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詩人과 詩 : 氣象論 - 오세주의 한시 감상

  詩人과 詩 : 氣象論

활짝 펼친 雲烗紙에 醉中詩가 더디더니
수풀도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서가래 같은 붓을 손에 가득 쥐어 들고
낚아채듯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 정약용 〈不亦快哉行〉 중에서-

 

이런 맛을 아는가?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일 때, 검은 돈피 갖옷을 입고 흰 깃이 달린 기다란 화살을 허리에 차고, 팔뚝에는 백근 짜리 센 활을 걸고, 철총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골짜기로 들어가면, 긴 바람이 골짜기에서 일어나 초목이 진동하는데, 느닷없이 큰 멧돼지가 놀라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곧 활을 힘껏 잡아당겨 쏘아 죽이고, 말에서 내려 칼을 빼서 이놈을 잡고, 고목을 베어 불을 놓고 기다란 꼬챙이에다 그 고기를 꿰어서 구우면, 기름과 피가 지글지글 끓으면서 뚝뚝 떨어지는데, 걸상에 걸터 앉아 저며 먹으며 큰 은대접에 술을 가득히 부어 마시고, 얼근히 취할 때에 하늘을 쳐다보면 골짜기의 구름이 눈이 되어 취한 얼굴 위를 비단처럼 펄펄 스친다. 이런 맛을 자네가 아는가.

윗 글은 필자가 읽어 본 것 중에 가장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는 통쾌한 글이다. 대장부의 호쾌함이 이에 이른다면 까짓 세속의 雜事 따위야 흉중에 거칠 것이 있겠는가? 林亨秀가 한 번은 退溪 李滉과 함께 湖堂에 들어 갔을 때의 일이다. 술이 취해 호탕하게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던 그가 退溪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사나이의 장쾌한 취미를 아는가? 나는 안다." 하니, 退溪가 웃으며 "말해 보시게." 하였다. 위의 인용문은 이때 林亨秀의 대답이었다. 그가 얼마나 멋진 사나이였는지는 이 글만으로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는 애석하게도 명종조에 士禍에 걸려 비명에 죽고 말았다. 홍명희가 《임꺽정》을 쓰면서 위 대목을 말만 바꿔 슬쩍 옮겨 놓았을 만큼 통쾌한 장면이다. 《연려실기술》에 나온다.

林悌 또한 조선조의 호쾌한 대장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번은 남의 잔치 집에 갔다가 술이 거나하여 돌아오려는데, 취중에 신발을 잘못 짝짝이로 신고 나왔다. 마부가 "나으리! 신발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요."라고 말하자, 林悌가 하는 말이 "이놈아!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요, 길 오른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나막신을 신은줄 알 터이니, 그게 무슨 상관이더란 말이냐. 어서 가기나 하자." 하고는 말에 올라탔더란다. 박지원의 〈崄丸集序〉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가 일찍이 평안도 評事가 되어 松都를 지나는데, 길 가에 황진이의 무덤이 있었다.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이 당대의 名妓와 멋진 로맨스를 불태웠을 것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에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그녀의 무덤 앞에서 글을 지어 제사 지냈다. "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紅顔은 어데두고 白骨만 남았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林悌는 또 〈意馬〉란 작품에서 사나이의 네 가지 통쾌한 사업을 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를 들면, "그 한가지는 長安에 비 갠 뒤 五陵에 봄볕이 따뜻할 때, 금 안장에 올라 타 달빛에 취하고, 옥굴레를 한 말은 바람에 힝힝 거릴 때, 담비 갖옷을 술집에 전당 잡히고서 紅樓에서 胡姬를 옆에 끼고 마음껏 노닐며, 知己에게 두 자루의 吳鉤(名劍)로 보답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幽燕 지방의 健兒들과 秦壟 땅의 壯士를 이끌고, 龍虎의 기이한 계책으로 天地에다 陣을 벌려 놓고, 鐵馬에게 渤海를 다 마시게 하여, 王庭에 큰 깃발을 세우고 밝은 빛으로 돌아가 天子를 뵈옵고 麒麟閣의 단청을 환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시 그 다운 스케일이다.

