다 지피고 난 뒤의 구들장이 더 뜨거운 것과 같은 이치리라.
우리 민속에 ‘복달임’이 있다. ‘복땜’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복날에 그해의 더위를 물리치는 뜻으로 고기로 탕을 끓여 먹으며 원기를 회복하는 일을 가리킨다. 궁중에서는 주로 쇠고기를 넣고 끓이는 얼큰한 육개장을 먹고, 민간에서는 삼계탕이나 보신탕을 끓여 먹었다. 보신탕은 본래 개장국이라 불렸으나 애견인들의 비호감을 염려하여 영양탕, 사철탕 등과 같이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북녘에서는 직설적으로 개고기국이라 했으나 1985년 김일성의 명령으로 단고기국으로 개명했단다. 뭐라 했든 더위를 피하고자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산간계곡에 들어가 탁족(濯足)하며 복달임하는 장면에는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낭만이 스며있었다.
그런데, 삼복(三伏)의 ‘엎드릴 복(伏)’ 자에 ‘개 견(犬)’ 자가 붙어 있어서 복날을 보신탕 먹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이는 복(伏) 자의 근원을 캐 보면 알 수 있다.
개는 가축 중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길들인 짐승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도 소, 돼지나 닭처럼 길러서 잡아먹기도 했겠지만, 수렵사회의 근본적인 개 사육의 목적은 ‘사냥’ 곧, ‘수렵(狩獵)’이었다. 수렵(狩獵)이라 할 때, ‘사냥할 수(狩)’와 ‘사냥할 렵(獵)’에 모두 ‘개 견(犬,犭)’ 자가 붙어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수렵(狩獵)을 간체자로 수렵(狩猎)으로 쓰고, 사파리를 수렵여행(狩猎旅行)이라 한다. 또 개고기를 구육(狗肉)이라고 하는 것처럼 견(犬)보다는 구(狗) 자를 주로 쓴다. 구(狗)는 구부정한 강아지의 의미로 비하하는 뜻이 담겨있다.
동남아시아에서 길들인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사냥하여 주인에게 물어다 주는 것처럼, 개도 화살로 잡은 사냥감을 주인에게 물어다 준다. 그리고 먹을거리를 달라고 주인에게 꼬리를 치며 엉너리를 부리는 모습이 ‘엎드릴 복(伏)’ 자이다. 여기에서 복(伏)은 ‘굴복하다, 복종하다’ 등의 뜻으로 확대된다. 복종(服從)이라 할 때의 ‘옷 복(服)’ 자의 발음도 복(伏)과 같으며 복종을 요구하기 위해서 주인은 아랫사람에게 같은 옷을 입힌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개의 복종에서 먹을 복(福)을 챙기기도 하는구나.
문자학자에 따라서는 복(伏) 자를 ‘개처럼 낮은 자세로 사냥감을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의 형상으로 보기도 한다. 사자와 호랑이도 먹잇감을 사냥할 때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목표물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본능일 것이다.
개는 후각과 청각이 매우 뛰어나다. 우거진 잡풀 속에서 사냥감을 찾아 뛰어다니는 개의 모습이 ‘우거질 망(莽)’ 자인데, 개의 뛰어난 후각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개 코를 뜻하는 글자가 ‘냄새 취(臭)’이다. 개는 특출한 후각과 청각 능력으로 인하여 시각장애인 안내는 물론 마약 및 폭약 탐지에도 이용된다. 집안에 함께 있던 개가 기척이 있으면 돌연 밖으로 뛰어나가는 모습이 ‘갑자기 돌(突)’이고, 그때 짖는 동작이 ‘짖을 폐(吠)’이다.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개를 일러 충견(忠犬)이라 하고, 또 개나 말처럼 윗사람이나 나라에 바치는 노력을 ‘견마지로(犬馬之勞)’라 한다. 이러한 개도 최후에는 불 위에 몸을 던져 인간의 보신을 위해 희생하니, 이러한 감동과 충격의 광경이 바로 ‘그러할 연(然)’ 자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와 달리 개 이외에도 먹을 게 풍족하다. 이제는 여태까지의 개의 노고와 희생을 ‘개똥같이’ 여긴 데 대하여 반성하고 감사의 뜻을 기려야 한다. 인간은 ‘개뿔’ 잘나지도 못했으면서 ‘개새끼’니 하며 ‘개소리’나 하고, 저는 ‘개’만도 못하면서 세상만사 ‘개떡같이’ 여기고, 오나가나 ‘개지랄’털며 발 닿는 곳마다 ‘개판’을 만들더니, ‘개좆’도 모르는 게 이제 더는 ‘개망신’ 당하지 않으려고, 개의 지위를 ‘애완견(愛玩犬)’을 지나 ‘반려견(伴侶犬)’까지 올려놓았다.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반려의 지위는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같은 개념으로 정서적으로 서로 의지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한다는 뜻이렷다. 그러고 보니 영화 ‘워낭소리’에서는 소도 반려동물이었네.
개는 일찍이 인간과 더불어 살면서 교감해 왔고, 죽어서도 온몸을 바쳐 인간에게 희생하므로 가축 중에 가장 가까운 반려가 되었다. 그래서 필자의 생각에 ‘개’는 ‘가까이’라는 말과 어원을 같이하지 않을까 하고 추정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의 고어는 ‘가히’였다. 그리고 이 말은 ‘가히> 가이> 개’의 변화를 거쳐 왔다. 그래서 말 새끼는 ‘망아지’, 소 새끼는 ‘송아지’라 하듯이 가히 새끼는 ‘강아지’가 되는 것이다. 만약 고어에서도 개라고 불렀다면 우리는 지금 ‘갱아지’라 해야 옳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개는 인간을 지키려고 집에 불이 나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집과 함께 타버려서 지금은 땀샘이 없는 개가 되었단다. 살아서 털이 많이 빠질 때는 더러운 ‘개털’ 같다고 욕을 먹었지만, 죽어서는 자신의 꼬리를 댕강 잘라 빗자루로 사용하게 하고, 자신의 가죽으로는 장구의 한쪽 북면이 되어 인간에게 맑고 짱짱한 소리를 들려준다. 죽어서도 너의 피부는 ‘복날 개 패듯이’ 마구 두들겨 맞아, 스스로 아픔으로써 남에게 ‘개즐거움’을 주나니... 인간은 화증이 나면 욕을 퍼부을 때마다 너의 이름을 빌려 스트레스를 풀지만 그런데도 너는 죽을 때까지 주인을 지키며 서로 눈빛을 나누다가 주인 곁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복날 안팎으로 떠오른 개 이미지는 다양했다. 복날에 살아남으려고 호랑이 모습으로 염색한 개, ‘삼복이 다가오니 우야만 좋노’하고 눈물 흘리는 개,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인간이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짐승이다. 이 세상에 똥을 좋아하는 개는 없어. 그런데 인간은 나를 똥개라고 부르지’하고 푸념하는 개...
복날에 인간에게 복수라도 하듯 따가운 햇볕이 마구 내리쬔다. NASA에 의하면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란다. 전 세계 평균기온의 상승으로 재작년보다 작년이, 작년보다 금년이 더 더웠단다. 일시적인 엘니뇨 탓이길 바랄 뿐이다.
dog 얘기 하다가 dogma(독단)에 빠질라. 이쯤 해서 dog설(毒舌)을 마친다. 개 박살 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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