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월호
창작의 진정성(眞正性)
권상호
서양에서는 글이나 그림을 완성하고 사인(sign)하지만, 동양에서는 낙관(落款)한다. 본문(本文)을 자신이 창작한 경우라면 글씨나 그림에 작가 자신의 호(號)나 이름을 쓰고 낙관을 찍으면 되지만, 남의 글을 빌려와 쓸 경우는 ‘기록할 록(錄)’ 자 밑에 본문의 출처를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현실에서 서예가 자신이 글까지 짓는 경우가 드물기에, 한문에서는 ‘자음(自吟)’ ‘찬병서(撰竝書)’, 한글에서는 ‘짓고 쓰다’ ‘지어 적다’ 등의 안 써도 될 문구를 자꾸만 덧붙이게 된다.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 서예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세대 단절의 위기가 오는 근거를 창작의 진정성(眞正性) 측면에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진정성(眞情性)은 감정에 호소하는 말이지만, ‘바를 정(正)’ 자 ‘진정성(眞正性)’은 올바른 이성적 판단을 위해서다. 표구(表具)까지 스스로 하는 작가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종이 위에 표현된 내용(內容)과 형식(形式)만을 화두(話頭)로 삼는다.
담론의 편의를 위하여 모 공모전의 대상(大賞) 작품을 상정(想定)하고 창작의 진정성을 토구(討究)해 보기로 한다. 첫째, 작품의 본문을 필자가 직접 지었는가, 아니면 남의 글을 글감으로 빌렸는가. 만약 당대 문인의 글이라면 자칫 지적 재산권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둘째, 서체(書體)의 독창성은 어느 정도인가. 혹시 어떤 서체 또는 누구의 필체를 완벽하게 잘 따라 썼다고 하여 높은 점수를 받지는 않았는가. 셋째, 조형성(造形性)에 대한 질문이다. 필법(筆法), 자법(字法), 장법(章法)에 대한 안목과 필력(筆力)은 어느 정도인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모전 평가 기준은 거의 이 항목에 의존한다. 공모전의 경우 종이의 크기가 정해져 있으므로 장법에 변화를 주기는 힘들다. 넷째, 내용과 형식의 조화가 이루어졌는가. 경전(經典) 속의 성현의 가르침이나 선조의 행적을 기리는 비문(碑文)은 엄정한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로 써야 어울리고, 자연을 읊은 시문(詩文)이나 수필(隨筆)은 정감 넘치는 행서(行書)나 초서(草書)가 어울린다. 그렇지 못하다면 내용을 모르고 쓴 꼴이 된다.
만약, 남의 글을 남의 서체로 쓰고, 남이 새긴 도장으로 찍었다면 창작률은 제로이고 손(필력)만이 오롯이 작가의 몫인 셈이다. 말로만 문사철(文史哲), 시서화(詩書畵), 서화각(書畫刻),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 하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해서는 곤란하다. 만약 완당(阮堂) 선생이 지금 공모전에 출품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위의 네 가지 조건으로 심사하면 대상(大賞)을 받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지없이 낙선하고 말 것이다.
창조(創造)는 신의 영역이나, 창작(創作)은 인간의 영역이다. 창작은 잠깐(乍)의 일이지만 그 결과물은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다. 권력 유지를 위한 그들만의 글이 아닌, 무지렁이들을 위해 창제한 지구상의 유일한 글, 한글이 우리에게 있고, 인천 송도에 세계 세 번째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비로소 문을 열었다. 묵향에 인생을 담고 살아가는 묵우(墨友)여, 진정성 있는 창작으로 KC(Korean Calligraphy)의 ‘가치를 같이’ 만들어 보세나. 한국 서예의 창창한 미래를 긋고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