또 柳夢寅이 일찍이 金剛山 表訓寺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慧默 스님과 주고 받는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다. "내가 올해로 呂洞賓이 신선이 되어 날아간 나이일세. 비록 산에서 죽더라도, 푸른 멧부리로 棺槨을 삼고, 단풍나무 회나무로 울타리를 삼으며, 香爐峯으로는 香爐를 삼고, 石馬峯으로 石馬를 삼아, 붉은 안개와 흰 구름과 푸른 이내를 朝夕 喪食으로 여기며, 永郞 述郞과 더불어 동해 바닷가를 날며 읊조린다면 내 죽은들 또한 영화롭지 않겠는가?" 실로 통쾌 남아의 기상이 약여하게 드러난 글이다. 이때 그의 나이 예순 네 살이었다. 〈贈表訓寺僧慧默序〉에 보인다.

젊은 시절 月沙 李廷龜가 그를 조정에 천거했다는 말을 듣고 쓴 〈奉月沙書〉에서는 "지난 해는 기근이 들어 아이들이 떡을 다투길래 막상 가서 살펴 보니 콧물이 끈적끈적 하더군요. 夢寅은 江湖에 있으면서 한가하여 일이 없어, 지난 해에는 《春秋左氏傳》을 읽었고, 금년에는 杜詩를 외우니, 이것이 진실로 해를 보내는 벗이라, 이로써 여생을 보내면 그뿐이지요. 아이들과 더불어 콧물 묻은 떡을 다투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올씨다."라 하였다. 黨利黨略에 얽매여 同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벼슬길을 코 묻은 떡을 다투는 아이들에 비유하는 호방함 속에 일말의 누추도 찾아지지 않는다.

시로 쓴 자기 소개서

'文如其人', 즉 글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 있다. 무심히 내뱉는 말 속에는 이미 그의 인생관이나 처세의 방식이 드러나 있어,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나그네는 긴 밤을 앉아 새우고
외로운 절, 빗소리 듣는 가을 밤.
동해 물의 깊이를 재어 봅시다
내 근심과 어느 것이 깊고 얕은지.
遠客坐長夜
雨聲孤寺秋
請量東海水
看取淺深愁

당나라 때 시인 李群玉의 시이다. '遠客'은 그가 고향을 떠나 먼 타관 땅을 전전하는 고단한 신세임을 말해 주고, '긴 밤을 앉아 있다'는 말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아예 잠자리를 차고 나와 앉아 있음을 뜻한다. 2구는 雨聲과 孤寺, 秋라는 세 개의 명사를 서술어 없이 그저 잇대어 놓았다. 가을 밤 창 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靑雲의 꿈을 품고 고향을 떠나왔을 그는 여태도 이렇다 할 功名을 이루지 못하고, 가을 밤 외로이 절에 투숙해 있는 처량한 신세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의 탄식을 금할 길 없다. 지붕을 때리며 천지를 압도할 듯 내리는 가을 비는 나를 마치 거대한 深淵의 나락 속으로 한 없이 가라 앉힐 것만 같다. 마침내 시인은 자신의 이러한 근심의 깊이와 동해 바다의 깊이 중 어느 것이 깊은지 재어 보자고 제의하기에 이른다. 주체할 수 없는 시름 속에 한 없이 침몰해 가는 그의 안간힘이 가슴에 저며오는 작품이다.

모두 16구의 긴 시이다. "궁한 근심은 산 보다 무거운데, 세밑은 머리를 짓누르누나. 꽃답던 얼굴 아름다운 광경, 아스라한 물결 속에 흘려 보냈네. 비늘 날개로 바람과 물 기다리지만, 靑雲은 뜻 펼칠 길 막고 서 있고, 외론 등불 흰 불꽃 서늘하온데, 벌레 소리 찬 방에 메아리치네. 묻노니 陶淵明 그대여, 어찌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던가. 한 잔 술 거나히 취할 길도 없어, 베게를 높이 베고 마음 달래네. 窮愁重于山, 終年壓人頭. 朱顔與芳景, 暗附東波流. 鱗翼俟風水, 靑雲方阻修. 孤燈冷素焰, 蟲響寒房幽. 借問陶淵明, 何物可忘懷. 無因一酩酊, 高枕萬情休."로 이어지는 내용 또한 궁상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다만 앞 4구에서 이미 全篇에서 할 말을 다해 버렸으므로 이 아래의 구절들은 쓸데 없는 군더더기가 된다.

