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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비서상(昨非書庠)
http://www.jaakbi.com/01_company
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이 그릇된 것임을 알았다
지난날의 과오를 깨닫고 옳은 길을 찾았기에 분연히 그 길로 나아가겠다 다짐하며, 새로운 서예학교 【작비서상(昨非書庠)】의 문을 엽니다.
: 하석 박원규 (master@hasok.net)
전쟁과 정복, 숨 가쁜 성장으로 내달았던 20세기를 뒤로하고 새천년에 접어든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습니다. 전지구적 차원의 공존과 화합을 꿈꾸며 열어젖힌 21세기는 여전히 '세계화'라는 지난 세기의 격랑에 휘말려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세계화가 곧 서구화를 뜻하게 되어버린 지금, 한국의 전통문화는 쇠락을 면치 못하고, 현재의 문화도 제 빛깔을 뽐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고유의 문화를 모르고서, 우리의 독창적인 문화를 일궈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계를 향해 발언할 수 있을까요?
문화와 예술, 정신세계에서 '언어'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기에 '문자와 문장'을 화두로 삼아 평생을 고민해온 서예인으로서 현실을 좌시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저 우리 문화 부흥에 힘쓰자고 항변할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기를 방법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같이 모여 공부하고, 제대로 가르치고 익히는 교육기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한국 서단에서 저는 중화권으로 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소위 유학1세대에 속합니다. 제 스승들은 그야말로 선비로서 한학자이자 서예가였으며, 저와 동세대 서예가들은 그런 분들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으며 유학이라는 방식으로 또 다른 스승을 찾아 나선 경우입니다. 제 후학들은 사설 서예교습소와 대학의 서예학과, 공모전 등을 통해 서단에 첫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오로지 개인지도와 일대일 전수만이 서예를 배우는 길이었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서예 교육기관의 양적·질적 팽창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하향 평준화를 몰고 오는 저변 확대는 진정한 서예문화의 형성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서예교육은 아직도 기존의 도제식 교육법에 젖어 있는 부분이 많고, 대부분의 서예 교습공간들이 뚜렷한 한계를 지닌 것도 사실입니다. 선생의 지도에 대한 맹종과 권위적인 교수법, 체계적이지 못한 커리큘럼, 단순반복 위주의 실기중심 교육방식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전문 서예가 양성은 논외로 하고 일반인을 위한 사회교육기관으로서 서예교습소만 하더라도, 대개 이곳이 붓글씨를 처음 접하는 어린이들에게 단순히 붓을 갖고 노는 놀이터, 또는 뜻도 모른 채 체본 흉내내기만을 강요당하는 지루한 곳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생각할 때,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백화점 문화센터의 우아한 취미 실기반 수준을 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 새로운 서예 교육기관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서예는 문자를 기반으로 한 동양문화의 정수이며 진정 고급문화입니다. 한문, 문학, 철학, 역사학 등 인문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식견이 바탕에 있어야 가능한 고도의 정신적, 지적 예술이 바로 서예입니다. 따라서 붓을 쥐고 글씨를 쓰는 수련뿐만 아니라 문자의 형성원리를 찬찬히 살펴보며 한문을 익히고, 서예의 역사와 미학적 이론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서예학교 【작비서상】은 예(藝)와 학(學)을 겸비한 진정한 서예문화를 전달하고 창출하는 배움터가 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연구·정진하여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충실한 교재를 개발하는 작업, 정확하게 해설한 법첩과 서예전문 교양지 『까마』의 발간, 질 좋은 문방사보와 서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디자인상품 제작, 이 모든 일이 새로운 서예학교 【작비서상】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작비서상】에서는 서예사와 고전 강의를 통해 한문교육을 병행하면서, 이런 이론적 바탕 위에 바르고 정확한 획을 구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지도하고자 합니다. 자유롭고 학구적인 분위기 속에서 체계적인 교육으로 좋은 글씨를 알아보는 안목을 길러주고, 개성에 따라 자기만의 획과 결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글씨를 배우는 일차적 목적이 '고결한 품성의 도야'일진대, 체화(體化)된 문자교육으로 인문교양의 기본을 다져 높은 지성과 굳은 도덕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또한 【작비서상】의 목표입니다.
한문과 서예를 알면 동양문화의 반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니, 세계문화의 반을 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이는 삼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붓과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꾸준히 작품활동과 후학지도를 겸해오면서 실감한 진리이기도 합니다.
서예는 고리타분한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현재와 미래의 우리를 풍요롭게 할 더없이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작비서상】은 밖으로 활짝 열린 교육기관으로서 동양의 문화, 한국의 문화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서예를 매개로 우리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믿음직한 문호가 되고자 합니다.
바른 이념과 합리적인 길로 여러분과 만나고 싶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작비서상】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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