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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陰漠漠四山空 가을 구름 몽실몽실 사방 산은 고적한데
落葉無聲滿地紅 소리 없이 지는 잎들 온 땅 가득 붉어라
立馬溪橋問歸路 시내 다리 말 세우고 돌아갈 길 묻노라니
不知身在畫圖中 이 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것은 아닐는지.
- 정도전(鄭道傳 1342~1398) 〈김 거사의 시골집을 방문하고[訪金居士野居]〉 《삼봉집(三峰集)》(한국문집총간 5집) : 김 거사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이다. 어느덧 시냇가 다리 앞에 와 섰다. 올 때에는 집을 찾느라 보지 못한 늦가을 오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쪽빛 하늘에는 비늘구름이 몽실몽실 떠 있고 사위의 산은 인적이 없이 텅 빈 듯 고요하다. 바람 없는 적막 속에 한 잎 두 잎 소리 없이 낙엽은 지고……. 아, 어느새 단풍이 수북이 쌓인 만추의 한 가운데에 내가 있다. 정말이지 한 폭의 그림 속에 홀린 듯 말을 타고 들어온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러고 보면 김 거사는 화중지인(畵中之人)이 아닌가!
추음(秋陰)은 가을 구름이라는 뜻이다. 《기아(箕雅)》를 비롯한 여러 시 선집에는 모두 추운(秋雲)으로 되어 있다. 추운막막(秋雲漠漠)은 가을철에 자주 보이는 비늘구름이나 새털구름이 공활한 창공에 넓게 퍼져 있다는 말이다. 이번 추석날 밤, 보름달과 구름이 서로 지나가다 달이 구름에 가렸는데도 구름 뒤로 달이 보인 것은 구름층이 얇았기 때문이다. 여름철에 흔히 보이는 먹장구름이 음산한 분위기나 두려운 마음을 일으킨다면 맑은 가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은 다소 낭만적이고 한가한 느낌을 자아낸다.
사산공(四山空)은 당나라 위응물(韋應物)의 시에 “산은 텅 비었는데 솔방울 떨어지니 은거하는 이 잠들지 못하리라.[山空松子落, 幽人應未眠.]”라는 구절을 연상하게 한다. 여기서 산이 비었다는 것은 적막감을 말하는 것으로 외로운 심사를 투영한 것인데, 《시경》 <정풍(鄭風) 숙우전(叔于田)>이란 시에,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공허감을 “공숙단이 사냥을 나가니 골목에 사람이 없다.[叔于田, 巷無居人.]”라고 노래한 대목에 그 연원이 닿기도 한다.
김 거사가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전라도 나주(羅州) 인근에 사는 어떤 식자로 추정된다. 삼봉(三峯)은 34~36세 시절(1375~1377), 이인임(李仁任)을 필두로 한 친원파(親元派)의 세력에 눌려 전라도 나주의 회진현(會津縣) 거평부곡(居平部曲)에 속한 소재동(消災洞)에서 3년간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그 때 쓴 시 28수가 원래 《금남잡영(錦南雜詠)》에 묶여 있었다. 삼봉이 쓴 <소재동기(消災洞記)>나 <금남야인(錦南野人)> 등을 읽어보면 금남은 나주의 고호(古號)인 금성(錦城)의 남쪽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곳에서 쓴 시는 주로 객회(客懷)와 망향(望鄕)이 시정(詩情)의 중심이 되긴 하지만, 유배객에게 흔히 있을 법한 처연하거나 비감에 빠지는 정조가 없고 흉도(胸度)가 넉넉하고 초연한 기상이 보인다. 누구라도 이 시에서 유배객의 그림자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坦蕩蕩]. <도연명의 시를 베끼다[寫陶詩]> 같은 작품을 보면 저자는 배소에서 당시 유행하던 도연명의 시를 주로 많이 읽었던 것 같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는 어부가 자신이 다녀온 도화원을 다시 찾아가려 했으나 찾지 못하였는데, 이 시에서는 화경(畵境)에 취하여 다시 인경(人境)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는 역발상의 시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 독특한 발상을 마지막 구절의 시적 비약으로 구현하고 있으므로 아래에 소개하는 단련이 부족하다는 선인의 평은 이 시에는 부합하지 않는 듯하다.
서거정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이숭인은 청신하고 고고하지만 웅혼한 기상이 부족하고, 정도전은 호일하고 분방하나 단련이 부족하다.[李淸新高古而乏雄渾, 鄭豪逸奔放而少鍛鍊.]”라고 평하였다. 즉 이숭인은 시다운 아취는 뛰어나지만 기상이 떨어지고, 정도전은 기세는 좋은데 시적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성현 역시 《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 “도은은 온자하지만 뻗어나가지를 못하고, 삼봉은 장대하지만 검속하지 못한다.[陶隱能醞藉而不長, 三峯能張大而不檢.]”라고 하였는데, 이 말도 두 사람의 취향이나 시풍이 상반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위의 시와 의경이 비슷한 이숭인의 작품을 예로 들어 본다.
붉은 단풍 시골길을 밝혀주고 / 赤葉明村逕
맑은 샘물 돌 뿌리를 양치하네 / 淸泉漱石根
외진 곳이라 오가는 거마 없고 / 地偏車馬少
산 기운은 절로 황혼에 물드네 / 山氣自黃昏 <村居>《箕雅》
가을 경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여 그 경치를 완상하고 있는 시인의 한적(閑適)과 고적(孤寂)을 전달해주는 점에서는 두 시의 의경(意境)이 통한다. 그러나 정도전의 시가 스케일이 크고 활달하다면 이숭인의 시는 섬세하고 정교한 맛이 나서 구체적 미감은 큰 차이가 난다. 정도전이 ‘사방 산이 비었다[四山空]’거나 ‘온 땅 가득 붉다[滿地紅]’라고 한 것과 이숭인이 ‘돌 뿌리를 양치질하듯 씻어준다[漱石根]’라고 한 표현을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구사하고 있는 시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인의 풍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고인들이 “시는 그 사람과 같다[詩如其人]”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점을 통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전이 정치적으로 워낙 비중이 크다 보니 그의 시에 대한 관심은 다소 저조한 것 같다. 문집총간 《삼봉집(三峰集)》 권1,2에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성석린(成石璘)이 정선(精選)하고 권근(權近)이 비점(批點)을 찍은 것이다. 권근은 잘 된 부분에는 비점을 찍고 더 잘 된 부분에는 권점(圈點)을 달아 놓아 시를 공부하기에 좋은 자료가 된다. 가령 <사월초일일(四月初一日)> 같은 시는 매우 섬세하여 오히려 이숭인의 시와 흡사하고 <철령(鐵嶺)> 같은 시는 매우 억센 기상이 있지만 시적 정련도 잘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두 편의 시는 시구 전체에 비점이 찍혀 있다. (권점과 비점)
글쓴이 :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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