이 시의 제목은 〈雨夜呈長官〉이다. 아마도 실의의 낙담 끝에 그는 옹색한대로 자신의 詩才를 담아 長官에게 보냄으로써 그의 환심을 사, 벼슬이라도 한 자리 얻어보려 결심했던 듯 하다. 처량하기 그지 없는 자기소개서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렇다 할 벼슬도 못했다. 한번은 湘水 강가를 지나다가 舜임금을 따라 죽어 湘水의 女神이 된 二妃의 사당에 시를 써놓았는데, 그날 밤 꿈에 二妃, 즉 娥皇과 女英이 나타나 "그대의 아름다운 시귀를 받자옵고, 장차 아득한 곳에서 노닐며 원컨대 서로 좇고자 합니다."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이로부터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얻은 그는 한 해 남짓 뒤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한다. 《唐才子傳》에 나온다. 뒤에 韋莊이, 뛰어난 문사로 당대에 널리 회자되었으나 현달하지는 못한 사람에게 進士 及第를 追贈해 주자고 주청하여, 李群玉은 죽은 뒤에야 겨우 補闕拾遺에 贈職되었다. 李德懋의 《椵葉記》에 보인다.

고려 예종 때 鄭襲明도 기이한 재주와 雄偉한 도량을 지녔으되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므로 〈石竹花〉란 작품을 지어 자신의 심경을 기탁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하여
동산에 가득히 심어 기르네.
뉘라 알리 황량한 들판 위에도
또한 좋은 꽃 떨기 있음을.
시골 방죽 달빛이 스민듯 고운 빛깔
언덕 나무 바람 결에 풍기는 향기
땅이 후져 공자님네 있지를 않아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맡기누나.
世愛牧丹紅
栽培滿園中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色透村塘月
香傳幐樹風
地偏公子少
嬌態屬田翁

모란은 富貴를 상징하는 꽃이다. 세상사람들이 모란을 사랑함은 꽃을 사랑함이기 보다 富貴를 붙좇음이다. 붉고 농염한 자태, 동산 가득 대접을 받으며 호사롭게 피어난 모란. 부러울 것이 없는 당당한 모습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황량한 들판 가운데에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꽃 떨기가 있는 줄을. 그 빛깔은 마치 시골 방죽 위에 뜬 달빛이 스민듯 애연히 고운 색조를 띠고 있고, 언덕 너머로 바람은 은은한 향기를 불어간다. 애호하는 이 하나 없고, 눈 길 주는 이 하나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石竹花.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기만 하면 공자님네들도 다투어 자신의 동산 가운데 심어 놓자 하련만, 이 황량한 벌판을 그들이 왜 찾겠는가.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길 가는 농부의 무심한 눈길에 답할 뿐이다.

이 시 또한 李群玉의 시와 마찬가지로 자기추천서의 성격을 띤 작품이다. 그러나 鄭襲明은, 머리를 짓누르는 동해물 보다 깊을 성 싶은 삶의 찌든 근심을 말하는 대신, 황량한 들판에서 알아주는 이 없어도 제 빛깔 제 향기를 바람결에 실어 나르는 石竹花의 고결한 자태를 이야기 할 뿐이다. 모란을 시샘하지도, 公子의 안목 없음을 탓하지도 않았다. '哀而不怨', 즉 슬퍼하되 원망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를 이름이다. 李群玉이 궁상맞은데 반해 鄭襲明은 격조가 있다. 李가 長官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형국이라면, 鄭은 의연 군자풍의 늠연함이 있다. 뒤에 이 시를 읽게 된 예종은 "여태도 司馬相如가 있었더란 말이냐?"하고, 그를 즉각 玉堂으로 불러 올렸다 한다. 《破閑集》에 보인다.

비슷한 처지, 비슷한 의도로 쓰여진 작품이 어찌 이리 판이할 수 있는가? 바로 그 사람이 지닌 바 氣像의 차이에서 말미암는다. 인간은 삶의 외형적 조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곤궁과 좌절 등의 외부 조건에 찌들어 시인의 기상마저 함몰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한시 비평에서 말하는 氣像論이란 시인의 기질과 삶의 자세는 바로 그의 시에 거울처럼 비쳐진다는 생각을 말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세 해의 귀양살이 병마저 들어
한칸 집의 살림이 중인양 호젓해라.
눈 덮힌 깊은 산엔 찾는 이 없고
파도 소리 속에 앉아 등불 돋운다.
三年竄逐病相仍
一室生涯轉似僧
雪滿四山人不到
海濤聲裏坐挑燈

