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용필(用筆)
원전 : 閔祥德 <書法百問百答>
손가락으로 붓을 잡고, 팔의 운용(運用)으로 필봉(筆鋒)이 종이에 닿으면서 이룩되는 여러 점획의 과정을 '용필(用筆)'이라고 부르며, 집필(執筆)하고 운완(運腕)으로써 용필(用筆)하는 것을 종합하여 '필법(筆法)'이라고 칭한다.
서법(書法)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글씨를 쓰는 기법에 있는 것인 바, 그 기법은 용필(用筆)의 여하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이어서 매우 중요하다. 서(書)가 예술적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형상의 표현이 직접 이 용필(用筆)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법상의 점획은 그 형상에 있어 무궁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 많은 변화 속에서 용필(用筆)의 규율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필법(筆法)의 중요한 분야이니, 다음에 용필(用筆)의 규율을 종합하여 설명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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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기필(起筆)과 수필(收筆)
② 제필(提筆)과 돈필(頓筆, 按筆)
③ 경(輕)과 중(重)
④ 전(轉)과 절(折)
⑤ 방(方)과 원(圓)
⑥ 장봉(藏鋒)과 노봉(露鋒)
⑦ 중봉(中鋒), 측봉(側鋒), 편봉(偏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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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기필(起筆)과 수필(收筆)
하나의 점과 획에는 각각 명확한 기필(起筆)과 수필(收筆)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기필(起筆)이란 한 획의 개시를 말하는 것이고, 수필(收筆)이란 한 획의 결속을 말한다. 기필(起筆)과 수필(收筆)한 곳(한 획의 양 끝)의 상태는 그 점획의 형상을 결정 지우는 관건이 된다. 서법(書法)에서 가장 금기로 삼는 것은 방원(方圓)이 분명치 않거나, 경중(輕重)의 분별이 없이 '평타(平拖)'한 필획인 것이어서, 기필(起筆)과 수필(收筆)은 주의를 요한다.
기필법(起筆法) : 내리 그을 때는 옆(橫)에서부터 하필(下筆)하고, 가로획일 때에는 반드시 아래(縱)로부터 세워서 하필(下筆)하여야 한다.
수필법(收筆法) : 세로획일 때는 '무수불축(無垂不縮)'이라 하여 내리 긋는 동안 머물러 가며 내려오다가 봉(鋒)을 위로 향해 되돌려 수필(收筆)하여야 한다. 한편 가로획일 때는 '유왕필수(有往必收 = 無往不收)'라 하여 끝에 이르러서 그어 오던 쪽을 향해 회봉(回鋒)시켜 수필(收筆)한다.
② 제필(提筆)과 돈필(頓筆, 按筆)
글씨를 쓴다는 것은 한마디로 붓을 끌(提)거나, 혹은 누르(頓, 按)는 변화의 과정이라고 하겠다. 곧 붓이 종이 위에서 움직일 때, 제(提)와 안(按)은 교체해 가며 진행된다. 이 원리를 인식하고, 제(提)와 안(按)의 방법에 주의한다는 것은 곧 필세(筆勢)가 영활한 기운을 띠게 되는데 필요한 것이다.
'제필(提筆)'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한 획이 끝나고 다음 획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 획 안에서 필봉이 종이에 닿은 채 붓을 끌어 올리는 경우,
둘째, 붓을 내린 다음 획이 나가기 전에 필세를 쫓아 일단 붓을 들어올리는 경우,
셋째, 하나의 획이 끝나서 붓을 뗄 때, 그 획이 오던 방향으로 붓을 들어올리는 경우이다.
이렇게 하여 제필(提筆)의 결과는 '원(圓)'과 '세(細)적인 선조(線條, 점획)로서 나타나게 된다.(=>收筆)
'돈필(頓筆)'이란 제필(提筆)과 상반되는 것으로 붓을 내릴 때, 그 붓을 누르거나 획을 긋는 도중에 그 획 안에서 머무르는(停駐) 것을 말한다. 따라서 돈필(頓筆)의 결과는 '방(方)'과 '조(粗)'적인 선조(線條)로 나타나며, 일단 돈(頓)했을 경우에는 제 2의 동작을 취할 때나 수필(收筆)할 때에는 필봉이 굴러서(轉) 들어 올려(提筆)져야 한다.
