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와 건강, 그리고 장수
도정 권상호
‘서예를 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한다’라는 명제(命題)는 사실인가?
영자팔법(永字八法)은 점획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점획의 표현 동작임을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붓은 내 몸이다. 운필은 굴신(屈伸)의 연속이다. 발 없는 뱀이 수륙(水陸)과 초목(草木)은 물론 땅속과 모래 위도 자유롭게 다니듯 붓은 종이 위는 물론 모든 곳이 자유로워야 한다. 운필은 스쾃(squat) 운동처럼 상하 움직임과 노젓기처럼 좌우 움직임의 연속이다.
그리하여 점을 잘 찍기 위해서는 때론 풀잎 끝에 맺힌 이슬처럼 가볍지만 신중해야 하고, 때론 무거운 바위를 들어 언덕 위에 올려놓듯이 급하면서도 집중해야 하는 동작 훈련이 필요하다. 획을 그을 때는 참으로 다양한 동작이 요구된다. 말을 타고 평원을 달리는 동작, 달리다가 낭떠러지를 만나 급정거하거나 허공에 떨어지다가 나뭇가지를 잡는 동작, 살얼음판을 걷는 동작, 양궁이나 사격에서 정확한 목표 조준을 위하여 숨을 멈추고 활과 총을 신중히 내리는 동작, 높이뛰기 멀리뛰기 창던지기 선수가 뛰거나 던지는 힘을 높이기 위하여 구름판까지 도움닫기 하는 동작, 스키를 타고 슬로프(slope)를 내려오며 균형을 잡는 동작, 자전거를 타고 느리게 가되 쓰러지지 않으려는 동작, 말몰이 회초리를 딱 하고 휘두르는 갑작스러운 동작, 사랑하는 연인에게 다가가 설렘으로 몰래 껴안는 동작, 호수 위의 새가 물을 박차고 비상하는 동작, 독수리처럼 허공을 날며 관조하다가 먹이를 발견하고 내리꽂히듯 몸을 던져 착지하는 동작, 비상하는 새가 날아가는 곤충을 낚아채는 동작, 닭이 모이를 쪼는 동작, 축구 야구 배구처럼 다가오는 공에 임팩트(impact)를 가하는 동작, 농구선수처럼 바스켓까지의 거리 조준하여 던지기, 그네뛰기 스케이트보드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스윙하여 차고 오르는 동작, 날다람쥐 같은 적확한 비상 동작, 파임과 같은 획에서는 언덕에서 돌 굴리기, 나뭇등걸 굴리기, 미끄럼틀 타기 등과 같은 동작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서예는 근대5종 이상의 다양한 인간 동작의 종합이자 자연의 모든 현상을 표현해야 하는 액션 아트(action art)이다. 그래서 필로(筆路)는 어렵고 힘든 길이라고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전하고 즐길 가치가 있다고 본다. 더구나 건강에 좋고, 장수에 도움이 된다면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붓을 잡을 일이다.
무엇보다 서예는 정신운동과 육체운동이 가장 이상적으로 혼효(混淆)된 예술이다. 생각의 근육과 육신의 근육을 동시에 강인하게 해 주는 최고의 건강 예술이다.
옛날부터 서예를 하면 건강에 좋다거나, 장수하는 사람 중에는 붓글씨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은 인구에 회자하여 왔다. 마침, 2012년 10월 중국 CCTV 채널4 ‘문화여류(文化旅流, The Journey of Civilization)’라는 토크쇼 프로그램에 베이징대학교 왕악천(王岳川) 교수가 출연하여 서예(書藝)와 건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주된 내용은 건강과 장수를 위한 최고의 방편이 서법(書法, 서예)을 즐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왕 교수는 중국서법가협회(中國書法家協會) 주석(主席)을 역임했던 서동(舒同) 선생과 계공(啓功) 선생이 다 같이 93세(우리식 연령 계산법으로는 94세)로 장수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서예가와 승려 및 역대 황제의 평균 연령을 비교하여 밝히고 있다.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고대 저명한 서예가의 평균 수명은 78.9세(우리식으로는 79.9세), 고대 저명한 고승(高僧)의 평균 수명은 66세, 진시황 이후 마지막 황제까지의 역대 황제 평균 수명은 39.2세였다. 그리고 서예가가 장수한다는 사실은 심리학(心理學), 의학(醫學)적으로 증명된 사실임을 밝히고, 방송 끝에 ‘서법인생(書法人生)’이라는 내용을 현장 휘호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이에 필자는 한국과 중국의 서예사에 등장하는 서예가를 바탕으로 생몰 연대가 뚜렷한 서예가를 대상으로 시대별 대표적인 작가를 선정하고 이들의 나이를 조사해 보았다. 과연 중국의 저명한 역대 서예가의 평균 수명이 80세 가까이 되는지와, 우리나라 서예가들의 평균 수명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무슨 까닭으로 다른 직업군에 비해 서예가들이 장수(長壽)하는지 그 근거를 찾아보고, 나아가 점점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슬로우 아트(slow art) 서예 또는 요즈음 흔히 말하는 캘리그라피를 즐기며 활기차고 보람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권하는 데에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 서예가의 시대별 나이를 조사해 본 바는 다음과 같다. 나이의 수치는 만으로 계산한 것이 아니라, 뱃속 나이까지 치는 우리의 전통 방식을 따랐다. 그리고 서예가의 나열 순서는 출생 연도순을 따랐다.
통일신라 때의 서예가로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김생(金生, 711~791?)은 81세로 생을 마쳤다.
고려의 승려이자 서예가인 탄연(坦然, 1070~1159)은 90세, 동국(東國)의 조자앙(趙子昻)으로 불렸으며 특히 예서와 초서에 능했던 이암(李嵒, 1297~1364)은 68세를 기록했다.
조선 전기의 시인이자 서예가인 양사언(楊士彦, 1517년~1584)은 68세, 소위 석봉체(石峰體)를 완성한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는 63세에 별세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전서(篆書)에 독보적 경지를 이루었던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은 88세, 문장과 글씨에 두루 뛰어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은 67세, 창고(蒼古)하고 힘에 넘치는 글씨를 쓴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은 83세, 시·서·화에 모두 능하면서도 특히 독특한 서체인 원교체(圓嶠體)를 이룩하여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는 73세, 남종문인화가 조선 후기 화단의 주도화풍으로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당시의 서화계를 계도한 서화비평가였던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79세, 동기창체(董其昌體)를 따르고 조선시대에 이 서체가 유행하는 데 계도적 구실을 하였던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는 77세, 이광사(李匡師)의 글씨를 배웠으며 특히 초서에 능하여 이른바 창암체(蒼巖體)를 이룩한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5)은 76세, 행서와 예서에 뛰어나 독보적인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한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71세, 전서(篆書)와 예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