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髮歌
춘일이 뇌곤하여 초당에 누었더니
정신이 태탕하여 남가일몽 잠이 들어
세상을 휘망하고 여취여치 못 깨더니
문전의 일노옹이 양식 달라 구걸하네
의복이 남루하고 용모가 초췌하여
행색도 수상하고 모양조차 괴이하다
뉘 탓으로 늙었는지 근력없다 탄식하고
무슨 공명 하였는지 꼴막서니 해괴하다
남의 말 참여하여 동문서답 가소롭다
귀먹은 핑계하고 딴전이 일수로다
정강이를 볼작시면 비수검 날이 서고
팔다리를 볼작시면 수양버들 흔들흔들
아래 턱은 코를 차고 무르팍은 귀를 넘고
어린 체를 하려는지 콧물조차 훌쩍이며
눌과 이별하였는지 지팽이는 무삼일고
신풍미취 취하였나 비척걸음 가관일다
비육불포 노래하며 그 중에도 먹으려고
그 중에도 입으려고 비백불완 문자 쓴다
성명은 무엇이며 거주는 어디메뇨
보아하니 반명으로 무삼 노릇 못하여서
남의 농사 전혀 믿고 문전걸식 어이 하노
저 노인 거동 보소 허회탄식 기가 막혀
여보소 주인네야 걸객보고 웃지마소
젊어서 허랑하면 이러한 이 나 뿐일까
나도 본디 양반으로 지체도 남만하고
세간도 남 불잖고 인물도 잘났더니
사지가 성하면은 무슨 일을 겁을 낼까
우리도 청춘시절 부모 덕에 편히 자라
슬하의 교동으로 비금주수 길들여서
만하추동 좋은 세상 꿈결 같이 다 보낼 때
매양 그러할 줄 알고 포식완의 편히 자라
인도를 못 닦으니 행실이 무엇인고
사서삼경 던졌으니 공맹안증 그 뉘 알리
장삼 이사 화류객을 행로에 잠간 만나
원일견지 찾았으나 흑선흑우 놀러갈 제
주루화각 곳곳마다 회조월석 때 맞추어
주륙진찬 다 갖추고 친구 모아 노닐 적에
한두 잔 세네 배에 몇 순배가 돌아갔노
주사청루 사랑 삼아 여중일색 희롱이라
녹록한 선비들은 글은 읽어 무엇하뇨
곤곤한 농부들은 밭은 갈아 무엇하노
옷걱정 하지마라 가련한 여인네야
오릉년소 우리들은 십지부동 옷 입는다
은안백마 금시동에 낙화답진 유하처오
잡기도 하려니와 오락인들 없을소냐
양금퉁소 세해저로 오음육률 가무할 제
오동추야 명월천과 낙양춘색 벽도화를
차례로 늘여앉혀 각기 소장 불러낼 제
듣기 좋은 권양가는 장진주로 화답하고
흥치 좋은 양양가는 백구사로 화답하고
다정한 춘면곡은 상사별곡 화답하고
한가한 처사가는 어부사로 화답하고
화창한 여민락은 남풍시로 화답하고
처량한 노승가는 황계타령 화답이라
청아한 죽지사는 낙탄가로 병창하고
요탕한 정위풍은 노처녀를 돌려내며
구색친구 삼색벗과 곁들어서 오입할 제
논인장단 판결사와 시비경계 깨뜨려서
호주탐색 좋은 투전 오늘이야 매양으로
우리 청춘 한평생을 귀 뉘 아니 믿었으리
인생부득 갱소년은 풍월 중에 진담이요
인생칠십 고래희는 옛사람이 이른 바라
삼천갑자 동방삭도 적하인간 하단말가
팔백새 팽조수는 고름이래 또 없으며
금정오동 일엽낙은 춘풍이 날 속인다
일월성신 광음 중에 거울이 네 그르지
육십갑자 꼽아보니 팔구에 둘이 없네
백년삼만 육천일이 일장춘몽 아니던가
