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천불암에서 환경스님께서 김생 글씨 전유암산가서 영인본을 보내왔다. 그리고 藏風山房(장풍산방) 현판 하나를 촉탁했다. 주변에서 글씨와 관련한 것들이 있으면 늘 챙겨주시려는 마음에 감사드린다.
* 김생
경일봉은 신라 해동서성(海東書聖)으로 불리워질만큼 서예의 대가였던 김생의 전설을 간직한 봉우리입니다. 길을 조금 더 가다보면 커다란 굴이 나오는데 김생이 수도하며 글씨를 연마하던 굴이라하여 김생굴이라 하지요.
김생은 신라에서 글씨로 성인(聖人) 반열에 들 정도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서도에 정진하여 그의 행, 예, 초서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더욱 깊은 글을 공부하기 위해 문필산, 경일봉 등에서 홀로 힘써 글씨를 공부하고 이후 충주 북진애에 있는 절에서 중이 돼 두타행을 닦았다고 합니다.
고려사신 홍관이 송나라에 체류할 때 김생의 글씨를 가져가 보이자 송나라의 한림대조 양구와 이혁이 왕희지에 버금갈 천하의 명필이라고 격찬했다 합니다. 그 뒤부터 중국에서 사신이 올 때는 김생의 필적을 얻어가는 것이 필생의 숙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유일한 서첩으로 〈전유암산가서 田遊巖山家序〉가 있으며, 〈해동명적 海東名蹟〉·〈대동서법 大東書法〉에도 몇 점의 글씨가 실려 있습니다. 이밖에도 〈백률사석당기 栢栗寺石幢記〉·〈백월서운탑비 白月栖雲塔碑〉가 있다고 합니다.
김생굴은 비가 오면 굴 입구가 폭포로 변하는데 이를 김생폭포라 하지요. 전설이 없을 리 없습니다. 김생이 이 굴에 들어와 글공부를 한 지 9년이 지났습니다. 이만하면 자신이 명필이 되었을 거라 자신해 산을 내려가려고 채비를 서두르는데 갑자기 한 여인이 김생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여인은 자신은 길쌈을 하는 사람인데 당신의 글 솜씨와 겨뤄보고 싶다고 하였답니다. 김생은 가소롭게 생각하며 대결을 합니다. 굴 속에서 불을 끄고 각자의 실력을 발휘하는데 불을 켜본 즉 여인이 짠 천은 올 한올 흐트러지지 않고 고르게 짜여졌는데 김생의 글씨는 삐뚤삐뚤 전혀 고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여인이 웃으면서 "이 정도 실력으로 무엇을 하리까"하고 핀잔을 주며 사라졌는데 그제서야 김생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다시 1년을 더 공부해 십년을 채운 뒤 세상에 나와 명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