辛卯秋夕 三省吾身
나는 무엇이고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인가.
나는 서예가이고 라이브 서예를 향하여 간다.
나는 나의 목소리를 얼마나 내고 있는가.
나는 나의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살아간다.
겸손의 미덕이 최고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낮은 곳에 물이 고이니까.
어제는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하는
제21회 공무원미술대전 서예한문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받아
정부 과천청사에 다녀왔다.
여론이 심사위원장으로 거의 추대되는 과정에서
나보다 연세 높으신 사진 부문 심사위원에게 사양했다.
연전에도 이곳저곳에서 타천으로 주어지는
세칭 높은 자리를 사양했었다.
그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차례 이상 추천하는 자리는 사양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내가 꿈꾸고 있는 서 예술의 경우,
특히 라이브 서예의 경우에는 혼신의 노력으로 현장을 뛰고 있다.
남의 권유를 거의 사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던하다는 소리는 듣지만
몸은 언제나 조금은 피곤한 상태이다.
골프를 배우지도 않았지만 18홀까지 따라다니거나
고스톱을 칠 줄 알면서도 몇 시간 동안 친구라는 이유로 구경하기도 한다.
술자리가 마음에 들 든 들지 않던 대개 끝까지 앉아 주는 편이다.
비생산적이고, 창의적이지 못하지만, 그놈의 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을 계기로 생각을 좀 바꿔 볼까 한다.
첫째, 인간관계를 문제이다.
귀한 만남을 가진 다음 날
상대방이 전화하지 않으면 거의 먼저 거는 법이 없었는데
이제는 예의를 지켜 다음 날쯤에 감사의 인사를 꼭 올리기로 한다.
홈페이지에 ‘이달의 소중한 분들’이란 코너를 만들고 기록은 잘 하고 있지만
다만 기록에 그쳤을 뿐이다.
참으로 귀한 인연, 아니 필연으로 생각되는 분들에게도
감사의 전화조차 제대로 할 줄 몰랐다.
새로운 만남도 중요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자.
소중한 만남을 잘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내 목소리를 잘 내는 길이다.
나름의 생각과 느낌과 상상의 발칙한 세계를 갖지 않으면
진정한 아티스트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최고의 아티스트를 표방하자.
이를테면 내 작품 관리를 잘 하자는 뜻이다.
최고의 붓, 최고의 먹, 최고의 종이, 최고의 표구를 표방하는 말이다.
이제까지는 적당하면 그냥 넘어가곤 했다.
작품 사진과 동영상도 최고의 품질로 다가가야 한다.
그러자면 최고의 사진작가를 만나야 한다.
물론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
최고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최고의 붓질을 선보이며
남이 와서 봐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다가가는 서예를 해야 한다.
포장의 중요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포장이 시원치 않으면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늘 봐 오면서도 정작 나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다.
아마 선택한 가난으로 살아온 탓일까.
셋째, 건강을 돌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건강은 부모님께 감사한다.
두 분께서 다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건강을 챙기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예술가의 건강은 정신적 건강까지 포함하고 있다.
항상 맑고 고상한 생각을 우려내기 위해서는 잠을 좀 더 자 둬야 한다.
고집스럽게 책임량 중심, 목표량 중심으로 일하다가 보니,
피곤한 몸의 뒷감당이 되지 않는다.
우선 힘을 기르자.
體力이 書力이다.
湧泉穴을 뚫어 대지를 호흡하자.
百會를 뚫어 天氣를 받아들이자.
일반적으로 서예는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고 고독이 요구된다. 獨身樂道의 길이다.
그러나 라이브 서예는 참가자 모두와 함께하는 것이다. 與衆樂道의 길이다.
가을 하늘을 우러러 본다. 쪽빛 화선지이다.
구름 몇 점. 맑은 먹빛으로 다가온다.
내가 걷는 불암산길은 붓길이다.
멀리서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먹 가는 소리이다.
불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의 자양분은 예술혼이다.
靜中動이 있고, 動中靜이 있다.
해는 알고 있다. 나의 의지를.
달도 알고 있다. 나의 꿈을.
나의 큰 바위 얼굴은 삼각산 인수봉이다.
서울에서는 어디에서나 인수봉이 보인다.
붓의 이미지를 지녔기 때문에 큰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순간에도
높은 위치의 창가에 앉아 밥 한 술 먹고, 인수봉을 바라보곤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서예는 종이 위에 펼쳐지는 춤이다.
언제나 즐거움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른바 樂業이어야 한다.
知業과 行業도 중요하지만 樂業이 가장 높은 가치이다.
쓰고 싶다는 마음은 춤추고 싶은 마음이다.
상 타는 것으로, 점수로 평가하는 세상이 밉기도 하지만
대안이 없는 세상에 나는 그냥 나의 길을 갈 뿐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의연하고 굳세게 나의 길을 가자.
종이 위에 魂을 심자.
나의 혼, 우리의 혼, 모두의 혼을 심자.
一筆入魂
나는 무엇이고 어디를 향하여 갈 것인가.
나의 목소리를 내자.
권상호
청림
둥둥팔월 한가위 즐겁개 보내시고 건필하시고 건강하세요~^^
북한산 인수봉 청림이도 무진장 좋아하는데.....
이수환
권상호
추석 인사 올립니다. 더한 건강으로 밝은 나날 보내소서.
권상호
유영종
통일교육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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