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시조의 작품세계 ― 시세계를 중심으로
2002/01/10
한 시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작품을 평면상에 늘어놓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두 가지 면에서 그 변모양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 하나는 종래의 시세계가 보다 심화.확대된 모습이며, 다른 하나는 종래의 시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변형된 모습이다.
가람의 시조작품은 후자의 적절한 사례이다. 동양적인 자연사상을 바탕으로 한 오도(悟道)와 관조(觀照)의 세계가 전기 작품세계의 본령을 이루고 있는 데 반해 <<가람시조집>>(1939) 이후의 작품들과 <<가람문선>>(1966)에 실린 시조들은 주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현실인식과 투철한 참여정신을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적인 서정세계가 전.후기에 걸쳐 두루 노래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관조적인 세계를 보인 '자연시',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을 보인 '세태시', 생활의 정서를 노래한 '인정시'들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자연시와 관조세계
동양사상 가운데 자연을 주로 다룬 사상으로는 노장철학(老莊哲學)을 흔히 꼽는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자연의 섭리를 천도(天道)라고 하고 인간 최고의 선은 천도, 즉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老子 道德經 二十五章). 그리고 동양인의 생활태도 또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그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인공과 인위(人爲)를 배제한 무위자연과 물아일체의 삶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고, 허정(虛靜)의 세계에 드는 것을 삶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그것은 무위(無爲), 무욕(無慾), 무지(無智)를 수기(修己)의 덕목으로 닦음으로써만이 가능한 일이었고, 자연은 인위에 의해 더럽혀질 수 없으며 더럽혀져서도 안 되는 순수무구(純粹無垢)한 상태로 존재해야 함과 동시에 영원한 생명의 원천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동양인의 자연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이다.
자연은 무한한 생명력과 신비로운 조화의 힘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자연의 한 부분 또는 어떠한 변화의 양상까지도 반드시 자연의 생명력과 그 법칙에 연관되어 있다. 자연의 이법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이 시적 대상이 되고, 시정신에 수용된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가람시조는 자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다른 시인과 차이를 보인다. 종래의 시조들이 먼 거리에서 바라보고 큰 재료(대상)를 사용하여 관념적인 절대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가람은 가까운 거리에서 작은 것을 관찰하고 그 본질성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물론 중간물을 사상(捨象)해 버린 직관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관조적인 태도는 유수한 동양의 시들이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시법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가람의 관조적 태도는 사물의 본질과 가치를 추구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나'와 '자연'이 융합된 상태에서 자연의 질서를 찾고 그 오묘한 이치에 도달하고자 하는 구도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맑은 시내 따라 그늘 짙은 소나무숲
높은 가지들은 비껴드는 볕을 받아
가는 잎 은바늘처럼 어지러이 반작이다
청기와 두어 장을 법당에 이어 두고
앞뒤 비인 뜰엔 새도 날아 아니 오고
홈으로 나리는 물이 저나 저를 울린다
헝기고 또 헝기어 알알이 닦인 모래
고운 옥과 같이 갈리고 갈린 바위
그려도 더럽일까봐 물이 씻어 흐른다
폭포소리 듣다 귀를 막아도 보다
돌을 베개삼아 모래에 누워도 보고
한손에 해를 가리고 푸른 허공 바라본다
바위 바위 위로 바위를 업고 안고
또는 넓다 좁다 이리저리 도는 골을
시름도 피로도 모르고 물을 밟아 오른다
얼마나 험하다 하리 오르면 오르는 이길
물소리 끊어지고 흰구름 일어나고
우러러 보이던 봉우리 발아래로 놓인다
<계곡>
<<가람시조집>> 가운데 맨처음 접할 수 있는 작품이 <계곡>이다. 그리고 그의 관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금 시 가운데 화자(話者)는 맑은 시냇물을 따라 계곡을 오르고 있다. 그늘 짙은 소나무 숲길을 지나니 문득 청기와 두어장을 인 법당이 나선다. 이미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조용하기만 하다. 법당은 비어 있고 새들마저 날아오지 않는 빈 뜰에는 적막만이 깔려 있다. 아무도 그 고요함에 귀기울이는 이 없고 홈으로 나리는 물이 제 홀로 저를(저나 저를) 울리며 적막을 깨치고 있지만 그 물소리가 적막감을 더해 준다. 법당의 정적, 그 고요함이 인생의 무상함과 쓸쓸함의 정서를 환기시켜 주지만 이러한 깨달음의 행간을 건너 물이 흐른다.
