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에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작과비평사)
뻘밭 함민복
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 집들이 다 구멍이네 구멍에서 태어난 물들 모여 만든 집들도 다 구멍이네 딱딱한 모시조개 구멍 옆 게 구멍 낙지 구멍 갯지렁이 구멍 그 옆에도 또 구멍구멍구멍 딱딱한 놈들도 부드러운 놈들도 제 몸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은 놈 하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