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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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권상호 편
‘서울’이라는 명칭은 <삼국사기(三國史記)>·<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의 기록에 보이는 ‘서벌(徐伐)·서나벌(徐那伐)·서라벌(徐羅伐)·서야벌(徐耶伐)’ 등에서 비롯되어 변천된 것으로, 신라 초기 도읍지의 지명인 동시에 국명이기도 하였다.
<삼국지>등의 중국 사서에 보이는 ‘사로(斯盧)·사라(斯羅)·신로(新盧)’ 등의 국명도 ‘서울’과 같은 음훈(音訓)으로, 서벌·서라벌 등의 다른 표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백제의 도읍을 소부리〔所夫里- 부여의 옛이름도 소부리〕라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재 중국어 표기는 首尔(shou 3, er 3)이다. 2005년 1월19일 서울시 이명박 시장은 서울의 중문 명칭을 서울(首尔)이라 고치고 한성(汉城)을 쓰지 않기로 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지명이나 인명 등을 부를 때 현지 발음을 존중해서 적기로 한 것에 기인한다.
서울의 본래의 뜻에 관해서는 몇 가지 이설(異說)이 있지만, 서(徐)·서나(徐那)·서라(徐羅)는 높고[高] 신령(神靈)하다는 우리말 ‘수리’·‘솔’·‘솟’의 음사(音寫)이고, 벌(伐)은 들판을 의미하는 우리말 ‘벌’의 음사이다. 따라서 ‘서울’, 즉 서벌·서나벌·서라벌은 ‘높고 신령한 들판’, 또는 ‘새 벌(판)’을 뜻하니, 곧 상읍(上邑) 또는 수도(首都)라는 뜻의 보통명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서울 지명의 유래는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서 음이 변천해 서울이 됐다는 설과, 백제 때의 ‘소부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양립하고 있다. ‘서라벌’은 ‘새 벌’의 의미이고 한자로 음차하면 ‘신라(新羅)’가 된다. 그리고 ‘소부리’의 ‘소’는 ‘솟’·‘솔’·‘솟대’·‘솔개’의 뜻으로 ‘높다’는 의미이고 ‘부리’는 ‘벌’ 또는 ‘높은 곳’의 의미이므로, 백제의 ‘소부리’는 ‘높은 벌’·‘놓은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백제의 수도 ‘부여(夫餘)’의 옛지명을 ‘소부리’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구려의 옛 수도 졸본(卒本)은 본디 ‘솔본(率本)’의 오기로 이 말도 ‘서울’의 옛말 중의 하나이다.
‘서울’이 ‘서러워서 울다’에서 왔다는 민간 속설이 있는데, 이는 임병양란(壬丙兩亂)과 왜정(倭政)으로 인한 아픔에서 생긴 말이다.
일본을 한자로 倭(왜국 왜)라고 부르는 것은 폄하하는 말이다. 공식적으로는 일본제국시대를 줄여 일제시대(日帝時代)라 하지만, 민간에서는 일본에 대한 나쁜 감정 때문에 왜정(倭政) 때라고 불렀다. 또 임진년에 일본이 일으킨 난리를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일본을 왜(倭)이라 불렀음은 왜소(矮小)한 민족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倭(왜국 왜)는 矮(키 작을 왜)와 통하기 때문이다.
왜(倭)와 같은 한자 가족으로 시듦을 뜻하는 위축(萎縮), 위임(委任)이 있다. 萎(마를 위), 委(맡길 위), 任(맡길 임)이로다.
또 한 가지 민간 어원설이 있다.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開城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전국을 찾아다니다가 지금의 왕십리(往十里) 근처에서 휴식을 하게 되었다. 그때가 겨울이었고 너무나 지쳐서 앉아있는데, 웬 노인이 지나가다말고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기에 그 쪽으로 가보니 눈이 신비하게도 성벽처럼 두르고 있었다. 그 눈길을 따라 그대로 성벽을 쌓고 도시를 만든 것이 雪鬱(설울), 곧 雪(눈 설), 鬱(막힐 울)에서 ‘서울’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한 번 웃는다.
서울은 통일신라와 고려 후기 때는 ‘한양(漢陽)’, 조선시대는 ‘한성(漢城)’, 일제 때는 ‘경성(京城)’으로 불리다가, 1946년부터는 ‘서울’로 불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서울’은 어느 시대에나 늘 사용되던 보통명사에서 오늘날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로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조선왕조는 개국 후에 1394년 개경(開京)에서 한양(漢陽)으로 천도한 후, 1395년 6월 6일에 한양(漢陽)을 ‘한성부(漢城府)’로 개칭하고 태조 5년(1396) 4월에 한성부 행정구역을 동부(東部)・서부(西部)・남부(南部)・북부(北部)・중부(中部) 등 5부(部)로 나누고 이를 다시 52방(坊)으로 구획해서 방명표를 세웠다. 한성부의 관할구역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도성 밖 5리~10리까지로 하였는데 이를 ‘성저오리(城底五里)’, 또는 ‘성저십리(城底十里)’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태조 때는 한성부를 5부(部) 52방(坊)으로 하였다가 세종 때는 5부(部) 49방(坊), 영조 때는 5부(部) 46방(坊) 328계(契)로 축소하였으며, 고종 초에는 5부(部) 47방(坊) 339계(契)로,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때에는 5부(部)를 5서(署)로 고치는 동시에 47방(坊) 283계(契) 775동(洞)으로 하였다.
