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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용묵(用墨)
원전 : 閔祥德 <書法百問百答>
서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붓과 먹을 다루는 기교이다.
먹은 '입자가 가늘고, 아교가 적으며, 색이 검고 소리가 맑은 것'을 최상의 것으로 친다. 먹을 사용할 때 '삼생(三生)'을 훌륭하게 여기니, '살아있는 벼루(生硯), 살아있는 물(生水), 살아있는 먹(生墨)'이 바로 그것이다. 이른 바 '생연(生硯)'이란, 사용할 때는 물을 붓지만 벼루에 먹을 남겨 두지 않고 매일 저녁 한차례 씻어 물과 먹이 고르게 섞여서 그 효과를 손상시키지 않게 하는 것이다. '생수(生水)'란 불순물이 있는 물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니, 차잎의 물은 먹의 광택을 손상시키고 뜨거운 물은 먹이 빨리 갈리기는 하지만 먹의 입자가 좀 굵어진다. 그러므로 빗물이나 수돗물로 먹을 가는 것이 좋다. '생묵(生墨)'이란 무겁게 눌러 가볍게 밀고 먹 몸통을 수직으로 해서 동일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하루 자고난 먹은 사용하면 좋지 않다. 왜냐하면 먹 찌꺼기와 거품이 섞여 있어서 글씨를 쓰는데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밖에 먹의 농도와 양은 쓰는 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털이 센 붓은 일반적으로 좀 진한 것이 좋고, 털이 연한 붓의 경우에 먹이 진하면 글씨를 쓰기가 어려워진다. 해서를 쓸 때는 조금 진한 게 좋고, 행·초서의 경우는 먹이 좀 묽어도 무방하다.
동기창(董其昌)은 [화선실수필(畵禪室隨筆)]에서 '글씨의 교묘함은 용필에 있고 더욱이 용묵에 달려있다.'고 했다. 이것은 글씨의 묘함이 단지 필법에만 있지 않고 묵법의 발양도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킴을 말하는 것이다. 묵법에 대해서 옛날 사람도 '먹이 묽으면 정신을 해치고, 너무 짙으면 운필을 막히게 한다.'고 했다.
만일 먹을 너무 묽게 하면 자연히 습하게 되어 붓을 제어할 수 없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먹이 붓 밖으로 넘쳐서 필요 이상 많이 흐르는 병폐를 가져와 작품의 신채에 영향을 준다. 또한 만약 먹이 너무 진하면 운필할 때에 붓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어 이 또한 작품의 신채에 영향을 준다. 글씨를 쓸 때 먹의 특성을 발휘하고 먹색이 지면에 표현효과가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먹이 진해도 엉기고 막히지 않아야 하고 묽어도 가볍게 뜨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게 먹을 사용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령이다. 만일 먹이 진하면 먼저 붓에 물을 조금 묻혀서 먹을 조절하여 붓이 움직이지 못하는 병폐가 없도록 해야 한다. 또 먹이 너무 묽으면 먹을 다시 갈거나 붓에 먹을 너무 많이 묻히지 말아야 한다. 만일 너무 많이 묻히면 '먹이 필요 이상 흘러내리는 '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먹의 건조함과 습함, 진함과 묽음은 각각의 용도와 묘한 점이 있어서 서로 상반되면서도 일정한 조건 아래서는 서로 잘 어울리어 빛을 받아 더욱 빛난다. 그러나 예술적 처리에 있어서는 '건조하기는 가을바람이 부는 듯, 촉촉하기는 봄비를 머금은 듯'한 뜻을 구현해야 한다. 옛 사람은 글씨를 쓸 때 대부분 진한 먹을 잘 사용하였다. 역대 서가들의 글씨를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먹의 광채가 칠(漆)처럼 환하게 빛나고 향기가 흩어지지 않고 있다. 송대의 서가 소동파는 진한 먹을 잘 사용하여 세상에서 '농묵재상(濃墨宰相)'이라 칭했다. 그의 용묵에 관한 견해는 '어린 아이의 눈동자처럼 맑은 것을 훌륭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형상의 생동감을 잘 말한 것으로 우리가 먹색의 예술적 효과를 추구할 때 마땅히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즉 다시 말해 글씨를 씀에 먹은 반드시 진해야 하고 붓은 반드시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있는 붓으로 진한 먹을 사용해야 글씨에 힘이 있으며 기운과 운치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묽은 먹의 예술적 처리 또한 서예작품의 중요한 부분이다. 옛사람들 중에 글씨를 쓸 때 묽은 먹을 즐겨 사용하는 서가도 또한 많았다. 청대의 서가 왕몽루(王夢樓)도 바로 그 중의 한사람으로 당시에 '담묵탐화지목(淡墨探花之目)'이라는 명예를 누렷다. 근대와 현대 및 일본에도 묽은 먹을 잘 사용하는 서가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의 시도 중에는 약간의 성취가 있다. 담묵의 표현 기법은 동양화의 먹색을 참고하여 촉촉한 것으로써 아름다움을 구하여 온아(溫雅)함과 세련됨을 나타내었다. 또한 화법에서의 구도의 경중을 충분히 이용하여 흑백대비의 예술효과를 이루어서 작품에 리듬이 선명하여 새롭고 아름다운 맛을 나타내었다. 물론 담묵을 예술적으로 잘 처리하기란 어렵다. 서자(書者)의 예술적 소양과 기교를 바탕으로 대처해야 하며 꾸며서 하거나 혹은 억지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성공한 서가는 예술적 처리에 있어서 전후의 호응과 먹색의 윤택함과 운치를 맞추는데 매우 주의하였다. 어떤 작품들 중에는 한번 먹을 묻혀서 몇 자를 쓴 후 붓에 먹이 다하면 다시 먹을 찍어서 쓴 것을 분명히 알아 볼 수 있다. 한 폭의 작품에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먹은 몇 차례 묻히는데 불과하지만 먹색의 변화는 끊임없어서 건조함과 습함, 진함과 묽음이 서로 돋보이게 하여 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우러러 탄복하게 한다.
