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전집 제2권 고율시(古律詩)
혜문(惠文) 장로의 수다사(水多寺) 팔영(八詠)에 차운하다
백헌(柏軒)
우뚝한 푸른 당간이 중천에 솟았는데 / 高卓蒼幢拂半天
작은 난간에 인적 없고 짙은 연기만 흩어졌네 / 小軒人靜散濃煙
얽힌 뿌리가 푸른 이끼 빛을 아끼지 않고 / 根盤不惜靑苔色
뜰에 오르는 둥근 돈 무늬를 마구 쪼개버렸네 / 劈破團團上砌錢
죽각(竹閣)
처마에 솟은 긴 대 두서너 그루에 / 過簷脩玉兩三叢
부딪치는 바람 소리가 작은 누각을 뒤흔드네 / 敲戞聲高小閣風
홀연히 깨닫건대 푸르고 푸른 참법성이라 / 忽悟靑靑眞法性
허리 닿도록 쌓인 눈 속에도 뜰 복판에 서 있네 / 齊腰雪重立庭中
석정(石井)
도르래 소리 끊기고 차가운 용 잠들었는데 / 轆轤聲斷睡寒虯
돌 틈으로 달리고 달려 자유로이 흘러가네 / 石罅狂噴自在流
만약 수성처럼 사람 마음도 때가 없다면 / 水性人心若無垢
굳이 가을 달 바퀴를 부러워하지 않으리 / 不須憑仗月輪秋
대사의 시에 “물 나르던 중은 가버리고 산달이 떠오르니 십분 맑은 거울이 차갑게 담긴 가을 빛이네.[汲罷僧歸山月上 十分淸鏡冷涵秋]”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荷池)
그윽한 새가 물에 들어가 푸른 비단을 가르니 / 幽禽入水擘靑羅
온 못을 뒤덮은 연꽃이 살며시 움직이네 / 微動方池擁蓋荷
참선하는 마음이 원래 스스로 청정함을 알려면 / 欲識禪心元自淨
맑고 맑은 가을 연꽃이 찬 물결에 솟은 걸 보소 / 秋蓮濯濯出寒波
분지(盆池)
호지엔 부질없이 오가는 조수가 있어 / 湖池空有去來潮
무단히 언덕을 때려 가며 적막을 깨뜨리니 / 打岸無端破寂寥
어찌 이 얕고 맑은 분지의 물에다 / 爭似淺淸盆底水
갈대만 심어 바람소리 듣는 것만하랴 / 只栽蘆葦聽蕭蕭
송경(松徑)
땅에 가득한 낙엽 쓸어버리는 이 드물고 / 落葉紛紛掃去稀
한 가지만 구불구불 먼 구름에 잇대었네 / 一條縈屈接雲微
다행히도 사람 대신 푸른 수염 늙은이 있으니 / 替人幸有蒼髥叟
선로께선 무어 손님 전송에 번거로우랴 / 禪老何煩送客歸
남간(南澗)
푸른 바위 사이로 졸졸 흘러내리니 / 潺湲界出翠巖根
한가한 속에 바쁘고 고요한 속에 시끄러워라 / 閒裏奔忙靜裏喧
잘 있거라 맑고 푸른 유리 빛이여 / 好在琉璃澄碧色
언제 이곳에 와서 번뇌를 씻을꼬 / 歸來何日洗心煩
서대(西臺)
약수를 엿보려고 높은 언덕을 내려와 / 擬窺弱水下崔嵬
문득 구름 위에 솟은 만 길의 대를 쌓았구나 / 却築凌雲萬丈臺
우습구려 그 어리석은 동파 늙은이가 / 可笑東坡癡澁老
부질없이 삼산을 동래에 가깝다 말한 것이 / 三山空說近東萊
[주D-001]푸른 수염 늙은이[蒼髥叟] : 소나무의 이명(異名)이다.
[주D-002]약수(弱水) : 서왕모(西王母 선녀(仙女))가 살고 있는 곳, 즉 선경(仙境)에 있다는 강(江). 이 물에는 기러기 털도 가라앉는다고 한다.
[주D-003]동파(東坡) : 동파는 송(宋) 나라 문장가 소식(蘇軾)의 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