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50년의 보람 100년의 희망

50년의 보람 100년의 희망

-신일 50년사를 준비하며-

 

신일중고등학교 탄생 50주년! 2016년이면 명문 사학 신일이 세상에 태어난 지 50돌을 맞이하게 된다. 50년을 흔히 반세기라 한다. 사실 50년이라 하지만 근래 50년의 변화는 과거 천년의 변화보다도 더 빠르고 심각했다.

 

‘50’이라 하면, ‘오십견’,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 등의 단어가 떠오른다. ‘오십세주까지 든다면 주당으로 낙인찍힐라. 허걱. ‘오십견은 아픔으로 오십보백보는 뭔가 깨닫지 못하는 사람으로, ‘지천명은 살 만큼 산 듯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50’이라는 숫자가 주는 어감이 그다지 좋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순우리말 도 맛이 간 늙수그레한 느낌이고, 상점의 ‘50% 할인이라는 문구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신일 50년사> 집필이라는 큰일을 안고 보니, 신일 가족이 된 이래 가장 큰 영전?이라고나 할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으니 50년사는 일단 ‘50% 보너스를 받는 기분으로 써내려가야겠다. 올커니.

역사(歷史)는 글자 그대로 인간이 겪은 사실의 기록이다. ()는 사실(事實)을 사()가 사()하여 사실적(寫實的)으로 사()처럼 사()해야 한다. ‘역사는 씌어진 거짓말이고, 신화는 씌어지지 않은 진실이다라는 말은 강자의 입장에서 쓴 문자권력으로서의 역사를 질타하는 말이다. 적어도 <신일 50년사>는 만화 같은 즐거움과 잡지다운 부담 없음으로 써야겠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는 성경과 같은 존엄성을 떡에 소 박듯이 넣어야 하겠지? 잘헌다.

 

신일에서 근무하다가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따금 고개를 돌려 백운대(白雲臺)를 바라보게 된다. 학생들은 제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10시 방향으로 눈동자만 살짝 돌려도 북한산과 도봉산을 병풍처럼 바라보며 청운의 꿈을 기른다. 세월은 흘러도 백운대와 하늘빛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교가와 응원가에 공히 등장하는 백운대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비바람과 눈보라가 조각한 명품이다. 1983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북한산은 2013년에 지정받은 무등산국립공원보다 30년 앞선다. 백운대는 수도 서울에 있는 국립공원의 정점에 우뚝 서서 서울에서 가장 먼저 우주의 서광(瑞光)을 받아들이고 또 그 빛을 우리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 나눔의 미학이다. 북한산 줄기는 언제나 현빈(玄牝)처럼, Great Mother처럼 자유인들을 포근히 감싸주고 위로해주며 그들의 가슴에 웅지(雄志)를 심어준다. 그래서 그런지 신일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졸업생이 많이 배출된 학교로 주목받고 있으며, 기실 신일동문들은 지구촌 곳곳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활동과 업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산이 교회와 예식장, 아파트와 빌딩숲에 가리어 온전히 보이지 않는다. 능선이나마 선별적으로 바라볼 수 있음을 위안으로 삼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빡빡산으로 불리던 학교 뒷산, 오패산은 50년이 지난 지금 수목이 울창한 청산으로 환골탈태하여 온갖 새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언젠가는 붕새나 봉황도 깃들겠지? 얼씨구.

 

돌이켜 보면 그 사이 신일 교정의 변화의 물결은 거세었다. 학교 상징물과 같았던 보일러실 굴뚝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굴뚝보다 더 높은 서울사이버대학 빌딩이 용립하고 있다. 2000년에 문을 연 서울사대(약칭)는 단기간에 전국 최우수 사이버대학으로 발돋움하고, 2022년에는 ‘Global Top 10’을 꿈꾸고 있다. 본관 좌우에는 설립자님의 동상과 예수상이 교정을 주야로 지키고 있고, 신일 상징탑과 신일의 종은 자유인의 발길을 진리로 인도한다. 고등학교 건물 뒤에는 중학교 건물이 새로 들어섰고, 1운동장 북측에는 체육동이 새로 생겨 야구부실과 자기주도적 영재학습실로 사용되고 있다. 체육동 용마루에는 6.25 참전 16개국의 국기가 주야로 전쟁의 아픔을 알리며 온몸으로 떨고 있다. 2운동장은 주차장으로 바뀌었고 제3운동장은 성신여자대학교 운정관이 문을 열었다. 무너미동산에는 한옥 구리당(九里堂)이 들어서 기둥마다 주련을 두르고 오패산의 격을 높이고 있다. 구리당 앞 언덕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의 축소판인 쌍탑이 조명을 받으며 한민족의 역사와 신일의 예술혼을 일깨워준다. 이 외에도 교훈명 비갈, 시계탑, 자유인상, 대형 지구본, BOYS BE AMBITIOUS 조형물 등 무수한 예술작품이 신일인의 프라이드와 열정에 불을 지피고 있다.