글씨를 쓰는 과정에서 제(提)하면 돈(頓)해야 하고, 돈(頓)한 다음에는 반드시 제(提)해야 하는 이 변화는(心領神會) 마음이 거느리는 바에 의해 대단히 빠른 가운데 팔의 운동을 거쳐 필봉(筆鋒)에 이르러야 한다. 만약 이 제(提)와 안(按)의 방법을 다하지 않고 글씨를 썼을 때, 비첩(碑帖)과 대조하여 보면, 거기에는 수 없는 오류와 차이를 보게 된다. 점획의 제(提)와 돈(頓)을 익히는데 있어서도 물론 많은 수련이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나, 오랜 시간을 되풀이 하다보면 스스로 그 요령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한 점이나 점과 획 사이에 제(提)·돈(頓)이 명확하게 할수록 선조(線粗)가 분명해지며, 조세(粗細)의 변화가 뚜렷하면, 그에 따라 절주(節奏) 또한 확실해 진다. 뚜렷한 절주감(節奏感)은 점과 획에서 정신과 운미를 약연하게 느끼게 하며 살아 있는 이 점과 획에서 사람은 예술을 맛보는 것이다.
점과 획의 조세(粗細)가 균일한 소전(小篆)에 있어서도 운필상 내재하는 경중과 완급과 제돈(提頓)의 변화가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③ 경(輕)과 중(重)
점획의 경(輕)과 중(重)은 제(提)와 안(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필(下筆)을 가볍게 하면 나타나는 점획이 가늘고, 무거우면 점획이 굵은 것은 당연하다. 경중(輕重)과 제안(提按)이 동일한 것 같은 착각이 들지도 모르나, 양자는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곧 제안(提按)은 점획간의 기필(起筆)과 행필(行筆)과 수필(收筆)에 있어서, 용력(用力)에 따라 조세(粗細)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고,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은 점획의 내적 변화뿐만 아니라 비첩(碑帖)의 풍격(風格)과 특징까지도 표현되는 것이다.
서법(書法)은 용필(用筆)의 경중에 따라 각기 특징을 지니는 것이어서, 모든 작품에서 느낌도 달리 한다.
용필(用筆)이 경(輕)하면 영활하고 수려함을 느끼게 하는 바, 이러한 예를 예서(隸書)의 [조전비(曹全碑)]에서 볼 수 있으며, 용필(用筆)이 중하여 단장하고 침착한 느낌을 주는 것은 [장천비(張遷碑)]에서 볼 수 있다.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에 대해서는 필호(筆毫)가 종이에 닿는 부분에 따라 세 유형으로 나눈다. 호(毫)의 중간에서 봉(鋒)까지의 사이를 삼등분하여 붓이 지면에 닿는 부분이 3분의 1일 경우, 이것을 '용일분필(用一分筆)'이라 하고 3분의 2일 경우를 '용이분필(用二分筆)', 그리고 호(毫)의 하반부(下半部)가 종이에 닿는 경우를 '용삼분필(用三分筆)'이라고 한다.
이것을 각각 비첩(碑帖)에서 찾아보면
일분필(一分筆) : 예기비(禮器碑), 장맹룡비(張猛龍碑), 황보탄비(皇甫誕碑)
이분필(二分筆) : 장천비(張遷碑), 정문공비(鄭文公碑),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삼분필(三分筆) : 서협송(西狹頌), 동방삭화찬(東方朔畵贊)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작품은 용필(用筆)의 경중(輕重)으로 특징지어져 있어서 어떠한 비첩(碑帖)이든 간에 임첩(臨帖)에 앞서 용필(用筆)의 경중을 심중(心中)에 두나면, 보다 용이하게 원작품의 격조와 화합을 통일시켜 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용필(用筆) 상의 특징을 소홀히 한다면 일분필(一分筆)의 [예기비(禮器碑)]를 삼분필(三分筆)로 써서 비중(肥重)하여 수경(瘦勁) 관작(寬綽)한 [예기비(禮器碑)]의 특징을 잃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어느 획은 일분필(一分筆)을 쓰고, 다른 획은 이분필(二分筆)로, 또 다른 획은 삼분필(三分筆)로 써서 필획의 조세적(粗細的) 변화를 뚜렷히 보이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이와는 경우를 달리 하여 어느 서가(書家)는 일분필(一分筆)을 쓰고, 어느 사람은 이분필(二分筆)을, 어느 서가(書家)는 삼분필(三分筆)을 써서, 각자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할 수도 있다.
