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월간서예> 투고- '한민족의 아키타이프-그 근원을 캐다'

(보도자료- 원문을 반 정도 줄인 내용)                       

                                 한민족의 아키타이프-그 근원을 캐다

                                                                                                                   권상호(문학박사, 문예평론가)

예술이라 하면 예[技藝]와 술[學術]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요즘은 특별한 재료나 기교, 또는 양식으로 남의 시선을 끌려고 하는 비주얼커뮤니케이션(Visual Communication)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여 기예(技藝) 쪽에만 신경을 쓰고, 학술(學術)의 개념은 점점 희박해 지고 있어 안타깝다. 특히 서예(書藝)는 여타 장르보다도 인문학적 바탕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예술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근원 선생의 경우 이 두 가지를 정확히 아우르는 진정성 있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생의 작품에는 정치(精緻)한 기예와 상생(相生)의 기운이 우러남은 물론 여기에다 언어학, 철학, 고고학, 미술사 등과 같은 학술적 깊이에서 오는 관조적 정서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 앞에 서면 깨달음의 감동과 함께 신화적 신성(神性)이 엄습해 와서 묘한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칼로 새김과 붓으로 그음, 그것은 근원 선생에게 있어서만은 단순한 전각(篆刻)이나 서예가 아니라 잊혀가는 한국 고대문화의 원형 탐구와 우리 민족 신화(神話)와 신앙(信仰) 속에 숨어있는 상징(象徵)을 밝히고자 하는 신념이자 염원의 표현이다. 일생에 걸친 인고(忍苦)의 시간을 거치며 한 점 한 획에 쏟은 정성은 그에게는 몸 수행이자 마음의 기도이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기고 팔질(八耋)을 바라보는 춘추(春秋)에도 한민족(韓民族)의 정신적 DNA를 밝히고자 하는 선생의 열정만큼은 언제나 청춘이다. 지금도 발굴을 위한 삽과 괭이 대신에 붓과 칼을 들고 동아시아 일대를 두루 섭렵하며 한민족의 고대사와 고문화의 근원을 캐내고자 고심하고 있다. 공간적으로 광활하고, 시간적으로 유구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을 우리의 근원(近源)에서 캐내어 그 원형질을 ‘빛살무늬’로 밝혀내는 고문화(古文化) 상징(象徵)의 해석(解釋) 학자이자, 동시에 그 세계를 작품으로 형상화해내고 있는 작가(作家)의 길을 가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선생의 논문과 서적, 그리고 발표 작품을 살펴본 결과 선생의 ‘필생의 작업’(獨, Lebenswerk)은 바로 ‘한국 고대문화의 아키타이프(Archetype) 구현’이란 믿음이 생겼다. 철학에서 ‘한 민족의 정신 속에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무의식의 관념’을 아키타이프라 하는데 번역하자면 ‘元型, 原型, 典型’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결국, 선생의 필생 작업은 한국 고대문화의 원형 연구와 작품 제작을 통한 한민족의 정신적 DNA를 밝히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석재문화상(石齋文化賞) 수상을 기념하여 열리는 초대전 출품작을 중심으로 한국 고대문화의 아키타이프를 찾아보고자 한다. 아울러 작품 창작의 동기, 창작 목적, 창작 내용, 창작 과정, 구도와 소재,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는 사람 등을 분석해 봄으로써 선생의 사상과 철학 및 차별화된 작가 정신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선생의 경우 창작 동기 측면에서 보면 ‘연정이발(緣情而發)의 작가’이다. 緣情而發이란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나오는 말로 백운 선생의 문학 창작 동기를 적절하게 나타낸 구절이다. 그는 글의 연원을 ‘정(情)에 연유(緣由)한 마음의 격동(激動)’에 두고, 일단 마음속에 격함이 있으면 자연히 발로(發露)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여 ‘緣情而發’로서의 문학 창작관을 말하고 있다.
선생의 모든 작품에서 지나간 칼자국이나 붓질의 흔적을 살펴보면, 어떤 키워드나 이미지가 ‘마음속에 불쑥 일어나면’ 그 격동을 참지 못하고 즉시 형상화(形象化) 작업에 들어갔다. 돌 위에서 칼을 잡든 종이 위에서 붓을 들든 거침없이 긋고 써 내려간 흔적에서 緣情而發의 작가임을 알 수 있다. 혹여 잘못 쓴 글자가 있더라도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序)’에서처럼 초고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서 교정해 나간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이것은 실수나 단점도 작업의 과정으로 노출하려는 작가의 의도된 계산이다. 필자는 이를 라이브서예(Live Calligraphy)라 칭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선생처럼 깊은 학문적 소양과 오랜 필륜(筆輪)이 있을 때 가능하다. 자칫 거친 작업은 어둡기 십상이고, 시간을 다투는 작업은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인지 선생의 작품은 무거우면서도 어둡지 않고, 역동적이면서도 가볍지 않다.
 