 

대운동장 스텐드를 비롯하여 교정 바닥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 교무실과 복도에는 기둥마다 대형 거울이 비치되어 우리의 행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곳곳에 게시된 명화(名畵)들은 눈의 피로를 씻어준다. 호텔에 잘못 왔나? 또 있다. 건물에 들어가려면 겹문을 통과해야 한다. 교외에서 자기 자리에 와 앉으려면 적어도 5개의 문은 통과해야 한다. 공기 냉·난방이 잘 유지되는 러시아식이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신일동산에는 돌과 문과 거울이 많기 때문에 나는 석문경(石門鏡)학교라는 닉네임을 붙여 본다. 오잉? 화장실은 수세식에서 비데식으로 바뀌었고, 복도에는 박물관처럼 고색창연한 고가구 위에 아름다운 도자기가 비치되어 있다. 이쯤 하면 School Gallery라고 하는 편이 나으렷다? 잘헌다. 신일 3년이면 졸업장과 함께 심미안을 보너스로 받아가는 셈이 된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교단은 없어진지 오래고, 전면 왼쪽엔 대형 모니터가 교실마다 설치되어 있다. 분필로 판서하던 칠판 시대는 끝나고 화이트보드나 무광 칠판 위에 보드마커나 물백묵을 사용한다. 교실 천정에는 냉난방기가 달려 있고, 복도쪽 벽으로는 개인 사물함이 비치되어 있다. 강화유리 덕분에 운동장에서 홈런볼이 날아오더라도 유리창이 깨지는 법은 없다. 와우.

 

50년의 숨 가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중요무형문화제?가 있다. 전국에서 1등으로 뽑힌 바 있는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라는 교훈과 주요한 작사 김동진 작곡의 교가가 그것이다. 물론 응원가와 졸업가도 그대로이다. 하지만, ‘신일고등학교라는 교패는 연전에 자율형사립고 신일고등학교로 갈아 달고 신일중흥의 기치를 올리고 있다. 일제 군복을 닮았던 교복은 일찌감치 폐지되고 자율복을 거쳐 지금은 야외복 차림의 간편 교복을 착용하고 있다. 모자와 배지는 물론 교련복도 사라지고 학교 앰블럼은 고대 그리스 문자의 첫글자를 형상화한 Alpha의 첫 글자 ‘A’ 자형으로 바꾸었다. 운동장은 좁아졌지만 사면이 대리석 스탠드로 바뀌었고, 야구볼 막이그물이 드높이 쳐져 있다. 바닥은 흙에서 인조잔디구장으로, 트랙은 우레탄으로 개선되어 비가 오더라도 금세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대학입시는 예비고사+본고사체제에서 학력고사+내신+논술’, ‘수능+본고사+내신’, ‘수능+내신+논술의 정시 중심 체제를 거쳐, 지금은 대학 학과에 따라 전형 방법이 다를 정도로 매우 복잡한 입시 체제로 바뀌었다. 대체적으로 수능성적을 위주로 하는 정시가 약화되고, 논술과 스펙을 중시하는 수시 일반전형이 70% 정도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도 개교 당시 신일고는 전·후기 중의 후기전형이었지만 고교 평준화를 거쳐 지금은 면접에 의하여 선발하는 전기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바뀌었다.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이지만 주 6일에서 주 5일 수업으로 바뀌었고, 교육방법은 큰 틀에서 보면 강의에 의한 주입식 교육에서 자기주도형 학습으로 변화되고 있다. 대입시 준비는 교과서와 참고서 중심에서 지금은 EBS 천국이 되어 모든 교사는 EBS 전도사로 전락한 듯 묘한 기분이 든다. SNS 발달로 수업형태도 변신을 거듭하고 있으며, 어쩌면 가르치고 배우는 지식 전달식의 교육 방법은 곧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학교는 어디로 가지?

 

학생 규모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1966년에 중고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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