고려 때 시인 崔瀣의 〈縣齋雪夜〉이다. 豪放不羈의 기상과 재주를 지녀 오만했던 그는 그 재주로 인하여 당시 長沙監務라는 한직으로 쫓겨나 있었다. 長沙는 전라도 茂長의 옛이름이다. 궁벽한 산 속에서 지낸 세 해 동안의 삶은 젊은 날의 자부와 기개 때문에도 말할 수 없이 괴로웠을 것이다.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진 느낌, 더 이상 아무 쓸모 없이 잊혀져 버린 듯한 생각에 그는 잠 못 이루고 있다. 육신의 병이야 약으로 고친다지만 마음의 병은 그렇지가 못하다. 2구에서는 심뇌하느라 고행하는 중처럼 비쩍 마른 모습을 처량맞게 읊고 있다. 폭설까지 내려 사방 산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겨울에 누가 자신을 찾아올 것인가. 외부로 향한 조그만 기대마저 철저히 차단된 절대고독의 상황이 3구이다. 사람이 찾지 않는 것을 사방 산에 눈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위안하는 시인의 기다림은 자못 안스럽다. 그런 중에서도 매서운 겨울 바람은 집채만한 파도소리로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릴 기세다. 시인은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애꿎은 등불 심지만 자꾸 돋운다. 돋우지 않으면 꺼지고 말 심지, 끝만 남은 심지는 마치 형편 없이 허물어져 버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자신의 투영이다. 그래서 굳이 곧추 앉아서 꺼지지 않도록 심지를 돋운다. 잠 못 이루는 것은 온 산 가득 내린 눈 때문이 아니다. 바람 소리 때문이 아니다. 온 산을 뒤덮을 만큼의 무게로 두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근심, 잊혀짐에의 절망 때문이다. 가물거리는 등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함은 혹 누군가 이 밤에라도 찾아올 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은 아니었을까. 필자는 이 시를 읽으면 언제나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로 시작되는 '산장의 여인'이란 노랫말이 까닭없이 떠오르곤 한다.

徐居正은 《東人詩話》에서 "이 시를 읽어보면 困頓의 기상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어딘가 위축되고 초라하고 곧 허물어지고 말 것같은 허망감이 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사람의 기상이 이렇듯 언어에 그대로 떠오르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결국 그는 일생 동안 이렇듯 곤궁 속에서 불우를 곰씹다가 세상을 떴다.

반면에 이런 시는 어떠한가.

바람 머금은 돛에 산이 내달리는듯
배가 달리니 언덕 절로 움직이네.
낯선 고장이라 자주 풍습을 묻고
좋은 곳 만나면 굳이 시를 남기네.
吳楚라 천년의 예로운 땅에
江湖라 5월의 번성한 시절.
빈털털이 신세라고 구박치 마오
바람과 달 동무하며 나를 쫓나니.
帆急山如走
舟行岸自移
異鄕頻問俗
佳處强題詩
吳楚千年地
江湖五月時
莫嫌無一物
風月也相隨

고려 말 金九容의 〈帆急〉이란 작품이다. 바람을 잔뜩 머금은 돛이 쏜살같이 수면 위로 미끄러지니, 배 안에서 보기는 배가 가는 것이 아니라, 양 옆의 산이 달려가고 언덕이 뒤로 밀리는 형국이다. 3구에서는 낯선 풍물을 마주하여 끊임 없이 샘솟는 호기심을, 4구에서는 山紫水明한 異國 땅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빼어난 경관에의 찬탄을 담았다. 5구에서 吳楚의 천년 예로운 땅을 환기시킨 것은 7.8구의 意境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宋의 文宗 蘇東坡도 이곳에 와서 〈赤壁賦〉를 노래하였었다. 당시 그는 이곳에 좌천되어 쫓겨와 있던 처지였다. 〈赤壁賦〉에서 소동파는 "또 하늘과 땅의 사이에 물건은 각기 주인이 있나니,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도 취하지 말 것이다.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귀가 이를 얻어 소리가 되고, 눈은 이를 보아 빛깔을 이루나니, 이를 취함이 금함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다. 이는 조물주의 다함 없는 곳집이다."라고 하였다. 바야흐로 때는 5월, 강물은 넘실댄다. 과거 영웅들의 체취 어린 산과 언덕을 지나는 감개야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빈털털이의 처지에도 風月을 끌어들이는 여유가 자못 거나하다.

金九容는 고려 말의 어지러운 시대를 살았다. 당시 親明과 親元의 갈림길에서 그는 親明 노선을 지지했고, 이로 인해 元에 잡혀가 귀양 가는 도중 세상을 떳다. 許筠은 《惺未詩話》에서 그가 외교문서에 말 오십필이라고 쓸 것을 잘못 오천필이라고 써서, 元 황제가 고려에 良馬 오천필을 바치라 했는데 바치지 못하므로 그를 雲南 大理로 귀양보냈다고 하였다. 귀양 가는 도중 岳陽 땅에 이르러 병으로 죽었다. 위 시가 귀양 길에서 쓰여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경쾌한 절주와 낙관적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앞서 최해의 작품이 보여주던 곤돈한 기상에 견주면 얼마나 멋과 여유가 넘쳐 나고 있는가.

