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 昌 倫 (韓國篆刻學會會長) 서령인사는 1904년 여름 浙江의 名流들인 丁仁, 吳隱, 葉銘, 王昱등 四人이 항주 서호의 人倚樓에 모여서 발기하고 창립하였으며 金石, 書畵, 篆刻을 연구하는 학술단체다. 이때 마침 杭城에 머물고 있던 吳昌碩 선생도 그 취지에 매우 찬동하였으며 사람은 印章예술로써 모이게 되고 그 地名으로써 두레의 이름을 정하니 곧 “西寧印社”로 명명하여 동서 고금에 그 유례가 없는 學藝의 殿堂이 되었다. 항주의 서호는 山水가 매우 아름다워 西湖橋畔은 먼 산빛을 머금고 가까이는 湖光에 젖어 있으며 孤山은 茂林修竹으로 에워쌓여 있어서 古典 園林예술의 精華를 이루고 있다. 서령인사 일원에는 樓館亭懈가 古雅하고 건물마다 扁額과 楹聯의 文彩 또한 深奧하여 雅趣를 한층 더해주며 摩崖의 石刻 題命은 무수한 별 같이 분포되어 있어 翰墨이 郁郁하고 氣度가 매우 高華하여 역대로 “湖山最佳勝處”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현재 國家級 重點文物 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서령인사 창사 백년경축행사는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 예술국과 절강성위 선전부, 항주시 인민정부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항주시위 선전부와 서령인사가 주관하였으며 新湖集團과 香格里拉別墅의 협찬으로 거행된 문화예술축전이 국제적 관심리에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 행사를 치루기 위하여 會務, 綜合, 聯絡, 宣傳의 四個 工作組를 편성하여 책임자및 요원을 선정 배치한 인원이 46명에 이르고 聯絡組만 하더라도 6組로 나뉘어 組長을 배치하고 그 조안에 총 258人의 연락원을 두어 행사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것으로도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대회를 치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각 행사마다 귀빈 안내 및 접대와 진행요령 책임자배치, 차량운행 방법 등이 活動指南 油印物에 상세히 안내되어 있어 참여인사로 하여금 최대의 편의를 갖게 배려 하였다. 우리 한국측 일행 29명은 필자를 단장으로 하고 여원구, 심재영, 홍석창 선생을 고문으로 모시고 여타 단원들과 함께 상해 박물관을 관람하고 버스편으로 항주에 도착하니 벌써 초저녁이 되었다. 항주시내에 들어 서자 마자 시내 곳곳에 “百年印社·千秋印學”, “西寧印社百年華誕”이란 현수막이 10m 간격으로 걸려 있었으며 西湖에 있는 많은 樓閣과 碑塔등에도 조명이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湖畔을 지나면서 대대적인 축제 분위기에 魅了되었으며 三潭印月의 壯觀에 一行 모두가 嘆聲 올렸다. 11월 17일 花港飯店과 玉皇山莊에서 참가 등록을 마친 社員 및 貴賓들의 수는 3,000여명이라고 보도된 것으로도 경축행사의 규모를 과히 짐작할 수 있다. 11월 18일 아침 8시 孤山에 있는 中國印學博物館에서 개최되는 “捐贈物品展”을 필두로 오전 10시에 “경축서령인사100년기념대회” 11시 20분에 “서령인사백년비제막식”, 下午 2시 30분에 “서령인사백년화탄대전 개막식”이 和平會展中心에서 열리고 “서령인사장품특전”은 西湖美術館에서 동시에 개막되며 오후 5시에는 해외단체 대표들과 항주시 領導와의 會見이 花港飯店 臥龍廳에 예정되어 있으며 저녁 6시부터는 “경축서령인사백년화탄초대연회가 凱撒宮, 天香苑, 花港廳 등 세곳에서 隆盛하게 치루어지기로 계획되었다. 