모든 생각, 모든 흔적을 씻고 또 헹구어 옥같이 고운 모래와 바위들을 그래도 더럽혀질까봐 씻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순수무구(純粹無垢)한 자연의 세계에 든 시중의 화자는 폭포소리에 귀를 막아도 보며 돌을 베게 삼아 모래 위에 누워 푸른 허공을 바라보기도 한다. 한 손에 해를 가리고 하늘이 아닌 허공만을 바라보던 시중의 화자는 다시 '바위 바위 위로 바위를 업고 안고'있는 험준한 계곡의 좁은 길을 이리저리 돌며 물을 밟아 오른다. 오르고 오르지만 끝없는 좁은 길이다.
마침내 물소리 그치더니 흰구름 일어나고 멀리 보이던 산봉우리들이 발아래로 굽어보인다. 산의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탁트인 시야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시중의 화자는 지금까지 이 상쾌한 기쁨을 얻기 위해 그 험한 계곡을 오른 것이다.
그러니까 <계곡>은 이렇듯한 등반(등산)의 과정과 광경을 한 폭의 풍경화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는 잎 은바늘처럼 어지러이 반작'이고,'홈으로 나리는 물이 저나 저를 울리'며, '바위 바위 위로 바위를 업고 안고'있는 것이 계곡의 풍경이며 실상이다. 아무런 가식도 한 구절의 수식도 더하지 않음으로써 계곡의 풍경이 오히려 선명하게 떠오른다. 자연을 찬미하거나 감탄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상(사물)을 묘사해 나가는 것이 가람의 표현법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도 정서는 배제되고 자기 완성이라든가 성숙의 가치 추구라든가 하는 내면의식도 고려되어 있지 않다. 다만 계곡의 형상과 물상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곡>의 밑그림에서 자연의 순수무구함과 고요함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허정의 세계를 느끼게 된다. 아무런 욕망도 격정도 없이 산(자연)을 바라보고 섰는 시중 화자의 모습에서 시인의 관조세계와 만나게 된다.
이제 산에 드니 산에 정이 드는구나
오르고 내리는 길 괴로움을 다 모르고
저절로 산인(山人)이 되어 비도 맞아 가노라
이골 저골 물을 건너고 또 건너니
발밑에 우는 폭포 백이요 천이러니
박연(朴淵)을 이르고 보니 하나밖에 없어라
봉머리 일던 구름 바람에 다 날리고
바위에 새긴 글발 메이고 이지러지고
다만, 이 흐르는 물이 긏지 아니하도다
<박연폭포>(朴淵瀑布)
박연폭포는 예로부터 송도삼절(松都三絶)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이다. 지금도 천마산록에 들면 계곡마다 물이 넘쳐 흐르는 소리가 요란할 것이다.
둘째 수는 그 광경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 폭포소리로써 선(仙)과 속(俗)의 두 경계를 가름하고 있다.
시중의 화자는 속과 선이라는 두 경계의 지점에서 발걸음을 옮겨 산속으로 들어간다. 산속에 은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연폭포의 장관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오르고 내리는 길은 수기(修己)의 길만큼 괴로운 길이며, 비까지 맞으며 가야 하는 어려움의 길이다. 폭포는 보이지 않고 물소리만 요란하다. 백이요, 천이요, 흘러내리던 폭포가 박연에 이르니 하나밖에 없다. 모든 물줄기가 하나에서 비롯되고 또 하나로 합친다. 그 하나가 자연의 이치며 본상(本像)으로서의 깨달음을 준다.
'봉머리 일던 구름 바람에 다 날리고', '바위에 새긴 글발'도 메이고 이지러져서 산봉우리는 산봉우리대로 바위는 바위대로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듯이 인생의 어떠한 일도 바람도 결국은 하나의 원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깨달음이다.
이제, 시중의 화자는 산(山)과 인(人)이 합치는 경계에 이른다. 선(仙)이다. [만폭동]에서의 선인이 여기서는 산인이 된 셈이며, 시인은 선인(仙人.神仙)이라는 용어 대신 산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곧 그의 야인적 풍모를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야인성(野人性)이 '자연' 곧 '나'이며, '나' 곧 '자연'이라는 관계를 설정시켜 준다.
따라서 <박연폭포>는 시인과 자연이 동화되어 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며, 산인의 눈에 비친 자연을 아무런 관념의 개입 없이 그려낸 서경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로 파악한 박연과 긏지 않음으로써의 물의 생리를 파악한 것은 직관을 통해서 얻은 시인의 오도(悟道)의 경지라고 할 것이다.
그 얼굴 그 모양을 누가 탐탁다 하리
앞뒤로 돌보아도 연연한 곳이 없고
그 속은 얼음과 같이 차고 담백하도다
차고 담백함을 누가 귀엽다 하리
다만 헌신같이 초개(草芥)에 버렸으니
때 묻고 어지러짐이 저의 탓은 아니로다
<괴석>(怪石)
예사 사람의 감각으로 돌의 모양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가람처럼 섬세한 감각으로 그 체온까지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의 화자는 얼음과 같이 찬 돌의 체온과 담백한 질감까지 선(禪)의 경지 이상으로 느끼고 있다. 돌을 자기화한 상태이다.