 

강아지만 반기고

《稗官雜記》에 보면 중국 사람이 지었다는 〈得意詩〉란 것이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났을 때
타향에서 옛 친구를 만났을 때.
洞房에 화촉을 밝힌 첫날 밤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이 걸렸을 때.
久旱逢甘雨
他鄕遇故知
洞房花燭夜
金榜掛名時

땅이 쩍쩍 갈라지는 긴 가뭄 끝에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내려 거북 등 같은논바닥을 적실 때, 모든 것이 어리둥절한 낯선 타관 땅에서 옛 친구와 약속도 없이 만났을 때, 그 기쁨이야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수줍기만 한 新婦와의 첫날 밤, 과거 급제의 榜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였을 때의 설레임은 어떨까. 인간 세상의 유쾌한 得意事를 노래한 것이다. 그러자 어떤 장난스런 사람이 여기에 잇대어 〈失意詩〉 한 수를 지었다.

과부가 아이를 데리고 우는 모습
장군이 적에게 사로 잡혔을 때.
은혜 잃은 궁녀의 표정
과거에 낙방한 선비의 심정.
寡婦携兒泣
將軍被敵擒
失恩宮女面
下第擧人心

北風寒雪 몰아치는 겨울 골목에서 아이를 등에 업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과부의 모습, 위풍당당하던 기상은 간 데 없이 초라하게 적 앞에 무릎을 꿇은 늙은 장군의 처참한 심정, 임금의 발걸음이 완전히 끊긴 궁녀의 허탈한 표정, 전심전력을 다하였으나 금년에도 합격자의 명단에 끼지 못한 만년 낙방 선비의 무너지는 마음. 그 마음을 그 누가 알랴. 장난시이면서도 인생의 단면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과거 급제가 예전 선비들에게는 焦眉의 관심사이다 보니 이를 제재로 한 시가 옛 詩話 중에 심심찮게 보인다. 청나라 袁枚는 《隨園詩話》에서 唐靑臣이란 이의 〈落第詩〉를 소개하고 있다.

급제하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오니
처자의 낯빛이 반기는 기색 없네.
누렁이만 흡사 반갑다는듯
문 앞에서 드러누워 꼬리 흔드네.
不第遠歸來
妻子色不喜
黃犬恰有情
當門臥搖尾

남편의 과거 급제만 바라보고 그간 온갖 고생을 마다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또 낙방을 하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남편이 곱게 뵐 리 없다. 아내의 구박이 서운은 하지만 또 어찌 하랴. 다만 충직한 黃狗만이 제 주인을 알아보고 문 앞까지 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갑다 한다. 찬밥 신세이기로는 저나 나나 같으니, 同病相憐의 연민은 아니었을까. 뒤로 벌렁 누워 오랜만에 보는 주인이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黃狗의 모습이, 이를 바라보는 주인의 씁쓸한 표정과 함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다.

낙제하고 보니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내의 냉대이다. 당나라 때 杜羔가 과거에 낙방하고 집에 돌아가려 하자, 그 아내가 시를 지어 보냈다.

낭군께선 우뚝한 재주를 지니시곤
무슨 일로 해마다 낙제하고 오십니까?
이제는 님의 낯을 뵙기 부끄러우니
오시려든 밤중에나 돌아오시소.
良人的的有奇才
何事年年被放廻
如今妾面羞君面
君到來時近夜來

이건 숫제 협박이나 진배 없다. 누구는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느냔 말이다. 한낮에 말고 밤중에 들어오라니, 사실 자기가 남편 얼굴 보기 민망한 것이 아니라 이웃들 볼 면목이 없다는 타령이다. 대장부가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제 집을 도둑 고양이 들듯 할 수야 있으랴. 이에 발분하여 용맹정진을 거듭한 杜羔는 마침내 이듬해 과거에서 급제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杜羔가 집에 들어오질 않고 밖으로만 돌았다. 이에 그 아내가 다시 시를 지었는데,

낭군께서 뜻을 얻고 나이 한창 젊으신데
오늘 밤 어느 곳 술집에서 취해 주무시나요.
良人得意正年少
今夜醉眠何處樓

라 하였다. 일껏 공부 열심히 하라고 구박했더니, 보답 치고는 참으로 고약하기 그지 없다. 《芝峯類說》에 나온다.

