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빈今年貧
去年貧未是貧(거년빈미시빈)이요
今年貧始是貧(금년빈시시빈)이라
去年貧無卓錐之地(거년빈무탁추지지)이더니
今年貧錐也無(금년빈추야무)이로다.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금년 가난이 비로소 진짜 가난이네.
작년 가난은 송곳 꽂을 땅도 없더니,
금년 가난은 송곳조차 없어졌구나.
해인총림 방장 벽산원각碧山源覺 스님께서 금년 을미년 하안거 해제 법어로 향엄香嚴 스님의 게송을 예화로 들었다.(월간 해인 9월호) 몸과 마음마저 따 떨쳐버려서 떨쳐버렸다는 생각마저 떨쳐버려서 천하의 가난뱅이가 되어야 진정한 공부인工夫人이라 하셨다.
이 게송에서는 빈貧 자가 여섯 번이나 등장하여 빈貧 자만은 부자다. 가난하다는 뜻의 한자 빈貧은 分+貝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빈貧 자는 재화貝를 나눈다分는 뜻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분分 자의 팔八은 넷四에서 둘二로 둘에서 하나一로 철저하게 나누어진다. 결국 하나一만이 나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다.
세상에 영원히 새로운 것은 시간밖에 없다. 순간순간 내 앞에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새롭다. 그런 의미에서 금년의 가난, 엄밀히 말해 지금의 가난만이 가난이다. 작년의 묵은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게송의 송곳은 가난에 대한 의식이다. 가난하다는 의식마저 떨쳐버릴 때 진정한 가난이다.
자발적 가난, 선택한 가난, 맑은 가난, 가난하다는 의식마저 떨쳐버린 가난을 우레처럼 깨달을 때 진정한 공부가 시작되리라.
이번 달에는 제목을 금년빈今年貧이라 붙이고, 떨어지고 갈라진 붓으로 가난한 글씨 빈서貧書를 즐겨보았다.
수월 권상호(한자 호는 도정塗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