괴석이란 괴이하게 못생긴 돌이다. 그러니 누군들 탐탁하게 생각할 이 없고 연연한 구석이 없으니 버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버려진 돌이니 온갖 때가 묻고 이지러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 돌의 탓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여기서의 돌은 그 못생긴 모양과 차갑고 담백한 속성으로 말미암아 버려진 돌이다. 그리고 이 돌은 특별한 돌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돌(들)이 거기에 그렇게 있는 것이 '저(돌)의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사람들) 또한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 역시 '나'의 탓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것은 자연의 본성이며, 어떤 오묘한 이치이다. 자연과 나를 구분하지 않는 정신 내용 속에서 돌을 자기화한 상태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의 달관을 엿볼 수 있으며, 자연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아니라 시인의 야인적 기질이 본능적으로 표백해 낸 돌의 의미와 만나게 된다.
봄날 궁궐 안은 고요도 고요하다
어원(御苑) 넓은 언덕 버들은 푸르르고
소복한 궁인은 홀로 하염없이 거닐어라
썩은 고목 아래 전각은 비어 있고
파란 못물 우에 비오리 한 자웅이
온종일 서로 따르며 한가로이 떠돈다.
<봄.2>
<계곡>.<박연폭포>.<대성암>.<괴석>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가람시조에는 산과 물, 하늘과 구름, 꽃과 돌(바위) 등의 자연물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소재들은 그 하나하나가 일깨움의 대상으로서 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시인의 자연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가람의 시조가 자연의 관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봄.2>는 어느 봄날의 고궁을 사생한 작품이다. 봄은 온갖 생명들이 소생하는 약동하는 계절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봄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봄날 넓은 궁궐 뜰을 소복한 궁인이 하염없이 거닐고 있고 빈 전각 아래 못물에는 비오리 한 자웅이 한가로이 떠돌고 있는 그러한 풍경이다. 소복한 궁인과 빈 전각이 고요함을 돕는다.
'궁궐'. '궁인'. '전각' 등의 역사적 소재가 한 왕조를 암시해 주며 '소복한'과 '빈'의 관형어가 멸망의 의미를 전해 준다. 이렇듯 비쳐지는 궁궐의 풍경에서 우리는 한 왕조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며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결국 인간의 어떠한 권위도 영화도 영원한 시간 앞에서는 무력할 수박에 없고 고요 속으로 묻혀 갈 수밖에 없다.
'소복한 궁인', '썩은 고목'의 어두운 심상과, '버들은 푸르르고', '파란 못물'의 밝은 심상이 교차되면서 나타내 보인 의미를 고요함으로 파악하고 있는 시인의 직관에서 그의 현실인식과 역사 관조의 태도를 엿볼 수 있으며, 궁인과 비오리만이 하염없이 거닐고, 한가로이 떠도는 광경은 유유자적한 시인의 정신적 모습에 다름이 아니다.
시인의 자연에 대한 관심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해석되어질 수 있다. 자연의 순수성을 사랑하거나 자연과의 동화를 염원하고 그 영속성을 추구하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생명의 가치를 고양시키기도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탄미나 관념적인 표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언어로써 맑고 고요한 풍경을 비춰 주는 데 그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 가람 특유의 맑은 관조와 고요함에 빠져들게 된다.
(2) 난초의 정신과 법열(法悅)
가람과 난초는 분리해 생각할 수 없고 가람시조를 논하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난초시는 그의 작품세계를 해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무애 양주동(无涯 梁柱東)은 [난초는 가람인가]라는 비유로써 가람의 작품세계를 요약한 바 있고, 김윤식의 <가람론>에 이르면 난초의 생리로써 파악한 인생에 대한 오도가 그의 시조의 예도로서 난초의 기품 그 자체가 가람시조의 격조로 분석.평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한국문학사 논고, 법문사. 1973)
시인의 말을 빌면, "난과는 40여년 깊은 인연이 있다. 나의 많은 파란과 함께 난도 환난이 많았다."(수필 <梅蘭과 새해>)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시인이 난초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중반부터였고, 난초와 더불어 생활해 오는 동안 그 정신을 발견하고 오도에 이르기 시작한 때는 1930년대 초반부터였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햇수는 시인의 시조 창작생활 기간과도 맞먹는다.
<난초> 시는 4편 7수로 짜여진 연작시조다. 가람의 난초 시조를 논할 때, <난초> 1, 2, 3, 4, 전편을 하나의 작품으로 이해하는 경우와 각각 독립된 작품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는 '연작을 짓자'는 시인의 주장과 권두환의 해석을 참고하여 4편 7수를 한 작품세계로 살펴보고자 한다.