궁상스럽기로 호가 난 孟郊도 進士試에 응거하였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는 다시 한 해동안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이듬해에도 역시 낙방하고 말았다. 그 답답한 심정을,

하루 밤에 아홉번을 일어나 탄식하니
꿈길도 토막토막 집에 닿지 못하네.
一夕九起嗟
夢短不到家

라고 노래하였다. 거푸 낙제를 하고 보니, 가슴에 불덩이가 든듯 하여 잠이 오질 않는다. 억지로 잠을 청해 누워 보아도 울컥울컥 치미는 탄식은 또 어찌해 볼 수가 없다. 나약해진 마음에 고향 생각이 굴뚝 같지만 무슨 낯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그래서 꿈에라도 가뽈까 하여 잠을 청해 보아도 그나마 자주 깨는 통에 꿈길이 토막 나 집에 이르지도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세번째 응시에서 마침내 급제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 때의 得意를 또 한 편의 시로 남겼는데,

지난 날 고생을 뽐낼 것 없네
오늘 아침 툭 터진듯 후련한 생각.
봄 바람에 뜻을 얻어 말발굽도 내달리니
오늘 하루 장안 꽃을 죄다 보리라.
昔日齷齪不足誇
今朝放蕩思無涯
春風得意馬蹄疾
一日看盡長安花

라 하였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더니 막상 급제 하고 보니, 종전의 고향 생각은 간 데 없고, 장안의 美姬를 끼고 놀 생각부터 급하다. 지난 해의 시와 비교해 볼 때 시의 기상이 판연하여 마치 다른 사람의 시처럼 보인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茶山 丁若鏞의 시에 〈不亦快哉行〉이라는 제목의 20수로 이루어진 연작시가 있다. 답답한 세상에 가슴을 후련하게 적셔주는 작품이다. 그 가운데 몇 수를 소개한다.

한달 남짓 찌는 장마, 퀴퀴한 기운 쌓여
四肢도 나른하게 아침 저녁 보냈는데,
초가을 푸른 하늘 툭 터져 해맑더니
끝까지 바라봐도 구름 한 점 없어라.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跨月蒸淋積穢掶
四肢無力度朝糡
新秋碧落澄廖廓
端軸都無一點雲
不亦快哉

초가을에 꼭 맞는 시이다. 특히 금년 여름처럼 잔혹한 더위 끝에 맞이 하는 이즈음의 가을 하늘은 자못 경이적이다. 지루한 여름 장마와 끈적끈적하고 후덥지근한 공기, 사지는 나른하기만 하고 일할 의욕은 아예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섭리는 어김 없어, 어느덧 높아진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고, 손톱으로 톡 치면 쨍하고 금이 갈듯 구름 한 점 없다. 이 얼마나 상쾌한 경계인가.

푸른 시내 굽이 친 곳 쌓인 돌이 둑이 되어
가득히 고인 물이 답답하게 감돌더니,
긴 삽 들고 일어나 막힌 흙을 터뜨리니
콸콸 흐르는 물결이 우레 소리 같구나.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疊石橫堤碧澗氟
盈盈皲水鬱盤廻
長璙起作囊沙決
澎湃奔流勢若雷
不亦快哉

상류에서 내린 비에 갑작스레 물이 불어 시내 굽이친 곳에 돌과 흙이 쌓여 갑자기 연못이 되고 말았다. 아래로 빠져나가야 할 물이 나가지 못해 제 자리만 감돈다. 답답한 마음에 긴 삽을 들고 나가 막고 있는 흙을 터뜨리니 우레같은 소리를 지르며 봇물 터지듯 콸콸콸 흘러 내려간다. 십년 묵은 체증이 확 가시는 듯 하다.