이어 19일 오전 8시 30분에는 花港廳에서 “百年名社·千秋印學” 國際印學硏討會가 열리고 下午 2시에는 “경축서령인사건사백년화탄전각서화현장 창작교류활동”이 花港廳, 大廳, 黃龍廳 등 3개 장소에서 전개되니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예단의 盛事가 아닐 수 없으며 저녁 7시에는 六屆 이사회가 열리고 20일 오전 8시 30분에 11次 社員大會가 화항청에서 열리며 21일에 社慶活動을 結束짓고 대회를 끝 마치게 되어있다. 서령인사 창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원이나 해외단체에서 기증한 서화, 전각, 印譜, 典籍, 印材 등 전시가 중국인학박물관에서 개최되었는데 한국전각학회에서는 “槿域印藪” 1卷을, 國書聯 한국본부에서는 “古宮印存” 1卷을 각각 기증하였으며 日本의 著名 篆刻家인 小林斗庵은 吳昌碩刻의 “西寧印社中人” 印을 기증하였고 梅舒適 선생은 吳昌碩의 그림 한폭을 기증하였다. 이어서 열리는 “경축서령인사 건사100년기념대회”는 서호 뒷편의 중국인학박물관 옆에 자리하고 있는 孤山公園에서 거행되었는데 이날 마침 오랜 가뭄 끝에 喜雨가 내려 경축의 의미를 더욱 실감나게 하였다. 고산공원 정문에 입장할때에 행사에 참가하고자 등록을 마친 “社員”이나 “嘉賓”은 名牌를 착용하지 않으면 입장 할 수 없게 철저히 工作員들이 통제하여 장대비가 내리는 雨中의 野外式場인데도 불구하고 일사불란하게 정시에 성대히 이루어졌다. 이날 참석축하객은 서령인사 사원과 국내외 내빈, 각계인사 등 1,500여명이 참석할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언론에서는 3,000여명이라고 보도하였다. 王國平 省委 常委·市委 書記의 致辭와 領導 講話, 서령인사 사장 啓功 선생이 老患으로 참석치 못하여 시위 선전부장 于躍敏이 致辭를 代讀하였으며 아울러 祝電, 賀信도 소개하였다. 이어 丁蔭楠 중국 文聯 부주석, 全日本篆刻聯盟 小林斗庵 會長, 일본전각가협회 梅舒適 회장의 치사가 있었으며 捐贈人士에 대한 捐贈證書가 전달되고 서령인사 郭仲選 상무부사장의 答辭와 省委 梁平波 부서기의 강화로 경축식을 마치고 곧바로 11시 20분에는 서호 뒷편의 孤山 西寧印社石牌坊 앞에서 “西寧印社百年紀念碑 揭碑” 儀式을 劉江 副社長이 主持하는 가운데 韓天衡 부사장과 澳門의 灑園書畵會 林近 理事長의 致謝가 있은 후 만장한 축하인파속에서 朱關田, 陳振濂 부사장이 百年碑를 揭碑하여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碑文은 西寧印社 社長인 啓功先生의 글씨로써 “百年名社, 千秋印學” 西寧印社百年華誕 啓功이 題하다라고 써서 새겼는데 오른쪽 上段의 유인은 “金石緣”이란 印文이고 啓功之印 白文과 元伯이란 朱文이 새겨져 있으며 돌의 才質은 江蘇省 宜興産 靑石으로서 약 1년여에 걸쳐서 운반 하였으며 著名 鑿刻師인 侯興友 老師가 5일동안 治刻하였다고 한다. 돌은 높이 2.3m, 가로 2.5m, 두께 1.3m로서 무게는 약 17톤에 이르는 巨石에 文字는 黃金色, 印章은 赤色으로 塗色하여 靑, 紅, 黃色이 조화를 이룬 名碑로서 永世 瀾寶로 남게 되었다. 下午 2시 30분에는 杭州和平國際會展中心에서 西寧印社百年華誕大展이 開幕되었다. 서령인사 사원과 국내외 내빈, 각계인사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市委 葉明 부서기가 주지하였다. 