한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별 비껴 가고 서늘바람 일어 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난초.1>
<난초.1>은 바야흐로 벌어지는 난초꽃 두어 봉오리의 피어남을 신선하게 노래하고 있다.
난초는 아무때나 피지 않고 대개 사람들이 잠든 사이 '서늘 바람'을 좇아 핀다. 시중의 화자는 책을 들고 졸다 '서늘바람'에 선뜻 잠을 깬다. 어떤 예감이다. 그렇게 기다리던 난초꽃 두어 봉오리가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비밀스런 광경을 모처럼 대하게 된 희열감에 시중의 화자는 깊은 감명을 받은 상태이다.
난초꽃은 햇볕의 에너지와 '서늘바람'을 내적 자양으로 하여 피는 꽃이다. 그의 작품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햇볕에 유의하고 바람을 주목할 때 햇볕의 그 따스함은 생명의 에너지로 파악되며 바람은 서늘함으로서의 난초의 생리로 이해된다. 따라서 꽃과 햇볕 그리고 바람은 동격의 위치에 놓이고 하나의 생명적 동질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새로 난 난초 닢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침아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츰 볕이 발틈에 비쳐 들고
난초 향긔는 물미듯 밀어 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참아 어찌 뜨리아
<난초.2>
<난초.2>는 <난초.1>에 등장하는 '서늘바람', 즉 난초꽃을 피워 올린 그 바람이 돌변하여 난초 잎을 휘젓는 상황에 시적 계기가 마련되어 있다.
첫째 수에는 휘젓는 바람에 꺾일 듯 꺾일 듯한 난초 잎을 대하는 시중 화자의 애처롭고 안타까운 심정이 그려져 있고, 둘째 수에서는 난초가 해맑은 햇살 속에 그 향기를 화자에게 한껏 내뿜어주고 있다. "눈 뜨고 꺾이는 양을 참아 어찌 보리아"와의 이심전심이며 잠신들 이 곁을 두고는 차마 떠나지 못하는 마음과의 교감이다. <난초.3>의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른다"는 것이다.
생명의 향기로 비유되는 난초의 향기가 물밀 듯이 밀려옴으로써 시중의 화자는 그 희열감에 격렬한 정조를 일으키지만 부드럽게 다스려진 표현이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긴다.
오날도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든 난초(蘭草) 다시 한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저기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 앉어 책(冊)을 앞에 놓아 두고
장장(張張)히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난초.3>
<난초.3>의 시상은 첫 수 중장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대 피어나며'라는 구절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으로 비가 나린다. 온종일 나리는 비가 시중 화자의 외로움을 돕고 있다. 그 외로움은 난꽃을 볼 수 없음에서 온 것이며, 꽃이 지든 난초가 다시 한대 피어나 고적한 마음을 위로해 준다고 진술하고 있다. 난초꽃이 지면 마냥 섭섭하고 고적하다는 것이다. 이제 난과 시중의 화자는 땔 수 없는 생명적 관계에 놓인 상태다. 비록 외로 돌아앉아 책장을 넘기지만 난은 향을 인다. 서로가 서로를 못 잊고 따르는 난과의 동화된 상태가 '책'과 '난초'와 '나'가 하나로 융합되어 생명의 향기를 뿜고 있다.
<난초.1>은 개화(開花)를, <난초.2>는 그 향기를, <난초.3>은 두 번째의 개화를 노래하고 있다. 시인의 생명의식과 한떨기 꽃을 피우는 난초와의 교감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속과 변화의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예민한 생명감각이 난초의 생리를 고결한 기품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빼어난 가는 닢새 굳은 듯 보드랍고
가짓빛 굵은 대공 하야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대 그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히 않고 우로(雨露)받어 사느리라
<난초.4>
<난초.4>는 정한 모래 틈에 서려 있는 뿌리, 그것도 햇볕에 맨살을 드러낸 뿌리를 들여다보는 순간의 발견(오도)을 노래하고 있다.
첫째 수는 난초의 모습이다. 그 잎새와 하얀 꽃 그리고 줄기에 매달린 이슬이 간명하면서도 영롱하게 그려져 있다. 그 가는 잎새의 굳은 듯 보드라움과 '가짓빛 대공', '하얀 꽃'의 대조가 난초의 모습과 성격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이슬이 구슬로 비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것은 난초가 아닌 것으로부터도 난초에로의 조화를 이루어 냄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둘째 수는 의인법을 사용하여 그 탈속하고 고적한 난초의 성품을 노래하고 있다. 최자(崔滋)의 말을 빌면, 첫째 수는 눈을 놀라게 한다는 '경어안(驚於眼)'이요, 둘째 수는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는 '경어심(敬於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식물들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그러나 난초는 모래, 그것도 깨끗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마진도 가까이하지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산다. 그것이 난초의 생리며 기품이다. 그리고 그 기품의 발견은 바람 불고 비오는 날들의 오랜 시간을 거쳐 비로소 깨닫게 된 시인의 인생에 대한 관조며 오도로 풀이되는 것이다.
