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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교실

서예의 특성

   문자의 기능을 의미 전달과 의사 소통 외에 개성과 기교는 물론 인격까지 드러내는 예술로 여기는 문화권은 우리 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의 동양 3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 국가에서 문자가 예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해당 문자의 성격이나 이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독특한 도구의 개발과 관계 깊다. 이들 3국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던 한자는 원래 표의 문자인 까닭에 문자마다 일정한 형상, 즉 조형성(造形性)을 가지고 있다. 또 그것을 쓰기 위한 용구인 문방사우(文房四友), 특히 붓은 문자가 예술의 영역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먹물의 농담(濃淡)과 붓을 움직이는 힘이나 속도 등에 따라서 다양하게 표출되는 선과 점의 질감이 서예의 가장 큰 특성인 것이다.

  서예에서 문자는 일점 일획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붓을 움직이는 방향, 속도, 압력에 의하여 표현된다. 그 일점 일획에는 먹의 농담이나 윤갈(潤渴), 선의 굵기와 방향이 있을 뿐 어떤 화려한 자태나 입체감이 있는 것도 아니며, 또 각 문자 간의 연결도 그 모양은 지극히 간단하고 소박하다. 서예는 이렇게 간소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 표현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서예는 단순한 선과 점을 통해 그 사람의 사상과 감정은 물론 인생과 우주의 기운을 드러낼 수 있는 고도의 정신적 숙련을 요구한다. 붓이 한 번 움직인 필획(筆劃)은 단지 선이 만드는 경계에 지나지 않지만 거기에는 길고 짧음의 대비와 굵고 가는 선의 구별이 있으며, 선이 굽거나 꺾이는 곳이 있다. 또 자유분방한 것이 있으며 경색된 것도 있다. 이러한 요소들을 적절히 조화시켜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자기만의 독창성을 발현하고 그 속에 인격을 담아 내는 것이 바로 서예의 본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서예 작품은 자연스러운 마음과 훌륭한 인품에서 우러난 것이어야 한다. 마음에도 없는 것을 억지로 표현하려고 한다거나 남의 글씨를 흉내내어 기교만을 내세운 것은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우리가 서예를 말할 때, 가장 먼저 ‘서여기인(書如其人)’이란 말을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인’은 당연히 그 사람의 인품, 교양, 학식 등을 뜻한다. 그렇기에 서예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그럴듯한 것이라도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 쓴 것이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반대로 지사나 충신, 고매한 학자들이 쓴 것은 그것이 잘 되고 못 되고를 떠나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글은 여러 단어나 문장을 나열해야 그 사람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지만, 글씨는 단 한 자나 두서너 자를 통해서도 그 사람의 성정과 됨됨이를 평가할 수 있다. 서예에서는 절제와 생략의 도(道)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서예의 또 다른 특성은 일회성이다. 글씨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결코 덧칠하지 않는 것이 서예의 불문율(不文律)이다. 이것은 시간이나 우리의 생명도 되풀이되는 법이 없다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일회성은 다시 덧칠하지 않은 획 그 자체이며, 그렇기에 서예는 오랫동안 골똘히 생각해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써 내려가는 순간성과 즉흥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 이르기 위해서는 임서(臨書)라고 하는 배껴 쓰기의 과정을 오랫동안 거쳐야 함은 물론이다.

  서예는 한자 문화권에서 수천 년 동안 이어 내려온 백색 예술의 진수이다. 이는 단순히 문자를 이용한 예술이라기보다는 인생과 우주의 이치를 담아 냄으로써 인격 도야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유례없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과 학문, 성정(性情)이 녹아 있으며, 치열한 정신과 풍성한 감수성이 형상화되어 있다. 이러한 전통을 오늘날에 어떻게 이어받아 새로운 예술로 재창조할지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또한, 문자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는 서양에 서예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널리 이해시키고 이를 세계적인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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