1910년 10월 1일 일제에 의해서 한성부(漢城府)가 경성부(京城府)로 개칭되고 경기도(京畿道)에 예속(隸屬)되었으며, 1911년 4월 1일에 경기도령 제3호로서 경성부의 행정구역을 개정하여 도성 안을 5부(部) 36방(坊)으로 하고 도성 밖을 8면(面)으로 하는 5부(部) 8면(面)제를 하였다.
이를테면 5서(署) 중의 하나인 중서(中署)에는 서린방(瑞麟坊)・견평방(堅平坊)・경행방(慶幸坊)・징청방(澄淸坊)・수진방(壽進坊)・관인방(寬仁坊)・장통방(長通坊)・정선방(貞善坊) 등의 8방(坊)이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56계(契) 127동(洞)이 있었다.
그러니 ‘署(관청 서)’는 지금의 ‘區(지경 구)’, ‘坊(동네 방, 저자 방)’은 지금의 ‘洞(골 동)’, ‘契(맺을 계, 약속 계)’는 ‘統(거느릴 통)’, 당시의 ‘洞(골 동)’은 ‘班(나눌 반)’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방방곡곡(坊坊曲曲), 통반장(統班長)이로다.
보통명사로서 서울의 의미인 한자어는 수도(首都)이다. 都(도읍 도, 서울 도, 모두 도)로다. 생도(生徒)라고 할 때는 徒(무리 도)인데, 의미상 도(都)와 통한다. 지금 중국어에서 ‘도읍(都邑)’, ‘수도(首都)’라고 할 때의 도(都)는 ‘du 1성’이고, ‘모두’의 의미일 때는 ‘dou 1성’으로 읽는다.
都는 ‘者+邑’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의 者(놈 자)는 본래 煮(삶을 자)의 본자이다. 큰 솥에 콩을 통째로 잔뜩 넣고 삶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런데, 者(자)를 ‘耂(로)+白(백)’의 합자(合字)로 보고, 나이 드신 어른[耂(늙을 로)]이 아랫사람을 낮추어 말한다[白(말할 백)]는 뜻에서 者(자)의 뜻이 ‘놈’, ‘것’으로 되었다고 본다. 장자(莊子)에 ‘생생자불생(生生者不生)’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는 ‘삶에 집착(執着)하는 놈은 도리어 살지 못한다.’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邑(고을 읍)은 ‘나라[囗(국)]의 명령[口(구)]에 절대 복종하는(卩=㔾, 무릎 꿇은 사람의 모양) 고을’이란 뜻이므로 都(도읍 도)는 결국 ‘어른[耂]이 말하면[白] 그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고을’이라는 뜻에서 왔다. 邑(읍)의 巴(땅 이름 파, 큰 뱀 파)는 卩(병부 절)이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郡(고을 군)은 ‘임금[君(군)]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고을’의 의미이다.
동명 유래의 예를 들면, 서울 동작구 흑석동(黑石洞)은 뜻 그대로 동네에 검은색을 띤 돌이 많아 ‘검은돌마을’이라고 한 데에서, 종로구 피마동(避馬洞)은 종로의 큰길을 가다 높은 사람이 가마나 말을 타고 행차하는 것을 멀리서 보면 피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또, 용산구 갈월동(葛月洞)은 과거 마을 부근에 칡[葛(갈)]이 많이 자란 데서, 종로구 후암동(厚岩洞)은 마을에 ‘두텁바위’가 있는 데서 그 이름이 지어졌다.
이 밖에도 돌곶이가 있는 마을 석관동(石串洞), 남이장군 집터에 탑을 쌓았던 연건동의 남이탑(南怡塔)골 등지가 눈에 띄는 이름이다.
지명의 유래를 생각하며 여행이나 답사를 해 보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 이유는 오늘을 살면서도 그곳의 역사와 자연을 생각하게 되고, 그 지명을 붙인 선조와 대화를 나누면서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 참고 자료 :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사이트 : http://encykorea.aks.ac.kr/
<지명이 품은 한국사> 첫 번째~네 번째 이야기, 이은식(서울시 지명위원), 타오름.
<擇里志> 1751년(영조 27)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이 현지답사를 기초로 하여 저술한 우리 나라 지리서.
<東國輿地勝覽> 성종 때, 노사신(盧思愼)ㆍ강희맹(姜希孟)ㆍ서거정(徐居正) 등이 엮은 지리서.
<존 한자사전> 지명 한자로 찾기 사이트 : http://www.zonm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