모든 식물들이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 듯이 세상 사람들이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몸과 마음을 더럽혀 가고 있을 때, 고결한 정신을 꿋꿋이 지켜 가며 살아온 가람을 상기하고, 바람 불고 비가 내리는 <난초시>의 개화 배경을 주목할 때, 난초시의 의미는 보다 구체화될 수 있다. 첫 수의 '이슬'이 둘째 수 종장에 이르러 '우로'로 변용됨으로써 삶의 이미지를 포용하게 되는 점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난초의 생리와 기품은 곧 시인의 삶이나 기품과 일치하게 된다.
시인은 난초를 재배한 지 30여 년이 되었고 오도를 하고서야 재배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40여 년의 깊은 인연 속에 많은 환난을 겪어 왔다고도 하였다. 따라서 난초의 생리로써 파악된 그의 오도는 많은 환난을 겪고야 이르른 길임을 알 수 있으며, 조국이 처한 비극적 상황의 비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환난 속에 빼어난 난초의 잎새는 곧 시인의 사랑이었고 조국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권두환의 말과 같이 <난초> 시편들은 "한 시대 한 사회에 머무르지 않고 한 기쁨이나 슬픔에도 꺾이지 않고 모든 시대의 기쁨과 슬픔 속에서 향기를 더해가는 정신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정한모.김재홍 편, <<한국대표시평설>>, 문학세계사, 1983, p. 108).
이와 같이 난초시의 정신은 후기 작품에 속하는 <풍란>.<도림란>.<청매> 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때 가람시조의 미학적 본령이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잎이 빳빳하고도 오히려 영롱하다
썩은 향나무 껍질에 옥 같은 뿌리를 서려두고
청량(淸凉)한 물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사노니.
꽃은 하얗고도 여린 자연(紫煙)빛이다
높고 조촐한 그 品이여 그 香을
숲속에 숨겨 있어도 아는 이는 아노니.
<풍란>(風蘭)
<풍란>과 <도림란>은 후기 작품에 속하지만 감정이 절제되고 일체의 과장이나 덧붙임이 없다는 점에서 전기의 작풍과 다를 바 없다.
시인은 "풍란화 밑에서 그 향을 마시며 이 노래를 다시 읊었다"고 일기에 적고 있다. 그만큼 이 시인이 아끼던 난이며 작품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난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풍란이다. 그리고 그 잎새의 빳빳함으로 보아 웅란(雄蘭)임을 알 수 있으며, 웅란은 그 자태도 자태이지만 맑고도 매운 향기로 하여 더욱 진귀하게 여겨지고 있는 난이다.
첫 수는 잎새의 영롱함과 나무껍질 속에 서린 뿌리의 맑고 깨끗함을 표상하고 있고, 둘째 수는 그 정신과 기품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영롱한 잎새', '옥같은 뿌리'로 표상되고 있는 난초는 청량한 물기를 머금고 바람으로 산다고 하였다. 그것이 난초의 생리이며 속성이다. 따라서 난초의 속성이 드러내는 '높고 조촐'한 그 품이며 그 향은 숲속에 있어도 아는 이는 다 안다. 결코 요란하지 않고 떠들거나 드러내지도 않는 것이 난초의 속성이며 기품이다. 그러나 아는 이는 다 알며 아무리 숲속에 숨어 있어도 그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는 이는 다 안다'는 인식 방법은 동양 지성의 전통적인 한 인식방법에 다름이 아니지만 난초의 속성이 시인의 기질성으로 나타나며 난초의 기품이 시인의 기품으로 투영되고 있다.
난의 만여종(萬餘種)이 온 대륙에 펼쳐 있다.
계손맥문동(溪蓀 麥門冬)도 난이라 일컫는데
봄에 핀 이 일경일화(一莖一花)가 정말 난이었다
하이얀 줄거리에 비취옥(翡翠玉)같은 그 화관(花冠)
오늘 새벽에야 바야흐로 벌었다
으늑히 떠 이는 향에 나는 자못 놀랐다
<도림란>(道林蘭)
무명의 풀(사물)에 이름을 붙여 준다는 것은 곧 하나의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일이 된다. 따라서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그 방면에 깊은 조예와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도림란'(道林蘭)이란 가람이 작명하여 오늘에 불리워지고 있는 진기한 춘란의 이름이다.