文化部 藝術司 領導가 개막사를, 중국서법가협회 沈鵬 주석과 한국전각학회 회장 자격으로 필자가 致辭를 하고 곽중선 수석부사장, 한천형 부사장 등 관계 인사들과 함께 개막테이프를 끊었다. 필자는 치사에서 “서령인사 창사 일백주년을 진심으로 송축하는 바입니다, 서령인사 社慶활동의 일환인 百年華誕大展의 개막식 석상에서 한국전각학회와 국제서법예술연합 한국본부를 대표하여 치사를 드리게 된것을 무한한 광영으로 생각합니다. 옛 말씀에 人傑은 地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말이 바로 오늘의 성스러움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西寧의 山紫水明한 자연환경은 역대로 무수한 英傑을 배출시켰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말미암아 서령인사화탄100주년은 天惠의 명고장에서 胎動하여 성장 발전한 文華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天下第一의 福地에서 성대히 거행되는 이번 大展으로 인하여 서령인사의 영원무궁한 발전은 물론 印學과 文藝가 人類文化 暢達에 크게 寄與하고 千秋에 길이 빛날것을 確信하는 바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學藝精神으로서 心靈을 陶冶하고 人性을 醇化하는데 우리 印學人들은 一路 邁進하는 責務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銘心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서령인사 백년화탄을 경축하오며 이번 행사를 主辦한 관계인사와 사원 여러분의 勞苦에 感謝드리며 이 大展에 참여한 大方家 諸位의 健勝을 祈願하는 바입니다. 感謝합니다.”라고 講話하였다. 전시내용은 서령인사백년사전, 서령인사사원작품전, 서령인사사원성과전, 국제인학사단정품박람, 해외서법사단작품전, 축하서령인사백년화탄작품전 등 六大展으로 구분되어 전시되었으며 한국전각학회에서는 20점, 국서련한국본부에서 서예작품 55점이 출품되어 각국의 名流들과 比肩하면서 그 英氣를 빛내 주었다. 한편 같은 시각에 西湖美術館에서는 “西寧印社藏品特展”이 開幕되었는데 서화 142점, 탁본 13점, 인보 13책, 전각 218方이 공개전시되었다. 오후 5시에는 花港飯店 臥龍廳에서 海外社團代表를 市 領導가 주관하는 接見禮에 참여하였는데 시위 상위, 선전부 于躍敏부장이 主持하는 가운데 葉明 市委 副書記의 환영사에 이어 해외사단대표의 답사와 토론이 있었다. 참석대표는 필자와 朴贊奕 한국대표, 日本의 梅舒適, 屈崎蒼石, 井谷五雲, 小林斗庵, 管原石廬, 中島藍川, 佐藤明, 安藤, 澳門의 林近, 台灣의 王北岳, 新加坡의 賴瑞龍 등이었다. 이어 곧바로 花港 海航大酒店 宴會廳에서 “경축서령인사백년화탄초대연회”가 凱撒宮과 天香苑, 花港廳 등 세곳에서 개최되었다. 참석인사는 서령인사사원과 국내외 내빈 및 각계인사 700 여명이었으며 于躍敏 市宣傳部長이 主持하였다. 항주시 兪國慶 政協부주석의 환영사가 있은 후 서령인사 呂國璋 비서장이 새로 선발된 58명의 신입사원명단을 발표하고 부사장 등 이사들이 단상에 일일히 도열하여 사원증서를 교부하였는데 한국전각학회 김양동 부회장과 박찬혁 선생도 해외사원으로 영입되었다. 11월 19일에는 오전 8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花港飯店 花港廳에서 “百年名社·千秋印學” 국제인학연토회가 개최되었는데 총 225편의 논문중 초심과 재심을 거쳐 최종적으로 62편이 입선되었으며 부문별 논문 내용은 西寧印社硏究 18편, 印學硏究 38편, 社史資料 6편 등이다. 