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과 휴대전화가 실시간, 또는 쌍방향 통신수단이 되어버린 오늘날 옛 선비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전시회가 열린다. 디지털시대에 맡아보는 묵향이라고나 할까. 서울 관훈동 우림화랑은 조선시대의 서한 200여점을 한자리에 모아 오는 13일부터 27일까지 ‘선현들이 남기신 묵향(墨香)’전을 갖는다.
1500년대 영의정으로부터 1900년대 독립운동가의 작품까지 망라되었다. 우림화랑 측이 지난 10여년간 모은 700여 작품 중 일부를 내보이게 된 것이다. 화랑 측은 이번 전시를 위해 156점이 실린 도록을 만들었는데 간찰 연구를 위한 자료제공을 위해 2, 3집을 계속 발간할 예정이다.
편지는 쓰는 이에 따라 그 내용과 필치, 규모와 양식에서 모두 개성을 드러내게 마련이어서 볼거리·읽을거리를 제공함은 물론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다시 말해 육필 한 장에서 서한을 쓴 이의 인품과 심성, 그 시대의 풍속, 사회상까지 모두 엿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욕되게 보내주신 인편의 편지를 받고 기쁘게 살폈습니다. 복되게 맑은 여가를 보내심이 짝이 없다니, 다행스럽고 고맙습니다. 나는 겨울의 기후가 이상하여 여러가지로 병이 나서 보호하기가 배나 어려워서 괴롭습니다(하략).”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이 운명하기 8년 전인 1562년 순박한 필치(서예가 권창륜 평)로 쓴 답신에서는 당시 근황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데, 이미 겨울에 병에 걸렸다고 적고 있다.
“사미(沙尾)는 보(堡)에서 거리가 좀 멀으니, 그대가 가는 것은 더욱 어렵겠다. 친서가 와서 노인을 모시고 평안함을 알았으니 위로되는 마음이 자못 깊다(하략).”
다산 정약용 선생(1762~1836)이 쓴 서한은 그가 강진에서 10여년간 유배생활을 하던 1813년 쓴 것으로 건강이 좋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 시기 다산의 경서학 연구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으니 서신을 살피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퇴계와 다산 외에도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서 자연과 함께 산 정두경, 기호학파의 거두 송시열, 관혼상제의 학설을 모아 ‘가례원류(家禮源流)’를 지은 유계, 가장 먼저 개화에 눈뜬 박규수, ‘징비록’을 쓴 임진왜란 때의 영의정 유성룡, 한말의 풍운아인 흥선대원군 이하응 등의 서한도 나온다.
출품작은 간찰 외에 문학작품의 원고들도 포함되어 있다. 간찰과는 직접 관계는 없지만 추사 김정희가 쓴 대련 ‘堂階瑞色句紅葯(뜨락의 상서로운 빛은 붉은 작약과 같고)’ ‘臨水文光淨綠天(물에 임한 아름다운 빛은 하늘처럼 푸르네)’도 나와 눈길을 끈다.
임명석 우림화랑 대표는 “간찰은 값으로 따지면 20만~30만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선조들의 체취와 얼이 담긴 소중한 문화재인 만큼 흩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나아가 이를 토대로 기초 자료집도 만들어보겠다”고 말했다. (02)733-3738
〈이용 미술전문기자 ly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