진귀(眞貴)한 난은 그만큼 기르기도 어렵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지도 모른다. 시인은 많은 공을 들여 이 난을 길러 왔다. 그리고 그 꽃을 보기 위해 지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새벽 무렵에 이르러서야 이윽고 피어 오른 '하이얀 줄거리에 비취옥 같은 화관'의 난꽃을 보게 된다. 시인은 그 순간의 감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 독특한 생김새와 청량한 비취빛 비색의 꽃잎이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신기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사(형)의 서술 종결어로 억누르고 있던 시적 감동도 '으늑히 떠이는 향'에는 감탄에 빠질 수밖에 없고, 시중의 화자는 자못 놀래어 그 비향의 아찔한 비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신비로운 생명의 향기에 도취된 상태에서 발견의 놀라움과 법열을 느끼고 있다.
봄마다 방긋방긋 구슬보다 영롱하다
낼모래면 다 필 듯 벗들도 오라 하였다
진실로 너로 하여서 떠날 길도 더뎠다
대체 복이란 건 길고 짜를 뿐이다
요(夭)니 수(壽)니 함도 이걸 일컬음인데
짜르고 긴 그 동안을 우리들은 산다 한다
오늘 아침에야 봉 하나이 벌어졌다
홀로 더불어 두어 잔을 마시고
좀먹은 고서를 내어 상머리에 펼쳤다
<청매(靑梅).3>
매화는 이른 봄 눈 속에서 핀다. 지금 막 벙그는 꽃봉오리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시중 화자의 모습이 상머리에 떠오른다. 정이월의 차가움과 술잔의 따스함이 결합되어 '나'와 '매화'가 하나로 조화된 일체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목숨의 길고 짧음의 의미를 하나의 존재방식과 동일한 가치로 인식하는 생명의식 자연의 본질과 이치로 파악한 시인의 생명감각이 파악해 낸 오도라고 할 수 있다. 시중의 화자는 이미 술에 취한 듯한 몽롱한 상태로 매화향기에 배어들고 있다. 생명의 본질과 자연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법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시인의 매화(梅花) 시편들은 봄을 맞이하고자 하는 희망과 개신(改新)의 의지를 안으로 간직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풍지에 바람 일고 구들은 얼음이다.
조그만 책상 하나 무릎 앞에 놓아 두고
그 위엔 한두 숭어리 피어나는 수선화
투술한 전복껍질 발달아 등에 대고
따뜻한 볕을 지고 누워 있는 해형수선(蟹形水仙)
서리고 잠들던 잎도 굽이굽이 펴이네
등(燈)에 비친 모양 더우기 연연하다
웃으며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숭이숭이
하이얀 장지문 위에 그리나니 수묵화를
<수선화>(水仙花)
<수선화>는 수줍은 듯 고개 숙인 수선화의 모습을 수묵화로 그린 작품이다. 등(燈)에 비추이어 장지문에 비쳐진 수선화의 모습이 아련하고도 연연하다.
시인의 표현과 꽃말을 빌면 '저나 저'를 좋아하여 물에 빠져 죽었던 나리시소스의 영혼으로 황홀한 자아도취 상태에서 '수선화'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얀 장지문에 그려진 '수선화'의 수묵화는 서경에 다시 서경을 보태어 중의적인 의미까지 확장시켜 갖추도록 했다.
"풍지에 바람 일고 구들은 얼음이다"는 공간적 배경은 시중의 화자가 처한 현실적 상황임과 동시에 겨울로 상징되는 차가운 현실 속에 자리한 수선화의 존재양상을 암시한다. 수선화는 2월의 차가움 속에서 피는 꽃이다. 따라서 수선화의 생리는 차가움이며 차가운 만큼 강렬한 생명력을 지닌다. 그 생명의 본질이 장지문 위에 빛과 그늘의 의미로 그려지고 있다. 즉, 생명의 차가움과 따뜻함의 의미다.(김윤식, 앞책 [가람론])
2월의 차가움 속에서 피어나는 수선화의 강렬한 생명력을 역작용으로 파악한 시인의 확실한 감각으로서의 생명감각이 아니라면 수선화의 본질적 의미는 아무 데서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시인이 파악한 생명의 본질은 바로 볕과 그늘, 즉 밝음과 어둠이며 따뜻함과 차가움이다. '등에 비친 수선화의 모양이 더우기 연연'하게 비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두운 깊은 밤을 나는 홀로 앉았노니
별은 새초롬히 처마끝에 내려 보고
애연한 서향(瑞香)의 향은 흐를 대로 흐른다
밤은 고요하고 천지도 한맘이다
스미는 서향의 향에 몸은 더욱 곤하도다
어드런 술을 미시어 이대도록 취하리
<서향>(瑞香)
<서향>은 고요한 밤에 스며드는 서향에 흠뻑 취한 상태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가람의 시조에서 서정성이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 시조는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서경의 광경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물화같은 고요한 풍경을 느끼게 하며 밤을 배경으로 하여 홀로 앉아 있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그의 표현법이 사생법에 익숙해져서 광경 없이도 서경을 드러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애연한 서향의 향 흐를 대로 흐르는' 밤은 하늘과 땅이 따로일 수 없고 천지 간에 '나' 또한 따로일 수 없다. 처마 끝에 바라보이는 별이 볕(따스함)과 차가움의 접합 지점이라면 스미는 서향은 하늘과 땅, 그리고 나를 하나로 묶는 융합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관조의 서경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융합의 의미에서 시인의 도취감을 느낄 수 있으며 생명체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현기증을 느끼게 해준다. '몸은 더욱 곤하고', '술은 마시어도 이대도록 취하리'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우리는 시인의 관조를 넘어선 침잠의 세계와 만나게 되며, 서경이 그대로 서정으로 탈바꿈했는 데도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은밀하여 눈치 채기 어려울 정도다(정미라, 근대시조연구, p. 185).