이번 서령인사백년화탄 행사의 하일라이트는 단연 오후 2시부터 花港海航大酒店三樓 花港廳, 大廳, 黃龍廳에서 개최되는 “경축서령인사 建社百年華誕篆刻書畵現場創作交流活動”이 아닐 수 없다. 社員證을 佩用한 사람에 한하여 入場한 전체사원들은 2008년 북경 올림픽대회에 출전하는 중국선수 100명의 名字를 새긴 “百印譜”를 제작하여 중국올림픽위원회에 기증하는 것과 서예는 “百壽圖” 長卷 제작 및 자유창작으로 시, 대련, 찬구, 찬문등을 휘호하고 회화는 “百花圖” 長卷과 자유창작 山水, 人物, 花鳥圖를 제작하게 되어있다. 서법 百壽圖, 창작탁자가 다섯군데, 전각 百印譜 창작구가 두군데, 회화 百花圖 창작구가 3곳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서예는 郭仲選 수석부사장과 邵華澤 중국문련 부주석이 동시에 開筆하고 그 다음으로 沈鵬 중국서협 주석, 梅舒適 日本篆刻家協會 理事長과 筆者가 동시에 祝筆을 揮毫하였다. 현장휘호 과정에서 각 印刷 및 電波 媒體가 경쟁적으로 取材하느라 大混雜을 이루었으며 곽중선 부사장은 “西湖天下景, 名社百年壽”라 題하고 2003년 11월 郭仲選이라 낙관하였으며 沈鵬선생은 북경에서 항주로 오는 飛機에서 착상한 讚詩인 “行盡孤山道不孤 八家流韻百年成 地靈張似人多傑 西寧長依西子湖”라고 雄渾한 行草로 제작하고 西寧印社百年華誕卽席得句 癸未冬於 杭州 沈鵬이라고 낙관하였다. 邵華澤 文聯 副主席은 “百年金石, 四海同慶”이라 題하고 百歲華誕, 癸未初冬 邵華澤이라 款暑하였으며 筆者는 “西寧山水淸淑, 印學千秋不朽”라는 句를 漢隸法으로 쓰고 西寧印社華誕百年大慶識禧, 二00三年 十一月 韓國 權昌倫이라고 署名하였다. 이어 百花圖와 百壽圖를 제작하는 社員들의 興到筆飛하는 광경은 藝壇의 一大盛事이며 西寧雅集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篆刻에서 劉江, 韓天衡, 高式熊 등 여러 老師들 奏刀는 神技의 경지에 들었으며 沈鵬선생은 낭랑 音律로 자작 축시를 誦讀하고 그 뜻을 새겨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진풍경을 현장에서 목격한 필자로서는 과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분위기에 감탄하였으며, 우리의 실정을 감안해 볼 때 一喜一悲의 感懷를 저버릴 수 없었다. 이로써 서령인사 百年 功業은 헛되지 않았으며 그 학문과 예술은 千秋에 빛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번 서령인사 창사 일백주년 행사에서 간행된 서책 및 도록은 西寧印社百年圖史(366頁), 西寧印社百年史料長篇(735頁), 西寧印社藏品集(書畵 142件, 拓本 13件, 印譜 13冊, 篆刻 218方 等 230頁) 西寧印社社員作品集 上(已故社員作品68人, 社員作品126人), 西寧印社社員作品集 下(已故社員書畵61人, 社員書畵 75人). 西寧印社志稿(162頁), 國際印學社團精品博覽(中國 60印社 358頁, 臺灣 3印社 58頁, 韓國篆刻學會 20頁, 日本 10印社 61頁, 等合 509頁) 國際印學硏討會論文集(457頁) 등이 問世하였으며 그중의 몇권의 책은 벌써 현장에서 絶品되기도 하였음을 덧붙여 봅니다. 현장휘호석상에서 필자가 가진 기자 회견에 杭州新聞의 西寧人物란과 杭州日報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이영승
옳은가요?...
李泳勝
샘소리 령이 옳습니다.(玉篇을 參照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