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리우올림픽의 금빛 말들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20

리우올림픽의 금빛 말들

 

31회 하계올림픽이 삼바(samba)의 나라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삼바와 함께 막을 열었다가 삼바와 함께 막을 내렸다. 17일간의 열전은 삼바만큼이나 정열적이었다. 열정이 지나쳤던지 비와 바람이 간간이 식혀 주기도 했다.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진 지구촌의 불안 속에서도 사전의 염려와는 달리 정확하고 안전하게, 경제적인 행사로 잘 마무리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미 대륙에서 처음 열린 올림픽이었다. 물론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아직 열린 적이 없다. 206개국에서 참가한 15,000여 명의 선수들은 세 글자로 된 국가 약칭을 등에 달고 4년간 갈고닦은 기량을 겨뤘다. 대한민국의 약칭은 KOR(Republic of Korea), 북한은 PRK(DPR Korea)이었다.

새로운 세상(New World)’이라는 주제 아래 열린 2016 리우올림픽(Rio Olympics 2016)에는 난민도 참가하여 우리도 같은 인간임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로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다.

‘Rio’를 왜 리우라고 하는가. 이는 포르투갈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지만, 브라질만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었다. 영문으로는 ‘Olympics’라 하는 것은 ‘Olympic Games’의 준말이기 때문이다.

28개 종목 가운데 26개 종목은 2012 런던올림픽과 같고, 골프(남녀 개인)와 럭비(남녀 단체)가 리우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추가되었다. 우리나라는 204명이 24개 종목에 출전하여 4회 연속 ‘10-10’(금메달 10개 이상-종합순위 10위 이내)을 달성하자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9-8’을 달성하여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다. 금메달은 1개가 부족하지만 4개 대회 연속 종합순위 10진입은 이루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린 이번 올림픽은 필자에겐 홀림픽이었다. 매일 밤 열대야 속에서도 올림픽 게임의 생중계에 홀려서북한의 핵실험과 전기세 폭탄 및 사드로 인한 나라 안팎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어서 붙여본 명칭이다.

수출 부진은 물론 내수마저 얼어붙은 상황에 외국 여행은 눈치 보이고, 휴양지에 가 보았자 인파에 시달릴 것이며, 호텔에서 피서하는 호캉스(호텔 바캉스)는 비싼 편이니, 차라리 방콕으로 알려진 방캉스(방에서 보내는 바캉스)를 즐기는 편이 낫겠다. 물론 여기의 방콕은 타이의 수도 방콕이 아니라, ‘틀어박혀 나오지 아니한다는 뜻의 신조어이다. ‘홈캉스라고도 하는데, 이는 ‘home’()‘vacance’(바캉스)의 합성어이다.

유행어 중에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란 말도 있다. 스테이케이션은 ‘stay’(머물다)‘vacation’(휴가)의 합성어로 집이나 집 근처에 머물면서 휴가를 보낸다는 신조어이다. 새들이 자라 둥지를 떠나는 것처럼 자식들도 커서 떠나고 나면 저절로 스테이케이션족()이 되어 조용히 스스로 힐링하며 늙어가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그렇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동물애호가들은 개고생개 고생으로 알고 여행을 떠날 때도 개 펜션이 있는 곳을 선택한단다. 중국 속담에 재가천일호(在家千日好), 출문일시난(出門一時難)’이란 말이 있다. 집에 있으면 천 날이라도 좋으나, 문밖으로 나가면 한 시간도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때마침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이, 각본 없는 지구촌 스포츠 드라마가 매일 펼쳐지니 점잖음일랑 내팽개치고 TV 모니터에 시선의 비수를 꽂지 않을 수 없다. 피로하다 싶으면 눈을 붙이고, 일어나 산책하다가 무료하면 돌아와 붓을 잡기도 한다. 나만의 휴식법이다. 때때로 떼굴떼굴 뒹굴기도 하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 즐거움은 세상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

올림픽이 계속되는 동안, 태극 전사들을 비롯한 많은 해외 스포츠 스타들의 투혼과 언행은 큰 감동을 주었다. 이제 올림픽은 끝났지만, 명승부 뒤의 찡한 감동은 그대로 남아있다. 행복의 다른 이름은 감동이라 했다. 그래도 감동을 오래 안고 살아가는 데에는 메모가 최선의 방책이리라.