여기서 잠깐 시인의 산문들을 살펴보자.
빵은 육체나 기를 따름이지만 난은 정신을 기르지 않는가(수필, <풍란> 중에서).
내가 난초 재배한 지 30여 년에 이걸 달라는 이는 많았으나 주어도 기르는 이 없었다. 이도 또한 오도(悟道)다. 오도를 하고서야 재배한다(수필, <난초> 중에서).
"芒鞋踏破東頭雲 盡日尋不見春
歸來笑燕梅花醉 春在校頭已十分" (범려(范 )작)
이란 것을 보고 오도까지 하였다는 명시였으나 그런 자연상태에만 맡겨두고 그걸 보고 오도까지 하였다는 그런 것보다도 지금 우리로는 그런 오도보다도 매화 피기를 촉진하여야겠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이미 내 손으로 가꾸어 '春在校頭已十分
' 전의 매화를 보았다. 이리하여 나는 나의 오도를 따로 그 매화보다도 먼저 하였다고 하고 싶었다(수필, <매화> 중에서).
만수(萬穗)가 다 조락하고 만뢰(萬 )가 구적(具寂)한 동짓날 긴긴 밤에 홀로 그 백화며 청향을 대할 때 비로소 법열과 오도의 순간을 얻을까 한다(수필, <매란과 새해> 중에서).
시인은 난과의 깊은 인연 속에 한 평생을 살아왔다. 환난을 같이 하며 살아오는 동안 시인은 난을 닮아 갔을 것이며, 난 또한 시인을 닮아 갔을 것이다. 난의 생리를 파악하고 기품을 닮아 가는 시인의 정신적 행로, 그 구도의 길에서 만난 난과 매화가 오도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하여 난과 매화의 향기만이 법열과 오도의 순간들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생명의식과 생명감각은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생명의 본질 및 그 가치를 발견하는 오도와 법열의 순간들을 시적 대상(자연의 물상)을 통해 얻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의 자연시들이 보이는 관조적인 세계와 난초의 미학은 시인의 생명의식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그의 생명감각이 포착한 대상(존재)의 의미가 고요한 서경시로 표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가람시조의 자연시편(특히, 난초시)들은 세상의 속기(俗氣)를 털어 주며, '정결한 것', '순수한 것', '본디의 것'들과 '고요함'의 의미를 생각케 한다.
(3) 민족적 비애와 저항 정신
가람은 누구보다도 한국적인 풍토에 민감한 시인이었다. 따라서 한국적인 리리시즘을 표출한 작품들이 없을 수 없으며, 자연과의 교감을 고도한 정신세계로 끌어올린 감성적인 작품들이 시적 본령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후기 작품들에서 이러한 경향의 시조들을 대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후기 작품의 특징은 역시 시대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비롯된 비판적인 내용의 현실묘사 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람의 시세계에 이와 같은 변화의 전기를 가져다 준 것은 조선어학회 사건이었고 1년 여의 옥중생활은 가람의 정신 및 생활에 커다란 충격과 변화를 안겨다 주었다. 1년 여의 옥중생활을 거치는 동안의 참혹한 상황과 비통한 심경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홍원저조>(洪原低調)이다.
묵직한 철책문이 덜그럭 닫치는고나
도몰아 이는 시름 가슴이 메어지고
하룻밤 지내는 동안 적이 수(壽)를 덜었다.
버버리 그저 있고 처녀는 어제 죽다
발도 거지 않고 자리를 옮겨 앉아
우러러 철창(鐵窓)너머로 달을 처음 보았다.
<홍원저조> 1, 2
<홍원저조>는 양심과 정의가 마비된 질서 속에서 자유마저 박탈당한 이 민족의 비통함과 한 시대의 비극상을 메시지로 전하고 있는 작품이다.
'묵직한 철책문이 덜그럭 닫치면서'부터 겪게 된 참혹한 옥중생활은 시인만이 겪는 비통함만은 아니었다. 버버리(벙어리)는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잡혀 와 매를 맞고, 영생여자중학교 여학생 처녀는 윤감(輪感)으로 죽어야만 했다. 그것이 이 민족이 겪어야만 했던 당시(일제하)의 현실이었다.
