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爲經行(무위경행)
無爲閑道人(무위한도인) 행함이 없는 한가한 도인이여
在處無蹤跡(재처무종적) 어디 있으나 그 자취가 없도다.
經行聲色裏(경행성색리) 경행이 소리나 빛 속에 있어도,
聲色外威儀(성색외위의) 소리 빛 밖의 위의를 보이도다.
해인총림 방장이신 벽산원각(碧山源覺) 대종사께서 2016년 하안거 결제 법어에서 문을 연 게송이다. 앞 구절의 키워드는 무위(無爲)이고 뒤 구절의 키워드는 경행(經行)이다. 그래서 제목을 ‘無爲經行(무위경행)’으로 붙여 보았다.
1행은 ‘무위(無爲)’ 속에 한가롭게 지내는 ‘도인(道人)’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탈속한 도인은 불도를 깨달은 고승(高僧)이다. 무위라는 말의 세속적인 뜻은 무위도식(無爲徒食)의 예에서 보듯이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낸다는 부정적 의미이다. 도가(道家)에서의 무위는 모든 것을 자연 그대로 두어 일체의 인위적인 행위를 더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나 불가(佛家)에서의 무위는 현상을 초월하여 생멸(生滅)의 변화가 없는 불변의 진리를 뜻한다. 곧 1행에서는 영원한 불법의 진리를 깨달은 허허로운 도인을 만날 수 있다.
2행에서는 무위도인(無爲道人)의 절대적 존재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마디로 무위도인은 자신의 거취는 물론 깨달음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절대 자유의 경지에 머물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3, 4행은 무위도인의 행동 양식에 대한 구체적 예시라 할 수 있다. ‘경행(經行)’은 일정한 장소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님을 뜻한다. 예컨대 공양을 마친 뒤나 피곤할 때, 또는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는 경우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하는 일을 경행이라 한다. 경행하면서 경전을 독송할 수도 있다. 아니면 사부대중(四部大衆)의 정진이나 중생(衆生)의 건안을 기원할 수도 있겠다. 경행(經行)을 경학에 밝고 행실이 착하다는 의미의 경명행수(經明行修)의 약자로 보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그렇게 본다면 선승의 수도가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성색(聲色)의 표면적 의미는 말소리와 얼굴빛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수행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인간적 번뇌를 가리킨다. 경행에는 반드시 성색이 나타나게 마련이지만, 무위도인에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무위도인의 경행은 성색을 승화한 위의(威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란 성불하기까지의 수행상의 규범이다.
잠시나마 문자의 감옥 속에서 고생하지 않으셨나요? 생멸이 없는 불변의 진리, 무위와 함께 경행하시죠. 이른바 無爲經行(무위경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