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6

밥과 법()

밥은 먹어야 맛이고 법은 지켜야 맛이다. 밥을 굶으면 몸의 기능이 떨어지듯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국가와 사회의 기능이 떨어진다. 따라서 모든 국가에서는 사회 안정과 질서 유지를 위해 법을 정하고 또 법으로 다스린다.

법은 밥만큼이나 필요하고 중요하다. 혼자 산다면 법이 필요 없겠지만 법 률()’ 자를 보면 가까운 사이[]라도 약속을 붓[]으로 적어놓아야 할 정도로 법은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법을 무시하고 싸우는 일에 몰두해 왔다.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재해뿐이었다. 재해는 뜻하지 않은 변고를 말하는데 돌이켜보면 자연재해보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인재가 대부분이었다.

불교에서도 법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불교에서는 설법, 법석, 법열등의 예에서 보듯이 부처의 가르침이나 계율을 법이라 하므로 불자라면 그 누구도 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밥과 법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밥을 먹지 않고서는 법을 지킬 수 없고, 법을 지키지 않고서는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 그래서 빅토르 위고 소설 <레 미제라블>장발장에서 보듯이 범법행위는 배고픔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토록 소중한 법이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여 만든 법인지, 아니면 권력 남용을 위한 통치수단으로서의 법인지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나라마다 법의 제정과정과 운용방법에서는 전혀 다름을 보면 법이라고 다 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더는 용납되지 않는 어불성설이다. 선법(善法)만이 진정한 법이라 할 수 있다.

근 보름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의 불공정 입시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09년부터 도입된 로스쿨은 입학 및 취업 과정에서 법조인 집안이나 상류층 자녀에게만 좋게 됐다는 세간의 반목 아래 현대판 음서제금수저아버지 소개서니 하는 유행어가 꼬리를 물고 등장했다. 법치가 잘되는 동네에 들어가 살고자 하면서 마을 입구에서부터 법을 어겼으니 논란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더구나 장차 법을 배우고 약자 편에서 변호해야 할 사람의 범법이니 꼴불견일 수밖에.

 

()이란 무엇일까? 서법(書法)과 어법(語法)만을 따지던 내가 입법(立法), 사법(司法)에 사용된 법 법()’ 자를 얘기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하지만 모든 염려를 한방에 접어두고 문자를 통한 법의 원초적 의미쯤은 유추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순우리말에 법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없다. ‘법 없이 살 만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일까. 우리 한자에는 법 법()’ 자처럼 음과 훈[]이 똑같은 글자들이 더러 있다. ‘책 책(), 문 문(), 덕 덕(), 굴 굴(), 귤 귤(), 죽 죽()’ 등이 그러하다. 이런 말들은 우리말에 유입된 한자어로 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순우리말소리와 한자어 발음이 근원적으로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법에 대한 모든 속성이 법() 자의 초기 형태인 법 법()’ 자 안에 다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 자는 (), (), ()’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 있다는 것은 물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 마지막에는 수평을 이루듯, 법도 물처럼 낮은 자세로 서민에게 다가가 서민과 함께 평평하다는 뜻이다.

둘째, ()해치를 가리키며 사람 마음의 잘잘못을 판단한다는 전설상의 외뿔 신수(神獸)로 흔히 해태라 부른다.

셋째, ()()’가 변한 것으로 사람[]이 움집이나 화장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나가다, 내쫓다의 의미가 탄생한다.

()’ 자는 치()를 생략하고 ()’처럼 쓰이다가, 한나라 예서 시대에 와서야 ()’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법()이란 글자 속에는 사람 마음의 선악을 판단할 줄 아는 외뿔 해치가 악인을 내몰아 물속에 빠뜨린다.’라는 교훈적 신화가 내재해 있다.

광화문 앞 양옆에는 목에 방울을 찬 커다란 돌짐승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여러 맹수를 조합한 형태로 보이는 이 짐승은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하여 만들었으며, 불을 먹고 산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광화문 복원 공사 때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국보1호 남대문이 불타버린 기이한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해치사자, ‘고려견또는 사자견이니 하며 이견이 분분하지만 그 정체가 밝혀질 때까지는 <고종실록>의 기록대로 해치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논란의 중심은 해치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외뿔이 없다는 점에 있다. 해치가 상상의 동물이길 망정이지 실제로 살아있었다면 법관이란 직업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 외에도 법을 뜻하는 한자에는 식() (), (), () 등이 있다. 순우리말 중에 본때를 보여 주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의 본때가 법식이나 표준, 규범이나 법칙등과 관련한 말이 아닐까 한다.

법 식()’은 베틀[] 설치하는 방식에서, ‘법 준()’은 송골매[]가 물처럼 수평을 이루며 날아가는 모습에서, ‘법 범()’은 대쪽이나 수레바퀴, 병부[]처럼 딱 들어맞는 점에서 법의 의미가 나왔다고 본다.

법 칙()’의 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솥 정()’의 생략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칙()은 솥 안에 칼로 글자를 새기는 것을 뜻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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