17일간의 열전 속에 금빛처럼 빛나는 말들이 전하는 것은 그만큼 참가 선수나 관계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간명하면서도 빛나는 말은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이다. 대회 초반 여자체조가 열린 경기장에서 만난 한국의 이은주(17·강원체고)와 북한의 홍은정(27)셀카를 보고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감탄하여 남긴 말이다. 남북한의 대치 상황은 점점 심해지고 있지만, 경기장에서 만난 두 사람이 평화와 우정을 나누는 모습은 화합의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위대한 사건이 되었다. 이 사건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평화통일로 가는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고의 자부심에서 나온 말은 모두 봤지? 내가 최고야이다. 이는 육상 100m, 200m, 400m 계주에서 트리플-트리플’(3회 연속 3관왕)의 위업을 이룬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의 고함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무하마드 알리나 펠레처럼 최고가 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던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가장 정겹고도 따뜻한 말은 어서 일어나! 우리 같이 완주해야지였다. 16일 여자 육상 5,000m 예선이 열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니키 햄블린(뉴질랜드)과 애비 다고스티노(미국)가 뛰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고 뛰다가 또 쓰러지기도 했는데, 이때 먼저 일어난 사람이 망연자실해 있는 경쟁자에게 손을 내밀면서 한 말이다. 이에 용기를 얻은 두 선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고 결국 절뚝거리면서도 결승선을 29위와 30위로 통과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23일 두 선수에게 올림픽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만든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가장 재치 있는 말은 남자 양궁 단체전, 개인전 2관왕을 차지한 구본찬(23·현대제철)아주 아름다운 밤입니다라고 생각한다. 기자회견 뒤 소감을 묻는 취재진을 보면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활짝 펼치며 한 말인데, 취재진이 지금은 낮이 아니냐고 되묻자 나는 아직도 (금메달을 딴 날의) 이라고 생각한다며 재치 있게 받아쳤다. 공항에서 구본찬은 '아름다운 밤입니다' 대신 "아름다운 한국입니다"라고 말하여 다시 한 번 재치를 보였다.

대역전 후의 멋진 고백의 말은 진종오(37. KT)“6.6점을 쏘고 나서 정신 차렸다. 전화위복이 됐다.”이다. 50m 권총에서 6.6점을 쏘며 한때 7위까지 곤두박질쳤던 그는 마지막 두 발에서 역전하며 올림픽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는 사격황제라는 찬사를 받았다.

기적의 주문도 있다. 할 수 있다는 승리의 주문을 왼 선수는 박상영(21·한국체대)이다. 패색이 짙던 게저 임레(헝가리)와의 남자 펜싱 에페 결승전에서 단 1점만 잃으면 끝나는 상황. 모두가 패배를 떠올릴 즈음 그는 믿기지 않는 연속 5득점으로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기적 같은 역전승의 기술은 막고 찌르기였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대역전의 원동력은 할 수 있다는 주문이었다. 그는 거짓말처럼 5점을 얻어낸 끝에 승부를 뒤집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모두가 졌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기적을 만들었다.

높은 유럽의 장벽에 막혀 4위에 그쳤지만 팬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리듬체조 요정손연재(22·연세대), 태극기를 펼쳐놓고 큰절을 하며 흐느끼던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김현우(28·삼성생명), 자신을 이긴 상대 선수의 손을 들어주던 태권도 동메달리스트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 그들의 빛나는 스포츠 정신에 갈채를 보낸다.

꿈은 현재가 미래와 대화하는 것. 우리에겐 아직 도쿄올림픽이 기다리고 있지 않니? 리우여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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