높은 산 꼭대기에 지팡이 놓고 쉬니
구름 안개 겹겹이 下界를 가로 막네.
느지막히 서풍이 白日을 불어가니
萬壑千峯이 일시에 드러나네.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痑嶢絶頂倦遊嚂
雲霧重重下界封
向晩西風吹白日
一時呈露萬千峯
不亦快哉

가파른 비탈길을 더위 잡고 올라가 산 꼭대기에 걸터 앉아 한 땀을 거둔다. 굽어 보는 '믈아래'는 구름 안개 자옥하여 볼 수가 없고, 지금 앉은 봉우리가 어디멘지 조차 가늠할 길 없다. 이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밝은 해를 불어 와 구름 바다를 가르자, 萬壑千峯이 일시에 그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활짝 펼친 雲烗紙에 醉中詩가 더디더니
수풀도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서가래 같은 붓을 손에 가득 쥐어 들고
낚아채듯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雲烗簧展醉吟遲
草樹陰濃雨滴時
起把如椽盈握筆
沛然揮朝墨淋彍
不亦快哉

酒興이 도도하여 종이를 펼쳐 놓고 詩思를 고르는데, 생각과는 달리 말이 이어지질 않는다. 잔뜩 지푸린 하늘은 툭 치면 장대비가 쏟아질듯 하면서도 빗방울은 좀체 듣질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니, 막혔던 詩想도 이와 같이 툭 터져 도도한 詩興을 주체 할 길 없다. 벌떡 일어나 붓을 움켜 쥐고 통쾌하게 휘두르니 붓에선 넘친 먹물이 종이 위로 뚝뚝 떨어진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먹물과 절묘한 호응을 이루었다.

눈보라 허공 가득 삭풍이 매서운데
여우 토끼 숲에 드니 걸음걸이 비틀비틀.
긴 창과 큰 화살에 붉은 비단 모자 쓰고
손을 당겨 산채로 잡아 안장 곁에 매어다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飛雪滿空朔吹寒
入林狐兎脚懐攬
長槍大箭紅絨帽
手晃生禽側圧鞍
不亦快哉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날, 눈은 내려 쌓여 허리를 묻는다. 먹이 찾아 나선 여우와 토끼는 푹푹 꺼지는 눈 길에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제몸조차 가누질 못한다. 긴 창과 큰 화살, 붉은 비단 모자까지 갖춰 쓰고 있지만, 굳이 창과 활을 재어 먹일 필요도 없다. 비틀거리는 이놈들을 그저 산 채로 움켜 잡아, 버둥대는대로 말 안장에 빗겨 맨다.

茶山의 이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갈증 끝에 청량음료를 마신듯 마음이 후련하다. 체증이 내려간다. 이러한 경계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흉중에 讀萬卷書의 온축과 行萬里路의 江山之助를 담아 두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호방하기로는 다시 이런 시는 어떨까.

손가락을 퉁기니 곤륜산이 박살나고
입김을 불어대자 땅덩이가 뒤집힌다.
우주를 가두어 붓끝에 옮겨오고
동해 바다 기울여서 硯池에 쏟아 붓네.
彈指兮崑崙粉碎
噓氣兮大塊紛披
牢籠宇宙輸毫端
傾寫瀛海入硯池

張維의 〈大言〉이란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한껏 과장하여 붓을 뽐낸 시이다. 마치 엄청난 거인이 축구공만한 지구를 손 위에 놓고 공깃돌 놀리듯 장난치는 형국이다. 이와 비슷하게 李白은

五老峯을 붓으로 삼고
三湘의 물을 硯池 삼아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위에
내 마음에 품은 시를 써보리라.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張紙
寫我腹中詩

라고 노래한 바 있다. 뾰족한 五老峯을 붓 삼고, 그 아래를 넘실대며 흘러가는 三湘의 깊은 강물을 硯池 삼아 푸른 하늘 거대한 종이 위에 가슴 속에 품은 뜻을 휘갈기고 싶다는 것이다. 스케일도 이쯤 되고 보면 凡人은 범접할 수가 없게 된다.

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일랑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송이로다.
진흙 소가 물 위로 걸어 가는데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더라.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위는 西山大師의 〈臨終偈〉이다. 한 평생 끌고 다닌 천만 가지 생각과 생각들, 이 생각들이 모여 번뇌를 이루고, 번뇌는 끝이 없어 苦海 속을 헤매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나 豁然開悟, 한 소식을 얻고 보니, 까짓 번뇌는 붉게 달아 오른 화로 위로 떨어진 한 점 눈송이일 뿐일래라. 진흙으로 빚은 소가 물 위로 저벅저벅 걸어가니 대지가 갈라지고 허공이 찢어진다. 진흙으로 빚은 소가 걸어가는 이치가 어디에 있으며, 더욱이 물 속을 걸어갈진대 그 진흙이 온전할 까닭이 있겠는가. 통쾌한 깨달음의 경계를 저벅저벅 물살을 가르고 돌진하는 진흙소의 서슬에 견주고, 천지가 뒤집히고 허공이 갈라지는 驚天動地로 轉迷開悟의 無碍境을 표현하였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自足의 境界, 脫俗의 境地

