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모양의 초서
市(저자 시; 총5획, shì) - 巿(슬갑 불, 총4획 ; fú) 膝甲(슬갑)이란 추위를 막기 위해 무릎까지 내려오게 입는 옷을 말한다.
柿(감나무 시; 총9획, shì)
沛(늪 패; pèi)
芾(우거질 불, 총8획; fèi,fú)- 米芾(미불): 중국 북송(北宋) 때의 서화가(1051~1107). 자는 원장(元章). 호는 해악(海嶽). 글씨는 왕희지의 서풍을 이었으며, 채양ㆍ소식ㆍ황정견 등과 나란히 송나라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림으로는 선을 사용하지 않고 먹의 번짐과 농담(濃淡)만으로 그리는 미법 산수를 창시하였다. 저서에 ≪화사(畫史)≫, ≪서사(書史)≫ 따위가 있다.
兩(두 량; liǎng)- 초기의 금문 자형은 一輛雙套(일량쌍투: 한 대의 수레 위의 두 개의 덮개)으로 된 마차 위의 멍에(軛: 軶(액)의 속자. 마소의 목에 얹어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 모양의 막대)와 한 쌍(一對)의 말안장(鞍)을 상형하였다. 여기에서 ‘二’ 또는 ‘雙’의 뜻이 나왔다. 그리고 車輛을 헤아리는 단위로도 쓰였는데, 지금은 輛(수레 량)자로 쓰고 있다. <詩經>: ‘百兩御之’. <左傳>: ‘御下兩馬 掉(흔들 도, 잃을 도; diào)駚(말 성낼 앙, 천리마, 준마)而還’. 뜻밖에 多자를 닮은 초서의 형태는 예서에서 왔다. 왼쪽의 ㅅ은 생략하고 오른쪽의 ㅅ은 x처럼 쓴다. 卒도 마찬가지다. 卒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水자의 초서 첫 획이 왼쪽 삐침으로 시작하는 근거는 簡牘(간독)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초서는 예서 그 중에서도 간독에 쓰인 글자, 곧 竹簡(죽간), 木簡(목간)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 簡牘(간독): 간(簡)은 대쪽, 독(牘)은 길쭉한 나무쪽인데, 모두 길이 20∼30 cm, 너비 l∼2 cm로, 그 용도에 따라 길이나 모양도 달랐다. 글씨는 먹으로 썼으며, 지울 때에는 칼로 깎아냈다. 언제 비롯하였는지 뚜렷하지 않으나, 종이가 발명된 뒤인 3세기경까지도 사용되었다.
* 竹簡(죽간): 종이 이전의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죽간을 만들려면 우선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낸 다음 마디 사이의 부분을 세로로 쪼갠다. 이렇게 해서 된 대나무패를 불에 쬐어 기름을 뺀다. 이것은 글씨를 쓰기 좋게 하고 벌레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너비가 좁아 한 줄밖에 못 쓰기 때문에 여러 장을 합쳐서 가죽 또는 비단으로 된 끈으로 편철(編綴)한다. 이와 같이 몇 장의 간(簡)을 편철한 것을 책(策) 또는 책(冊)이라고 불렀다. 죽간은 그 실물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중국 북서쪽 볜징[邊京]에서 유럽의 학술탐험대에 의해서 한대(漢代)의 것이 발견되었으며, 1951년 이후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 등지에서는 그 이전인 전국시대의 죽간도 잇달아 발견되고 있다. 또, 죽간을 모방해서 만든 목간(木簡)도 사용되었는데, 이것을 찰(札) 또는 첩(牒)이라고 불렀다. 중국의 북서쪽 볜징에서 발견된 것은 거의 목간이었으며, 약(藥)의 처방전(處方箋) 등이 적혀 있는 죽간이 약간 포함되어 있었다.
靑(푸를 청; qīng) - 3가지 형태가 있다. 丹 또는 月 안의 2점을 1점으로 했다가 나중에는 마무리 1점으로 바뀐다. 간체자는 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