둘째, 선생의 창작 목적은 ‘한국 고대문화의 원형 탐구와 상징의 해석’에 있다. 이를 위해 선생은 문자 이전의 신화(神話)의 세계에서 모티브(Motive)를 찾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는 쓰인 거짓말이고 신화는 쓰이지 않은 진실’이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神話 속에는 신성하고 존엄한 고대인의 사유 체계가 잘 반영되어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선생이 신화에 관심한 이유는 신화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신화에 나타난 ‘神’의 형상이 고문자(古文字)로는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한다. 오늘날 순우리말 대치어가 없는 한자인 ‘神’자 탄생의 비밀을 캐내고 그것을 밝히는 과정이 중요한 창작 목적이기도 하다. 한자 ‘神’자가 유입되기 이전에도 한반도에서 神을 일컫는 말은 있었을 터인즉 그 말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해석의 길을 화두로 삼아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일에 고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작가의 철학적 사유를 작품 속에 투영하여 한민족 문화의 뿌리와 원형을 걸러내려고 한다. 결국, 선생은 필생의 작업 끝에 ‘빛살’, ‘햇살’을 기원의 대상으로 삼은 제의(祭儀)의 세계에서 ‘神’의 원형이자 ‘神’의 상징인 빛살을 ‘丨’으로 기호화한 것임을 밝혀내고, 그것을 ‘획(劃)’의 시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주의 씨앗은 빛과 소리라 생각한다. 선생의 작업에서 빛은 점이나 획으로 형상화되고, 소리는 시부(詩賦)나 경문(經文)으로 표출된다. 창작 과정에 있어서 도흔(刀痕)이나 필획(筆劃)은 ‘빛살’의 형상으로, 화제로 쓴 시문은 ‘소리’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셋째, 선생의 작품 내용은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를 아우르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풍류지도(風流之道)’에 있다. 이 말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쓴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에 나오는데, 여기서 풍류는 단순히 품격 없이 되는대로 노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여기에서 三敎는 우리 민족의 신앙의 뿌리인 ‘유불선(儒佛仙)’을 두루 아우르는 개념이고, ‘접화군생’은 현대적 해석으로 ‘소통(疏通)’이나 ‘변화(變化)’의 의미로 다가온다.
선생의 작품에는 서당에서 서안을 마주한 유생(儒生)이 나타나는가 하면, 토굴에서 면벽하고 있는 선승(禪僧)이 나타나기도 하고, 더러는 세속을 벗어난 신선(神仙)이 등장한다. 그래선지 화폭에 나타난 주인공은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덕목을 수행하기 위하여 수신재가(修身齊家)하는 군자(君子)일 수도 있고, 사바의 질곡 속에서 번뇌하는 수도승(修道僧)일 수도 있으며, 더러는 껍질을 벗은 매미처럼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도인(道人)일 수도 있다.
선생은 접화군생을 위한 소통의 수단으로 화폭의 가장자리나 좌우에 한문으로 된 원문을 적고, 또 한글풀이를 친절하게 곁들이고 있다. 이는 그림은 읽으려 하나, 한문은 회피하는 한글세대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점도 있지만, 한문과 한글의 조형적 조화미를 고려한 제작상의 기법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넷째, 선생의 창작 과정은 시간을 쌓아가는 작업이다. 창작 과정을 크게 5단계로 나눠 볼 수 있는데, 곧 ① 흙 판 위에 칼질을 통한 도획(刀劃) 작업 – ② 이를 불에 구운 뒤에 질긴 한지(韓紙-특히 古紙)로 떠냄기법 쓰기 – ③ 떠냄기법 위에 색감 올리기 - ④ 土彩로 휘덮기 – ⑤ 마지막으로 붓글씨와 낙관(落款) 마무리 등의 다섯 단계가 그것이다. 흔히 서예 작업은 마지막의 단계가 시작이자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데, 선생은 앞의 4단계를 더하고 있다.
선생은 떠냄기법을 통한 굴곡(屈曲)과 요철(凹凸)을 줌으로써 시간을 쌓고, 약간의 공간도 확장하여 입체적 생명감을 불러낸다. 이러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에서 ‘예견되는 전시가 아닌 낯선 전시를 하겠다’는 진정한 작가정신을 읽을 수 있다.