④ 전(轉)과 절(折)
'전(轉)'이란 붓을 종이에 대고 둥글 게 굴려 돌려서 모나게 꺾어 뿔이 나지 않는 필획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때 손가락으로 필관(筆管)을 굴리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원적(圓的) 점획의 용필 방법을 '전이성원(轉以成圓)'이라 하는 바, 그 요령은 행필(行筆) 과정에서 붓이 머무르지[정주(停駐)] 않고 속도를 고르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전(轉)에 비해 '절(折)'은 방적(方的) 점획을 만드는 용필법(用筆法)으로서 '절이성방(折以成方)'이라 한다. 절(折)은 한 획의 중간에서 소위 '일필삼과(一筆三過)'라 하여, 관절의 작용으로 꺾는 것이 있기는 하나, 주로 한 획의 개시(開始)나 결속 할 때 방향을 바꾸는 데 쓰인다.
절필(折筆)로서 개시(開始)[기필(起筆)]와 결속[수필(收筆)], 또는 가로획에서 세로획으로, 세로획에서 가로획으로 꺾는 방법에 대해 증명하겠다.
가로획의 절필(折筆) 방법 : 기필(起筆 : 필봉(筆鋒)이 종이와 접촉하는 시초)은 좌측 상방을 향해 일단 대었다가, 아래로 돈필(頓筆)하여 머무른 다음, 절봉(折鋒)하여 우(右)로 향해 행필(行筆)하며, 수필(收筆)할 때에는 우측 하방으로 돈필(頓筆)한 다음, 절봉(折鋒)하여 좌(左)로 향해 수필(收筆)한다.
세로획의 절필(折筆) 방법 : 좌측 상방으로 기필(起筆)하여 종이에 댄 다음, 절봉(折鋒)하여 우측 하방으로 돈필(頓筆)하고, 아래로 향해 행필(行筆)하며, 수필(收筆)할 때에는 눌러 머무르자마자[돈주(頓駐)] 즉시 절봉(折鋒)하여 위로 향해 제필(提筆)한다.
횡절적(橫折的) 방법 : 기필(起筆)은 상술한 횡획 방법과 동일하게 한 다음, 행필(行筆)하다가 꺾고자 하는 곳에서 돈필절봉(頓筆折鋒)[이것도 절필(折筆)이라고 한다] 하여 아래로 향해 행필(行筆)한다.
수절적(垂折的) 방법 : 기필(起筆)은 세로획의 방법과 같으나 내리 긋다가 꺾고자 할 때, 머물러 누른 다음 절봉(折鋒)하여 위로 향해 행필(行筆)한다.
개괄(槪括)해서 설명하자면 절필(折筆)의 방법은 필봉(筆鋒)이 왼쪽으로 가려면 먼저 오른쪽이,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려면 왼쪽이 먼저 닿아야 하며, 위로 가기 전에 아래를 먼저 대고, 아래로 쓰려면 위를 먼저 댄 다음에 쓰기 시작해야 하는 법으로, 이것이 곧 '역입(逆入)의 원칙'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절필(折筆)의 중점은 돈필(頓筆)하였다가 꺾는 데에 있다.
이상에 말한 방법들은 유의하여 반복 훈련만 하면 자연 요령을 얻어, 그 이치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다.
⑤ 방(方)과 원(圓)
기본 점획의 주된 특징은 방(方)이 아니면 원(圓)이고, 그렇지 않으면 방(方)에 원(圓)을 겸하거나, 원(圓)에 방(方)을 겸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글씨는 분류의 원칙을 방(方)과 원(圓)으로 구분한다.
방필(方筆, 方的 필획) : 방형(方形)의 필획을 일컫는 것으로, 그 모양이 방정하고 돈필(頓筆)할 때 골력(骨力)이 밖으로 향해 펴지는 까닭에 '외탁필(外拓筆)'이라고도 부른다.
'방필(方筆)의 용필(用筆) 방법'은 기필(起筆)할 때 돈봉(頓鋒)으로 붓을 내려 역필(逆筆)→절봉(折鋒)→행필(行筆)하고, 수필(收筆)할 때에도 역시 돈필(頓筆)→절봉(折鋒)한 다음 결속한다. 그래서 방필법(方筆法)에 의한 점획은 방정(方整)하고 추경(추勁 : 필세에 힘이 있다.)한 것이 특징이다.
