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문화기획 - 문자로 보는 세상 5
생산과 분배의 경제(經濟) 원칙
“있으면 죽이요 없으면 굶을망정 남의 집, 남의 것은 전혀 부러워하지 않겠노라.”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시인인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의 ‘누항사(陋巷詞)’에 나오는 구절이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육을 40년 가까이 해온 사람으로서 우리 선조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경세제민(經世濟民)은 생각하지 않고, 늘 안빈낙도(安貧樂道)나 안분지족(安分知足) 타령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춘하추동 강호에 묻혀 자연을 즐긴 맹사성, 청풍명월을 벗하며 살아간 정극인,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낸 송순, 산수 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고 산 윤선도를 비롯하여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정훈의 ‘머들령’, 김관식의 ‘거산호(居山好) 2’ 등에서도 안빈일념(安貧一念)은 맥맥이 이어지고 있다.
안빈낙도란 가난하지만 가난함을 탓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것이고, 안분지족이란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안다는 뜻일 진데, 이러다가 외침을 당하면 속절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난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게 살아간 지도자가 도인의 경지에는 이르렀다 하겠으나 현실 인식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위와 다른 현실적인 내용의 노래도 있다. 일찍이 신라 경덕왕 때의 충담사가 지은 ‘안민가(安民歌)’에는 백성이 먹을 것이 풍족하여 “내가 이 땅을 버리고 어디 가랴?”라고 생각한다면 나라가 평안해짐을 알리라고 하였다. 신라가 천년토록 이어온 까닭을 알 만하다. 적어도 백성이 이민을 선택하지 않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정신적으로 행복하게 해야 함은 지도자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소비를 늘려 내수 활성화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정부가 5월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연휴가 4일로 늘어나자 환영과 염려의 찬반 여론이, 부산 오륙도(五六島)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섯 개 또는 여섯 개로 보이듯이 헷갈리고 있다. 이로써 2016년 휴일은 토·일 포함해서 123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원 투 쓰리 숫자 배열처럼 경제 성장 전망에 희망의 싹이 트길 바란다.
한국의 경제 전망은 어떤가. 국내총생산(GDP) 성장 전망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이던 한국은행마저 올해 3% 경제 성장은 어렵다는 점을 확인하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0%에서 2.8%로 낮추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은 2.7%로 내리고, 아시아개발은행은 2.6%를 제시했다. 문제는 중국의 성장침체로 인해 대중국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리라는 우려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숨 쉬듯 자주 거론하는 ‘경제(經濟)’라는 단어는 고려 말의 이곡(李穀)의 시에 보이는데, 여기서의 경제는 Economy와는 달리 벼슬살이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經濟隨時有易難(경제수시유역난) 경제는 때에 따라 난이의 차이가 있지만
人心只願作高官(인심지원작고관) 사람의 마음은 고관이 되기를 바랄 뿐이네.
如今自揣眞無用(여금자췌진무용) 지금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쓸모없는 몸
悔不當時早掛冠(회부당시조괘관) 당시 일찍 벼슬사퇴 못 한 것이 후회스러워.
우리 옛글에 의미 차이는 있지만 ‘경제’라는 단어는 무수히 나타난다. <조선왕조실록>에만 해도 2백여 곳에 보이는 것을 보면 경제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어젠다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의 경제는 조선 후기에 와서야 실학파에 의해 강조되었다. 그들은 임병양란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한 민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용후생(利用厚生)과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주창하였다.
‘경(經)’과 ‘제(濟)’의 원초적 의미는 무엇일까. ‘경(經)’ 자는 처음에 ‘경(巠)’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천을 짜기 위해 날실을 걸어놓은 베틀’을 본뜬 모양에서 ‘날실’을 뜻했다. 맨 위의 ‘一’은 베틀의 끝을, ‘巛’은 걸어놓은 여러 가닥의 날실을, ‘工’은 바닥에 설치해 놓은 베틀 모양을 각각 본뜬 것이다. ‘巛’ 모양에서 우리는 한자 만드는 원리를 찾을 수 있다. 곧 셋으로 표현한 것은 ‘물건 품(品)’과 같이 ‘많다’는 뜻을, 구부려 표현한 것은 ‘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나중에 비단을 뜻하는 ‘糸’이 추가되어 오늘날의 ‘경(經)’ 자로 완성되었다.
경(經) 자만큼 의미 확장이 심한 글자도 드물다. 이는 경(經) 자가 그만큼 비중이 큰 글자라는 뜻이다. 경위(經緯)라는 낱말에서는 ‘날실’의 의미로, 경험(經驗)에서는 ‘실제로 겪어 봄’의 의미로, 경전(經典)에서는 ‘변하지 않는 도리, 글이나 책’의 의미로, 경국(經國)에서는 ‘다스림’ 등의 의미로 발전한다. ‘베틀로 짠 비단 위에 소중한 경험을 적어두고 이를 도리로 삼아 나라를 다스린다.’라고 하면 충분히 연상에 의한 의미 확장이 가능하다.
제(濟) 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齊) 자의 뿌리를 캐야 한다. 이는 많은 곡물 이삭[셋으로 표현]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에서 ‘고르다, 가지런하다’의 의미가 있다. 나중에는 세 개의 이삭 중에 가운데 있는 것이 솟아나게 표현하여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다 자란 곡물을 신[示→神]에게 바치는 집은 재실(齋室)이라고 할 때의 ‘집 재(齋)’이다.
그런데 제(濟) 자는 왜 ‘건너다, 구제하다’의 의미가 되었을까. ‘수(氵)’가 붙어 있으므로 강을 건너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강을 가장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심이 고른[齊] 곳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제(濟) 자에는 백성을 빈곤이나 어려움에서 고르게 구제해야 한다는 높은 뜻이 숨어있다.
문자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 여기에서 경제의 뜻을 명쾌하게 결론지을 수 있다. 곧, 경(經)은 베틀에서 출발하여 생산을 뜻하고, 제(濟)는 강을 건너는 방법에서 출발하여 고른 나눔을 뜻한다. 성장을 위한 지혜로운 생산과 행복을 위한 고른 분배는 국가나 기업의 영원한 목표이다.
내가 아는 한 할머니의 식당 경영 원칙이다. 한 달을 4주간으로 나누어 ‘첫 주에 번 것으로는 식자재를 사고, 둘째 주에 번 것으로는 직원 봉급 주고, 셋째 주에 번 것으로는 세금 내고, 마지막 주에 번 것은 내 몫’이라는 것이다. 할머니의 시간과 재화 경영에는 효율성과 평형성이라는 경영철학이 담겨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나 이기적인 쪽의 선택을 할 것이다. 비록 이타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속내는 명예라는 이기적인 마인드가 깔려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인간의 이기적 행동이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려 국부가 창출된다고 보았다. 다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번 주는 무슨 일로 어떻게 보낼까? 기쁘게 바쁘고, 즐겁게 지치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