다섯째, 선생의 작품에 나타난 구도상의 특징은 장법상(章法上) 정례화된 전통서예에서 많이 벗어나 있지만, 신이(神異)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림의 화제로 나타나는 글씨도 전통적으로는 위쪽에 배치하지만, 선생의 경우 주제가 되는 그림을 위쪽에 포치하고 글씨는 아래쪽에 쓰거나, 또는 그림을 한가운데 포치하고 글씨는 좌우로 나누어 기둥처럼 대칭으로 써 내려가기도 한다.
고대 神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작품에서는 잡신을 쫓고 재앙을 물리치는 의미의 붉은 빛의 부적(符籍)이 곳곳에 나타나는가 하면 아예 기원의 대상으로서 탑신과 불타 이미지로 화면을 채우기도 한다. 그리고 화면에 자주 나타나는 새는 하늘의 기운인 천정(天精)이요 물고기는 땅의 기운인 지령(地靈)을 표상하고 있으며, 나무는 신목(神木)이나 솟대처럼 다가오고, 집은 사당(祠堂), 탑은 기원의 대상으로 비친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은 동명왕과 같은 신화적인 인물을 비롯하여 무당이나 신녀(神女)와 같은 무희(舞姬)도 등장한다.

끝으로, 시나 소설의 경우처럼 서예나 그림에서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선생의 철학과 사상을 대변하는 작품 속의 인물로는 신화(神話)의 주인공이나 불타(佛陀)가 대부분이지만 고대사에 등장하는 단군(檀君)이나 동명왕(東明王), 최치원(崔致遠)이나 원감국사(圓鑑國師), 김시습(金時習)이나 허균(許筠)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창작에 자극을 줄 만한 탁월했던 사유(思惟)의 인물과 시대를 달리하며 이 땅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공간, 즉 서낭당, 사당, 절간, 서원, 향교, 누정(樓亭), 종택(宗宅) 등이 작품 속에서 형상화됨으로써 한국미의 근원적인 핵심에 대한 질문을 준엄하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필흔(筆痕)과 도흔(刀痕)으로 상상을 현실로, 신화를 진실로 일깨워준 선생의 전시 작품을 나름 두루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선생의 창작 활동은 ‘빛이 쓴 글씨’, ‘빛살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혼성과 변주를 통하여 서예 창작에 현대미술의 옷을 입힌 창의적 발상(發想), 한국 고대문화 원형의 상징을 빛살의 이미지로 밝힌 명쾌한 해석(解釋), 원시 종교의 신비로움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마음껏 펼친 심수쌍창(心手雙暢)의 열정 등이 하모니를 이루러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물은 감성을 일깨우고 이성을 정화하는 생명력 넘치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선생은 장르 콤플렉스에 젖어 있는 학계와 서예계에 새 바람을 일으켜, 작교개도(作橋開道)한 ‘열린 작가’이다. 영광스러운 석재문화상(石齋文化賞) 수상과 초대전이란 큰 경사에 돈수(頓首) 하례(賀禮)를 올리며 붓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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