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삼국사기 권제48 (열전 제8) 김생

金生 父母微 不知其世系 生於景雲二年 自幼能書 平生不攻他藝 年踰八十 猶操筆不休 隸書行草皆入神 至今往往有眞蹟 學者傳寶之 崇寧中 學士洪灌隨進奉使入宋 館於62A3.gif京 時翰林待詔楊球·李革 奉帝勅至館 書圖7266.gif 洪灌以金生行草一卷 示之 二人大駭曰 “不圖今日得見王右軍手書” 洪灌曰 “非是 此乃新羅人金生所書也” 二人笑曰 “天下除右軍 焉有妙筆如此哉” 洪灌屢言之 終不信

김생(金生)은 부모가 한미하여 그 가문의 계보를 알 수 없다. 경운(景雲) 2년(聖德王 10: 711)에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씨에 능하여 평생토록 다른 기능은 공부하지 않았다. 나이가 80이 넘어서도 오히려 붓을 잡고 쉬지 않았다. 예서(隸書),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씀에 모두 입신(入神)의 경지였다. 지금[고려]까지도 흔히 그의 친필이 있어 학자들이 서로 전하여 보배스럽게 여긴다. 숭녕(崇寧) 연간에 학사(學士) 홍관(洪灌)이 진봉사(進奉使)를 따라 송나라에 가 변경(62A3.gif京)에 묵고 있었는데, 그때 [송나라] 한림(翰林) 대조(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이 황제의 조칙을 받들고 숙소에 와서 그림 족자에 글씨를 썼다.
홍관이 김생이 쓴 행서와 초서 글씨 한 권을 보여주자 두 사람이 크게 놀래어 말하기를 “뜻하지 않게 오늘 왕우군(王右軍)의 친필을 볼 수 있게 되었구나!” 하였다. 홍관이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니라 이는 신라 사람 김생이 쓴 것이다.” 하였다. 두 사람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천하에 우군을 제외하고 어찌 이와 같은 신묘한 글씨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홍관이 여러 번 말하여도 끝내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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