다음에 소개하려는 시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학자 龜峯 宋翼弼의 〈足不足〉이란 작품이다. 모두 40구 280자에 달하는 장편으로 '足'자만을 운자로 사용한, 중국에서도 달리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작품이다. 그 형식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참으로 삶의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宋翼弼의 일생 학문이 이 한 수의 시에 무르녹아 있다 해도 조금의 지나침이 없다.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족하며
소인은 어찌하여 늘 족하지 아니한가.
부족하나 만족하면 늘 남음이 있고
족한데도 부족타 하면 언제나 부족하네.
즐거움이 넉넉함에 있으면 족하지 않음 없지만
근심이 부족함에 있으면 언제나 만족할까.
때에 맞춰 순리로 살면 또 무엇을 근심하리
하늘을 원망하고 남 탓해도 슬픔은 끝이 없네.
내게 있는 것을 구하면 족하지 않음이 없지만
밖에 있는 것을 구하면 어찌 능히 만족하리.
한 표주박의 물로도 즐거움은 남음이 있고
만금의 진수성찬으로도 근심은 끝이 없네.
古今의 지극한 즐거움은 족함을 앎에 있나니
천하의 큰 근심은 족함을 알지 못함에 있도다.
秦 二世가 望夷宮서 베게 높이 했을 젠
죽을 때까지 즐겨도 충분할 줄 알았지.
唐 玄宗이 馬嵬坡에서 길이 막히었을 때
다른 삶을 산다해도 족하지 않으리라 말했네.
필부의 한 아름도 족함 알면 즐겁고
왕공의 부귀도 외려 부족하다오.
天子의 한 자리도 족한 것은 아닐진데
필부의 가난은 그 족함 부러워라.
부족함과 족함은 모두 내게 달렸으니
외물이 어찌하여 족함과 부족함이 되리오.
내 나이 일흔에 窮谷에 누웠자니
남들야 부족타 해도 나는야 족해.
아침에 만 봉우리에서 흰 구름 피어남 보노라면
절로 갔다 절로 오는 높은 운치가 족하고,
저물 녁엔 푸른 바다 밝은 달 토함을 보면
가없는 금 물결에 眼界가 족하도다.
봄에는 매화 있고 가을엔 국화 있어
피고 짐이 끝 없으니 그윽한 흥취가 족하고
책상 가득 經書엔 道의 맛이 깊어 있어
千古를 벗 삼으니 스승과 벗이 족하네.
德은 선현에 비해 비록 부족하지만
머리 가득 흰 머리털, 나이는 족하도다.
내 즐길 바 함께 함에 진실로 때가 있어
몸에 책을 간직하니 즐거움이 족하도다.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 능히 자재로우니
하늘도 나를 보고 족하다고 하겠지.
君子如何長自足
小人如何長不足
不足之足每有餘
足而不足常不足
樂在有餘無不足
憂在不足何時足
安時處順更何憂
怨天尤人悲不足

求在我者無不足
求在外者何能足
一瓢之水樂有餘
萬錢之羞憂不足
古今至樂在知足
天下大患在不足
二世高枕望夷宮
擬盡吾年猶不足

唐宗路窮馬嵬坡
謂卜他生曾未足
匹夫一抱知足樂
王公富貴還不足
天子一坐知不足
匹夫之貧羨其足

不足與足皆在己
外物焉爲足不足
吾年七十臥窮谷
人謂不足吾則足

朝看萬峯生白雲
自去自來高致足
暮看滄海吐明月
浩浩金波眼界足
春有梅花秋有菊
代謝無窮幽興足
一床經書道味深

尙友千古師友足
德比先賢雖不足
白髮滿頭年紀足
同吾所樂信有時
卷藏于身樂已足
俯仰天地能自在
天之待我亦云足

달리 무슨 蛇足이 필요하랴. 다시 확인하거니와 시는 곧 그 사람이다. 굳이 알려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쓴 언어가 제 스스로 말해주는 사실이다. 언어가 그 사람의 氣像을 대변한다는 것은 그 연원이 깊다. 이는 발전하여 말에 精靈이 깃들어 있다는 言靈意識을 낳기도 했다. 무심히 뱉은 말이 씨가 되고,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詩話에 자주 보이는 '詩讖'이 바로 이를 말한다. 어찌 붓을 함부로 놀릴 것인가. 시인은 모름지기 가슴 속에 호연한 기상을 품을 일이다. 떳떳함을 기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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