원필(圓筆) : 방필의 필획에는 모[角]가 나 있는데 반해, 원필은 각(角)이 나지 않는 둥근 형상의 필획을 말한다. 원필은 그 점획이 원경(圓勁)하고 절골(節骨)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 '내함필(內含筆)'이라고도 한다.
원필은 기필할 때 '과봉(裹鋒)'으로 쓴다.
'과봉(裹鋒)'이란 봉(鋒)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봉(筆鋒)을 감싸듯 하는 법으로 붓을 종이에 대었을 때 봉(鋒)이 완전히 뭉치도록 하는 법이다. 이렇게 하여 행필(行筆)할 때에는 필봉을 똑바로 세워서 운행하고, 수필(收筆)할 때에는 봉(鋒)을 굴려서 거두면, 자연 둥글고 입체적인 원필(圓筆)의 형상이 된다.
방(方)과 원(圓)을 겸비한 점획의 방법은 대체로 방필과 원필을 혼용하는 것으로 알면 무방하다.
방필과 원필의 차이를 우리는 비첩(碑帖)에서 볼 수 있다. 방(方)과 원(圓)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장천비(張遷碑)>, <맹법사비(孟法師碑)> : 방필
<조전비(曹全碑)>.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 원필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 방원겸필(方圓兼筆)
⑥ 장봉(藏鋒)과 노봉(露鋒)
'장봉(藏鋒)'이란 원필(圓筆)의 경우처럼 봉(鋒)을 휩싸서 감추듯 기필(起筆)하여 필획이 개시되는 곳과, 결미(結尾)되는 곳에 봉(鋒)의 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장필(藏筆)의 방법으로서 기필에는 역봉(逆鋒)을, 수필에는 회봉(回鋒)을 쓴다. 이른 바 '역입도출(逆入倒出)'이 그것이다.
장봉 용필로 쓰는 점획이 함축적 감각을 주는 것은 봉망(鋒芒, 鋒의 끝)이 노출되지 않고, 점획 안에 모든 기력이 포장되어 있는(藏鋒以包其氣) 까닭이다.
'노봉(露鋒)'은 필법(筆法)에 있어서 장봉(藏鋒)과 반대 현상으로 지칭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옳다거나 그르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중봉(中鋒)과 편봉(偏鋒)과의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노봉(露鋒)은 서법의 점과 획에 항상 나타나는 것으로, 특히 점과 획 간의 호응이나, 혹은 행(行)과 관(款)간의 기승(起承)에 많이 운용(運用)된다. 그리고 노봉(露鋒)은 신정(神情)이 밖으로 나타나는 듯한 감각을 주며, 자(字)와 행(行)간의 좌호우응(左呼右應)과 승상계하(承上啓下)의 신태(神態, 露鋒以縱其神)를 보여준다.
노봉으로 쓴 글씨는 점과 획에 봉망(鋒芒)이 노출되고, 노출된 봉망(鋒芒)은 두 현상을 보인다. 곧 봉망(鋒芒)이 점과 획의 정중간(正中間)에서부터 나오는 것과, 점과 획의 한편으로 치우쳐서 나오는 것이 있다. 전자는 중봉(中鋒)인 경우여서 원경(圓勁)하며, 후자는 편봉(偏鋒)이어서 편약한 것이니, 전자가 좋은 것임은 당연하다. 원경(圓勁)한 노봉은 삐침, 파임, 꺾임등 획에서 삐칠 때 쓰이는 것으로, 반드시 중봉(中鋒)[鋒이 필획의 정중간(正中間)에 있도록 하는 것]이라야 하며, 노봉(露鋒)이 아무리 첨세(尖細)하더라도 편획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자면 물론 많은 연습을 쌓아야만 가능하다.
⑦ 중봉(中鋒), 측봉(側鋒), 편봉(偏鋒)
'중봉(中鋒)'은 정봉(正鋒)이라고도 한다. 중봉이란 행필(行筆)에 있어 필봉(筆鋒)이 획의 정중간을 점하고 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붓이 종이에 닿았을 때, 만호(萬毫)가 가지런히 펴진 다음 획이 가는 길의 정중간에서 필봉이 가도록 하는 것이 중봉(中鋒) 용필(用筆)이다.