① 조윤(燥潤)
'조윤(燥潤)'은 용묵(用墨)의 한 표현 수법으로 '조(燥)'는 먹빛이 마른 것이고, '윤(潤)'은 먹빛이 촉촉히 윤기가 있음이다.
용묵은 서예에서 중요한 기법의 하나이고, 또 작품의 광채를 결정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용묵법을 터득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것이어서 대개 경험이 있는 서예가는 '용필은 어려우나 용묵은 더욱 어렵고 또 마르고 촉촉하고 진하고 옅음의 처리기법은 더욱 어렵다.'고 생각한다. 물론 용묵의 기법면에서 볼 때 각 서예가들의 예술적 취향이 다르므로 좋아하는 바도 다르게 되고 따라서 용묵도 같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진한 먹을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옅은 먹을 좋아하는 이가 있다.
먹빛의 '조윤'은 왕왕 작품의 강(剛)·유(柔)·웅(雄)·수(秀)·기(寄)·험(險)등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전인(前人)의 용묵에 '윤(潤)으로써 아름다움을 취하고 조(燥)로써 험함을 취한다'고 한 얘기가 있는데, 이는 아주 정확한 말이다. 반천수(潘天壽)선생은 '먹물을 적게하여 쓰면 늘 막혀 껄꺼로와 기운이 없기가 쉽다. 그러나 팔의 움직임은 침착하고 붓의 진행은 중화(中和)로우며 신선하고 상쾌하며 경박하지 않고, 완만하면서도 막히지 않아 기운이 절로 생긴다. 먹물을 많이 하여 운필하면 항상 희미하여 뼈대가 없는 듯하기 쉽다. 그러나 맑고 깨끗한 먹을 취하고 재빠르게 하필(下筆)하면 어지러우면서도 조리가 있으며 뼈대가 절로 살아난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용묵의 '조윤'을 얘기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조윤'을 비록 잘 처리하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그 법도를 파악한다면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해서·예서와 전서를 쓸 때는 먹이 건조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건조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정신이 부족해지기 쉽다. 그리고, 행서와 초서는 모름지기 조(燥)와 윤(潤)이 서로 어울려야 붓이 유창하게 움직여 나갈 수 있고 기운이 수월하게 집중된다. 물론 작품하는 가운데 '조윤'을 잘 결합시킴은 결코 보통 글씨 쓰는 이들이 당장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공력(功力)과 수양의 깊고 옅음에 의해 결판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결코 고차원의 것이어서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글씨 쓰는 가운데 잘 유의하여 체득을 한다면 점차로 그 속의 오묘함을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② 농담(濃淡)
농담은 용묵의 방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농(濃)'은 먹색이 짙고 검은 것이고, '담(淡)'은 먹색이 옅고 연한 것이다.
서예는 조윤(燥潤)을 중시할 뿐 아니라 농담을 더욱 중시한다. 그것들은 제각기 마땅한 바가 있어 서로 보완하고 서로 잘 되도록 하니, 먹이 많은 윤(潤)은 고움을 취하고, 먹이 적은 (燥)는 험함을 취한다. 그리고, '농(濃)'은 작품 중에서 웅혼(雄渾)한 기세를 표한하고, '담(淡)'은 작품 가운데에서 고아(高雅)한 의경(意境)을 표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한 폭의 작품이 만약 건습(乾濕)이 서로 잘 어울리고 농담이 격에 잘 맞는다면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담'에서 관건은 옅으면서도(淡) 침착·중후할 수 있고, 짙으면서도(濃) 생동감이 있도록 하는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짙은 먹을 사용할 때 멍청하거나 우둔해서는 안되고, 옅은 먹을 사용할 때 애매하거나 흐릿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반천수(潘天壽)선생은 '먹은 반드시 담(淡)한 중에 농(濃)함을, '농'한 가운데 '담'함을 얻어야 하니, 옅으면서도 혼후할 수 있으면 평범하면서도 비범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의 뜻을 체득한다면 용묵의 농담에 대해 자신이 생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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