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누구의 작품?
연전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되었다. 생일이 있는 문자 중에 일본에 ‘가나의 날’이 있다. 하지만 근본이 있는 글자는 한글.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1940년 국문학자 김태준 -> 우리 집에 1446년에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 반포 569돌이 다가오고 있다.
해례본은 해설서이다. 1책 2권. 책은 형식 단위, 권은 내용 단위이다.
1권은 어제서문과 예의 부분(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 2권은 해례 부분(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예, 곧 해설서, 교사용 지도서인 셈)이다. 한글 반포 시점과 한글 창제의 원리를 밝힘.
창제의 주역과 창제의 동기가 분명한 한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과연 혼자서 만들었는가? 집현전 학자들과의 합작품인가?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세종실록 1443년 12월 30일)
1443년 창제 이전까지 기록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한글. 한글 창제 과정이 알려지지 않아 많은 의문이 발생. 방대한 세종실록에도 창제 이전에 대한 기록이 없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책이 <용재총화> -성현(1439~1504)이 고려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 민간 풍습이나 역사 등에 관해 쓴 책-에
世宗設諺文廳
命申高靈成三問等製諺文
세종께서 언문청을 설치하여 신고령(신숙주), 성삼문 등에게 명하여 한글을 만들게 하다.
한글 창제 당시 신숙주는 일본에 가 있었다. 한글 창제 당시 신숙주는 26세, 성삼문은 25세이었다. 창제가 아닌 해례(교사용 지도서) 편찬 작업에 참여한 것을 성현이 오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창제와 반포에 대한 혼동이 한글에 대한 많은 의문을 양산했다. 집현전 학사들은 반포를 준비하는 작업에만 참여했다.
1443년 집현전 구성원
이름 |
당시 나이 |
비고 |
정인지 |
47세 |
집현전 대제학(겸직하고 있다) |
최항 |
3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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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팽년 |
2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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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 |
2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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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
25세 |
|
강희안 |
24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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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만리 |
45세 |
집현전 부제학/ 언문 반대 상소자 |
신석조 |
36세 |
언문 반대 상소자 |
정창손 |
41세 |
언문 반대 상소자 |
하위지 |
31세 |
언문 반대 상소자 |
실질적인 책임자는 최만리였다. 집현전 학사들의 참여가 있었다면 최고책임자인 최만리가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세종이 비밀리에 한글을 창제한 이유가 있었을까? 당시 사대부들은 한자가 아닌 문자사용을 반대했다. 한자가 문명권이고, 한자에서 벗어나면 오랑캐라고 인식했다. 특히 명과의 사대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 이 때문에 비밀리.
또 다른 예로 北伐을 들 수 있다. 조선 효종 때 실시한 ‘청을 공격하여 명나라에 은혜를 갚자’는 정책이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중국과의 미묘한 사항은 실록에 누락되기도 한다. 한글 창제를 비밀리에 진행한 것은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에서 보았을 때는 자기네들의 문자가 특별한 권리인 것 같은데, 주변국인 그것도 조선에서 글자를 만든다고 하면 아주 괘씸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곧 중국과 연계된 세력에 한글 창제를 방해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아들 문종에게 만큼은 알리지 않았을까? 말년에는 섭정까지 시켰다. 그렇다면, 세자 문종이 한글 창제에 참여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내용은 한글 창제에 제사 문종이 참여했다는 단서가 있다. 최만리의 상소에서 ‘세자 문종이 성학에 힘을 써야 하는데, 언문에 정신을 쏟으면 안 됩니다’라는 내용이 있다. 곧 세자 문종이 언문에 빠져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문종도 어느 정도 창제에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한글 창제, 반포 당시에 세종은 각종 병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록에 세종의 질병에 관한 기록이 50건 정도 된다. 한글 창제 1년 전부터 문종은 세종을 대신하녀 국정운영(대리청정)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창제 작업에 문종이 배제되었을 리는 없다.
또 다른 단서가 해례본에 있다.
ㄱ을 설명하는 글자로 君(임금 군)자를 쓰고
ㄲ을 설명하는 글자로 虯(규룡, 아기 용 규)자를 쓰고
ㅋ을 설명하는 글자로 快(쾌할 쾌)자를 쓰고
ㆁ(옛이응)을 설명하는 글자로 業(업, 일 ᅌᅥᆸ)자를 써서
‘왕과 왕자가 즐겁게 일을 하다’라는 힌트를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세종대왕은 문학적 장치를 통해 문종의 참여를 암시하고 있다. 이야기를 숨겨놓는 장치이다. 영화 대박? 다빈치 코드같은 느낌이 온다. 세종대왕 코드, 훈민정음 코드도 가능하다.
한글 창제, 또 다른 조력자?
세종의 자제들은 똑똑했다. 수양대군, 안평대군, 특히 정의공주(정의공주 묘, 서울 도봉구 북한산) 세종의 둘째 딸로 죽산 안씨 가문과 혼인. <죽산안씨 대동보>에 의하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나, 변음과 토착을 다 끝내지 못하여 여러 대군에게 풀게 하였은 모두 풀지 못하였다. 드디어 공주에게 내려 보내자 공주는 곧 풀어 바쳤다. 세종이 크게 칭찬하고 특별히 노비 수백을 하사하였다’고 했다. 이런 기록을 보면 정의공주도 한글 창제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글 창제는 세종의 패밀리 비즈니스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한글 창제는 ‘세종의 가족 사업’이라고 해야.
김영욱 교수의 생각, ‘세종대왕은 착하고 정직한 분이다’. 세종대왕이 친히 28자를 만들었다고 분명히 밝혔다. 세종대왕은 거짓말을 할 분이 아니다. 여러 가지 기록을 종합하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국가 공인 증거가 있다? 세종대왕 초상화가 그려진 만 원권 지폐. 옷깃에 비밀스럽게 한글자모 28자가 새겨져 있다. 한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공식적인 증거!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훈민정음(국보 70호). 1446년 세종의 명령에 따라 정인지와 7명의 집현전 학사들이 집필한 훈민정음 해례. 이 책은 한글이 만들어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ㄱ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양
ㅁ 입의 모양
ㅅ 이의 모양
ㅇ 목구멍의 모양
다섯 개의 기본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떴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세종은 서문에 묘한 말을 남겼다. ‘字倣古篆’. 훈민정음이 옛글자를 모방했다는 것이다. 자방고전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 과연 정인지가 말한 옛글자를 말은 무엇일까?
자방고전의 비밀?
전서라고 하면 한자의 고대 서체의 하나로 현재는 도장 등에 주로 사용. 사실 전서와 한글은 모양부터 완전히 다른데... 한글이 전서를 모방했다는 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중의 하나이다. (서예 작품 비교) 정인지가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