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광복군 추모의 글

唯歲次 辛卯年 八月 六日에

후손이 없는 광복군의 묘소 참배가 있었다.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 자락에 위치하는 18위의 묘소는

구청에서 잔디를 입혔다고 하지만

주위의 웃자란 나무들 때문에 거의 죽고 말았다.

통일교육원의 박갑수 교수께서 큰 관심을 갖고 홀로 지내오던 제사.

올해로 열 여섯 해째란다.

금년부터는 흥사단과 풍덩예술학교에서 공동으로 제례에 참가하고,

각종 진설과 후식은 독지가의 도움을 받았다.

음복을 나누면서 회심곡과 가야금 연주도 곁들였으니,

제의에서 축제 분위기로 바뀌는 듯......

 

광복군 영전에

 우이동 북악 산 중턱에 있는 광복군 합동묘소는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일본군와  교전하다 전사한 열입곱 분의 유골 영현을 한 무덤에 모신 성소(聖所)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대륙을 가로 누비며 일제와 싸우다 가문이 흩어져 몰락하고 후손, 친척이 연락되지 않아 1967년 광복군 동지회 주관으로 한 봉분에 같이 모시게 되었읍니다.

  8.15 행사일에는  보훈처에서 나와 공식적으로 제례를 지냅니다만  구정과 추석에 지내드려야 도리에 맞다고 판단되어  흥사단 북부지회와 의정부 지회가 같이  지금까지 7차에 걸쳐 무후제(無後祭)  지내 왔읍니다.

 그런데 17 분의 신위(神位) 지방을 정성 들여 쓰기가 쉽지 않아  도정 선생님께 부탁드린 바, 먼 길을 택시로 타고 와서 즉각 명문으로 써 주셔서 이번 추모제 행사를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 중에는 이름 모를 새들도 위로  소리내어 날아가고  끝나고 지방을 태울 때도 그 재는 하늘로 잘 솟구쳐 날아갔습니다.

 서울 동작동, 대전 현충원 국립묘지보다도 먼저 모셔야 하는 광복군 묘소입니다만 후손이 없음으로 제 때에 향응하지 못한다는 건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으로 여겨집니다.

  이 묘소에 남아 있는 17분 중에는 1943년 중국 태항산 전투에 희생된 분이 네 분인데 이러한 분들의 희생으로 중국 공산당 팔로군이 살아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팔로군 사령부가 일본군 40만 명에 포위되어 도로는 전부 차단되어 전멸, 질식 직전에 우리 광복군, 조선의용군들이 지게부대를 편성해서 게릴라식으로 식량, 소금, 실탄을 보급했기에  포위망에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또 정보 활동하시다 체포된 분은 혀를 깨물어 자진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선열 수천 명이 희생되어 우리는 반쪽이나마 광복을 했고 중국은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헤게모니 투쟁에 위협세력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여 그 막강했던 조선의용군의 상당수를 북한에 보내 6.25의 남침의 주력이 되게 하였으니 이 한스러움을 역사에 어떻게 기록해야 하겠습니까?

  6.25 전쟁이 없었더라면 절대적으로 많은 조선족이 중국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 국가보훈처 이종정 차장님께서 7억 예산을 배정해 주어 입구와 도로는 정비되었지만 이끼에 덮혀 있는 봉분과 주변의 아카시아 등의 잡목들은 다시 정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뜻있는 분이 계시면 내년도 구정에 동참하시면 기쁘겠습니다.

 - 통일교육원 박갑수 교수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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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도 찼어라! 나라 잃은 나그네야. 바친 길 비록 광복군이었으나 가시밭길 더욱 한이었다. 순국하고도 못 잊었을 조국이여 꽃동산에 뼈나마 여기 묻히었으니 동지들아 편히 잠드시라!

이 글은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광복군 묘소의 비문이다. 광복군 묘소를 오르는 돌계단 길엔 가을색이 짙다. 이곳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인 손병희 선생을 비롯하여 애국지사 21분과 광복군 17, 그리고 4·19 의거 학생의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단독관리가 되고 있는 국립 4·19 민주묘지를 제외한 애국선열들의 묘소는 해마다 강북구청에서 벌초를 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선열들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이 묘소들을 참배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 서글픈 생각이 드는 묘소가 있으니 광복군 17위를 초라한 하나의 봉분에 안장한 합동묘소다.

우리나라가 독립하기까지 33인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의 강력한 지도력이 있었기에 독립의 의지를 2천만 동포의 가슴속에 심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합동묘소에 잠든 17위의 광복군처럼 이름도 빛도 없이 그늘에서 목숨을 바친 분들이 또한 계셨기에 오늘날 우리 민족이 독립국가로서 번영을 누리고 있다. 한 사람의 장군이 훈장을 타기까지는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있었기에 훈장을 일명 ‘피의 꽃’이라도 하는 것처럼 독립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무명의 광복군이 숨져갔는가? 이름난 애국지사나 이름없는 광복군이나 조국을 향한 그 뜨거운 애국심에 터럭만큼인들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분들은 살아서도 이름없이 숨져갔듯 돌아가서도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다른 선열들의 묘소는 웅장하게 양지바른 곳에 잘 모셔져 있는데 이분들의 묘소는 17분이나 잠들었음에도 그 규모도 작고 초라하게 그늘진 곳에 있는데다, 올라가는 길도 장맛비에 패고 허물어져 걷기조차 힘든다. 살아서도 돌 자갈 가시덤불보다 더 험했을 구국의 길을 걸었을 이들이 황천에서조차 다시 그 길을 걸어 제삿밥을 잡수러 오셔야 하는지!

나라를 위한 피보다 진한 구국의 마음에 어찌 그 지위의 높고 낮음에 차등이 있을까. 국가보훈처에서는 하루빨리 광복군 묘소와 주변을 예우에 합당하게 보수·단장하여 후손들의 가슴속에도 그분들의 애국혼을 심어주기를 바란다.

 

임순화/서울 강북구 수유1 / 한겨레신문 2006/10/13()

[출처][독자발언대] 초라한 광복군 묘소, 새 단장 시급하다|작성자꼬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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