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게 길을 묻다
권상호(문학박사, 칼럼니스트)
바람이 불어온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은 절대 자유영혼이다. 우리가 무엇을 바란다고 할 때의 바람(wish)도 지금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wind)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허허로운 바람은 언제나 승리자(winner)가 아니던가. 바람은 지구를 포옹하고 있으면서 모든 생명체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오늘따라 바람이 되고 싶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모양이 없기 때문에 바람을 뜻하는 문자를 처음으로 만들 때는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한다. 갑골문 시대에는 상상의 새인 봉새가 바람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여 ‘봉새 봉(鳳)’ 자로 바람을 표현했다. 바람을 타고 나는 새의 모습으로 만든 글자이므로 ‘봉새 봉(鳳)’ 자 안에 ‘새 조(鳥)’가 들어있음은 당연하다. 아울러 바람에 움직이는 돛을 보고, ‘봉(鳳)’ 자 곁에 ‘돛 범(凡)’ 자를 덧붙여 바람의 작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소전 시대에 오면 봉(鳳) 자 안의 ‘조(鳥)’ 대신에 ‘충(虫)’을 넣은 글자를 새로 만들어 ‘봉(鳳)’과 ‘풍(風)’을 구분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해의 풍년은 바람의 덕으로 생각하여 ‘풍년 풍(豐)’의 발음도 ‘바람 풍(風)’과 같게 했다. 또 여러 달 동안 나무에 바람이 스치면 ‘단풍(楓)’이 들고, 주고받는 말에 바람이 들면 ‘풍자(諷)’가 된다. 그리하여 ‘단풍 풍(楓)’과 ‘풍자할 풍(諷)’ 자의 발음도 똑같다. ‘풍년 풍(豐)’ 자는 제기(豆) 위에 제물을 풍성하게 올려놓은 모양인데, 여기에서 제물(祭物)을 뜻하는 풍(丰) 자도 역시 발음이 같다. 음이 같으면 의미도 상통함은 모든 언어의 보편적인 특성이다.
문필봉(文筆峰)이란 이름을 가진 지명이나 산봉우리가 전국적으로 대단히 많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붓끝처럼 뾰족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붓꽃도 꽃봉오리가 붓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고 보니 봉우리는 큰 붓이고 봉오리는 작은 붓이 된다. 봉우리는 하늘을 종이 삼아 글씨를 쓰니, 일월성신과 구름이 그 흔적이고, 봉오리는 땅 위에 그림을 그리니 형형색색의 꽃으로 피어난다.
산봉우리의 특성은 ‘뾰족함’과 ‘만남’, 그리고 ‘바람’의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필봉(筆鋒)도 그렇다. 어느 산자락에서 출발하든 정상에서는 모두 만나게 된다. 이런 뜻에서 ‘산봉우리 봉(峰)’ 자를 만들었다. 꽃망울이 터짐은 풀(艹)에서 우레(雷)가 치는 것과 같은 경이로운 변화이다. 이를 보고 ‘꽃봉오리 뢰(蕾)’ 자를 만들었다. 산봉우리든 붓끝이든 바람이 많이 이므로 봉(峰)·봉(鋒)·풍(風)의 중국어 발음은 [fēng]으로 똑같다.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꽃봉오리를 볼 때마다 그것은 바람의 작품이라 생각한다. 내 머리도 바람의 작품이다. 해를 더할수록 더 많은 바람이 불어 머리숱은 줄어들지만, 빛남은 나날이 더하고 있다.
순례자들은 삶의 의미를 들바람에서 찾고자 길을 떠난다. 예인(藝人)들은 삶의 의미를 마음 바람(心風)에서 찾고자 붓길을 떠난다. 얼마나 더 먼 길을 걷고, 얼마나 더 많은 길을 더 헤매야만 밥값, 이름값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람을 더 쐐야 자연을 닮은 글씨를 쓸 수 있을까. 힘들면 바람을 등지고 걸으면 되고, 무료하면 바람을 안고 걸으면 된다.
그래 인생은 바람이다. 무풍(無風)이려니 했는데 미풍(微風)을 만나기도 하고, 순풍(順風)이려니 했는데 폭풍(暴風)을 만나기도 한다. 인생은 소풍(逍風) 온 풍각쟁이와 같다. 뜻밖의 돌풍(突風)을 만나 고생할 때도 있지만 운이 좋으면 내가 돌풍을 일으키는 수도 있다.
미세먼지 몰아낼 청풍(淸風)은 어디 가고, 잘난 얼굴 덧씌울 흑풍(黑風)만 몰려오나. 바람을 거역하면 역풍(逆風)을 만나고, 바람을 모독하면 중풍(中風)을 맞는다. 무리하게 바람을 쫓다간 팔다리 관절에 통풍(痛風)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풍속(風俗)은 다르지만, 그 풍속을 따라야 무탈하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풍속을 유풍(遺風)이라 한다. ‘남길 유(遺)’ 자에 ‘귀할 귀(貴)’ 자가 들어있는 걸 보면 유산(遺産)이나 유물(遺物)은 물론 유풍(遺風)까지도 귀한 것만을 남겨야 한다. 유묵(遺墨) 또한 아무거나 남겨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실패를 두려워하여 집필을 거부하면 더욱 곤란하다. 그래도 가끔 붓꼴림이 있을라치면, 겁먹지 말고 참지 말고 백지 위에 필풍(筆風)을 일으켜야 한다. 이 풍진(風塵) 세상에 태어나 잡을 건 많지만, 그중에 특별히 붓을 잡은 건 천행이 아닌가.
여생은 붓길에 마음 얹고 바람처럼 살아가련다. 바람으로 힐링하고, 바람의 자유와 포용으로 살아가련다. 글씨에도 ‘씨’가 붙은 걸 보면 분명코 생명이 있다. 모든 씨앗이 그렇듯 얼핏 보기엔 죽은듯하나 때가 되면 싹을 틔운다. 오늘의 내 작은 글씨도 먼 훗날 나름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겠지. 작은 씨앗이 열매 맺기까지는 많은 바람과 물과 햇살이 필요하듯이, 내 글씨도 작은 열매나마 맺으려면 많은 손발과 머리와 가슴의 떨림이 필요하겠지.
바람이 지나간다. 샛바람처럼 다사롭게, 마파람처럼 뜨겁게, 하늬바람처럼 상큼하게, 높새바람처럼 매몰차게……. 계절풍에 몸을 맡기고 들길을 걷다가, 필흥(筆興)이 일어나면 춤을 춘들 어떠리. 질풍(疾風)만이 바람이랴 필풍(筆風)도 바람이다. 훈풍(薰風)에 보리알 익듯 내 글씨도 익어갈까.
나의 서풍(書風)은 어디로 불고 있나. 바람에게 길을 묻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