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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자 백시(伯施). 여요(餘姚:浙江省) 출생. 6조(六朝)의 진(陳)나라 때부터 서와 학재로 알려지기 시작하여 수(隋)나라의 양제(煬帝)를 받들었으나 그리 중용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 태종의 신임을 받아 홍문관 학사 ·비서감을 거쳐 638년에는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가 되었다. 왕희지의 서법을 익혀, 구양 순(歐陽詢) ·저수량(褚遂良)과 함께 당나라 초의 3대가로 일컬어지며, 특히 해서(楷書)의 1인자로 알려져 있다. 태종은 우세남에게 서(書)를 배웠으며, “세남에게 5절(五絶)이 있는데, 그 첫째는 덕행(德行), 둘째는 충직(忠直), 셋째는 박학(博學), 넷째는 문사(文詞), 다섯째는 서한(書翰)이다”라고 절찬하였다고 한다.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가 유명하며, 행서로는 《여남공주묘지고(汝南公主墓誌稿)》가 있다. 시에서도 당시 궁정시단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시문집 《우비감집(虞?監集)》, 편저 《북당서초》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