청춘이 어제더니 백발이 짐작하여
소문없이 오는 서리 귀밑을 재촉하니
슬프다 이 터럭이 언제온 줄 모르겠다
친노가빈 처자들과 왜옥살림 하던 땐가
엄동설한 이 세상에 부귀공명 하던 땐가
천리타향 객의 수심 잔등독좌 하던 땐가
전전반측 잠못들어 고향생각 하던 땐가
팔년풍진 환란 중에 주유천하 하던 땐가
무정세월 약류파에 우리 자연 늙었으니
어와 청춘 소년들아 옥수홍안 자랑마다
덧없이 가는 세월 넨들 매양 젊을소냐
우리도 소년 적에 풍신이 이렇던가
꽃 같이 곱던 얼굴 금버섯이 절로 나고
백옥 같이 희던 살이 황금 같이 되었으며
삼단 같이 검던 머리 다박솔이 되었으며
명월 같이 밝던 눈이 반판수가 되었으며
청산유수 같던 말이 반벙어리 되었으며
전일에 밝던 귀가 만장풍우 뛰놀며
일행천리 하던 걸음 상투 끝이 먼저가고
살대 같이 곧던 허리 길마 가지 방불하다
선수박씨 같던 이가 모탁속이 되었으며
단사 같이 붉던 입술 외밭고랑 되었구나
있던 조업 도망하고 맑은 총명 간 데 없어
묵묵무언 앉았으니 불도하는 노승인가
자식보고 공갈하면 구석구석 웃음이요
오른 훈계 말대답이 대접하여 망령이라
어이 아니 한심하랴 청천백일 빨리 가니
일거월석 지날수록 늙을 밖에 할일 없다
인생 한 번 늙어지면 갱소년은 못하리라
인생 한 번 늙어지면 늙을 로자 뿐이로다
진나라 분시서에 타지 않고 남아 있어
편작의 신술로도 백발환옥 못하였네
서복의 동남동녀 돌아온지 뉘 들었노
불사약 어디 있고 불노초 보았느냐
이리저리 해아리면 인력으로 못하리라
가는 청춘 뉘 막으며 오는 백발 뉘 제할까
진시황 한무제도 변통할 길 없었으니
위엄으로 쫒을진데 헌원씨가 아니 늙고
용맹으로 막을진데 팔장사가 아니 늙고
도술로 막을진데 강태공이 아니 늙고
진법으로 막으려면 손빈이가 늙었으며
긴 창으로 찌르려면 조자룡이 아니 늙고
인정써서 막으려면 도주공이 늙었으며
구변으로 막을진데 소진이가 늙었으며
문장으로 치려면은 한퇴지가 늙었을까
미주성찬 차려 놓고 선대하면 아니올까
입담좋은 조맹덕이 빌어보면 아니올까
말잘하는 소진장의 달래보면 아니올까
할일없는 저 백발아 불청객이 자래하여
소진의 청경서를 자랑할 것 없건마는
부운 같은 이 세상에 백구지 과극이요
대해의 부평초다
권곤불로 월재에 백발인생 참혹하다
늙기도 섧은 중에 흉들이나 보지 마소
꽃이라도 쇠잔하면 오던 나비 아니 오고
나무라도 병이 들면 눈 먼 새도 아니 앉고
금의라도 떨어지면 물걸래로 돌아가고
옥식도 쉬어지면 시궁발치 버리나니
고대광실 좋은 집도 파락하면 보기 싫고
녹음방초 좋은 경도 낙엽되면 볼 것 없다
만석군 부자라도 패가하면 볼 것 없고
조석상대 하던 친구 부운 같이 흩어지고
평생지교 맺었더니 유수 같이 물러가니
문전냉락 안마희는 일로 두고 이름이요
황금용진 환소색을 이러므로 이른 바라
년부역강 하올 적에 그런 줄을 모르고서
무항산 무항심이 수신제가 나 몰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