중봉용필을 '중봉직하(中鋒直下)'라고도 칭한다. 모필(毛筆)은 동물의 털을 재료로 해서 원추체(圓錐體)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펴질 수 있고 모아질 수 있으며, 먹은 필첨(筆尖)을 따라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중필용필은 상하좌우로 고르게 스며, 퍼지고 호(毫)의 사면팔방이 모두 종이에 닿게 되어 원주형(圓柱形)의 필획을 이룬다.
전(篆)·예(隸)·해(楷)·행(行)·초(草)의 각 체의 서법은 모두 중봉을 위주로 하여 운용하게 되며, 그 중에서도 특히 전서(篆書)는 오직 중봉으로만 쓰는 것이 기본이어서, 이 주옹 용필은 바로 서법의 전통적 필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봅 운용을 하면 자연 '만호제착(萬毫齊着)'도 되는 것이니 정확한 집필과 운완으로 모름지기 부단한 연습이 또한 요구된다.
이에 반해 '측봉(側鋒)'은 측(側)으로 "세(勢)"를 취한다는 뜻이다. 영자팔법(永字八法)에 "점(點)"법은 "측(側)"법이 일컬었음에 비추어 '측봉(側鋒)'은 곧 점법(點法)으로 기필(起筆)하는 것이니 '중봉(中鋒)'이 장봉원필(藏鋒圓筆)이라면 '측봉(側鋒)'은 노봉방필(露鋒方筆)이다.
'측봉(側鋒)'은 점을 이룰 때 필봉이 편측(偏側)의 상태를 형성하나 운필할 때는 필호의 탄성과 수완(手腕)의 동작으로 말미암아 붓을 세우면 편측(偏側)되었던 필봉이 획의 중앙으로 거두어 들어가게 마련이라 필모(筆毛)는 종이 위에 퍼지게(平鋪) 된다.
역세(逆勢)로 점을 이루는 목적은 호를 펴기(鋪毫) 위하여서이다. 그리하여 측봉을 필봉이 편(偏)으로부터 굴려서 획의 중앙으로 향하게 하는 과정이다.
'편봉(偏鋒)'은 필호가 종이 위에 드러누워 일어설 수 없다면 '측봉(側鋒)'은 드러우웠다가 일어설 수 있는 것이 다르다. 그리하여 측봉은 운필할 때 편봉의 성분을 띄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붓이 서서가지만, 편봉은 누워서 꼼짝 못하는 것이 다르다.
따라서 '편봉'은 점획의 한 곁으로 필봉이 기울어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옆으로 획을 그을 때 필봉이 상단이나 하단으로 치우쳐 가거나 아래로 그을 경우 왼쪽으로 치우쳐 그어졌다면 이것은 글씨를 쓴 것이 아니라 먹을 바른 것이 되겠다. 그리고 수필에 봉회(鋒回)는 물론 되지 아니하려니와 호가 드러누은 그대로 들리고 만다.
편봉은 '병필(病筆)'과 '패필(敗筆)'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병필'과 '패필'이란 점과 획 상의 병폐를 말하는 것으로, 초학자 뿐 아니라 상당히 조예가 있는 서가에게도 항상 있을 수 있다. 이것이 서가에 있을 때 병폐는 더욱 면하기 어렵다.
'병필'을 시정 내지 방지하려면 글씨를 쓰기에 앞서 반드시 임하고자 하는 비첩(碑帖)의 필법을 정확하게 검토하여 파악하고 신중을 기할 일이다.
첫째 붓이 종이에 닿자마자 생각도 없이 점획을 써서는 안된다. 신중히 붓을 내리되, 낙필(落筆)한 다음에는 잠깐 쉬는 듯이 마음을 가라앉혀서 행필(行筆)해야 한다.
둘째, 한 획을 쓸 때마다 필력을 다해서 움직여야 한다. 가령 삐칠 경우라면 힘을 들인다고 해서 필봉을 누르자마자 그대로 내리 삐치거나 하면 안 된다. 너무 빨리 사납게 하면 필관이 옆으로 누워 내려오게 되는 나머지, 삐친 획의 하반이 끊겨지고, 갑자기 가늘게 변해서 삐친 끝이 길게 노출된다. 이 현상을 '허첨(虛尖)'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