시인이 살아온 일제치하, 나라를 잃은 망국민의 슬픔과 고통은 감옥의 안과 밖이 다를 바 없었다.
갊아 두엇던 붓이 거의 다 좀이 먹고
난은 향을 잊고 수선(水仙)도 자취 없고
상(牀)머리 거문고마저 귀가 절로 어둬라
화분(花盆)을 테를 메어 불 담아 곁에 두고
보던 책을 뜯어 문틈과 구녁을 막고
설레는 바람소리나 반겨 자주 듣노라
<해방전>(解放前) - 살풍경(殺風景)
<해방전>은 당대의 지성이 겪어야만 했던 현실적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고결한 선비정신을 꿋꿋이 지켜 오던 시인도 이 민족의 일원으로서 피지배 민족의 수모와 멍에를 함께 짊어지고 추위와 굶주림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붓과 백묵은 이 시인의 생계를 감당해 온 유일한 생활수단의 도구였다. 그러한 붓이 쓰임을 잃고 갈무리된 채 좀 먹고 있고, 생명적인 인연으로 한 생을 같이해 오던 난도 향기를 잊은 지 오래다. 수선도 자취 없고 상머리에 놓인 거문고마저 귀가 어두어 들을 수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제기능을 잃은 상태다.
이렇듯 첫 수는 모든 기능이 마비되고 생명의 가치가 상실된 절망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조건은 여기에 그치게 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마침내 '보던 책을 뜯어 문틈과 구녁을' 막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가람이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하고 난초와 더불어 살아 온 시인임을 상기할 때, 생활의 수단이며 민족의 유산으로 소중히 모아 온 책을 뜯어 문틈으로 새어드는 바람을 막고, 그 춥고 암울한 시대를 견뎌 가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것은 시인 자신의 모습임과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 민족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기능과 역할이 마비되고 금지된 시대, 모든 생명의 가치가 상실된 시대의 생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차마 죽지 못하여 사는 목숨(<홍원저조>)'일 것이다. 시인은 실로 소중한 것을 다 잃었다. 붓과 책을 잃었고 난초와 수선을 잃었다. 농사는 지었지만 공출로 다 빼앗겼고 징병 간 아들마저 잃었다. 오직 남은 것은 귀먹은 거문고뿐이다.
바람소리나 반겨 자주 듣는 행위에서 어떤 기대감과 역설적 의미가 찾아지지만 부제에 밝혀져 있듯이 <해방전>의 상황은 살풍경한 풍경 그대로가 아닐 수 없다. 그 살벌하고 황량한 풍경의 밑그림에서 시인의 자학과 안타까움의 심상이 떠오르며 저항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민족주의의 저항의식이 한 시대의 풍경을 그려내게 했고, 그 실경(實景)으로써 한 시대를 증언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저항정신은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한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시인이 직접적으로 현실에 투신하여 시대적인 것, 사회적인 것들에 관심을 보이고 현실의 모순에 대응하는 비판적 태도는 선비정신을 꿋꿋이 지켜 온 가람의 양심이었고 시대에 처하는 시인의 사명이기도 하였다.
한국의 현대사는 혼란과 비극으로 점철된 시대였고, 한국전쟁(6.25)은 이민족(異民族)의 통치하에 겪어야만 했던 비통함보다 더한 비극을 안겨다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조국은 또다시 많은 인명과 재산을 잃게 되고 국토는 초토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소맷속 드는 바람 시원도 하온지고
나를 따라 저 달은 물에 비쳐 보이다가
내 또한 산을 넘으니 산 넘어서 보이더라
벼포기 묶어 센 듯 두렁 너머 우뚝 솟고
콩과 팥은 넝쿨 벗어 길도 밭도 모를세라
해마나 저녁 이슬에 옷을 적셔 드노라
모처럼 집에 드니 낯선 이도 많은지고
술 받고 닭을 잡아 손과 같이 여기오며
이웃집 늙은이들도 수스러이 아더라
뒷동산 깊은 숲에 흐르는 꾀꼬리 소리
하두나 좋을세라 춤을 추고 일어나니
산듯한 아침 햇발이 산을 넘어오더라
선경이 이 아닌가 달리 찾아 무엇하리
대숲속 많은 바람 돌사이 맑은 시내
흥진에 흐렸던 가슴을 씻어 준 듯하여라
<고향길에>
벼락보다 무서운 포탄 우박처럼 쏟아지고
옥같은 몸들이 불티 되어 날렸으련마는
저마다 내 고장으로 돌아올 줄 믿나니
벌이 그만두고 짐도 매잘 것 없고
힘찬 주먹을 쥐어 크게 부르짖으며
저마다 내 고장으로 돌아올 줄 믿나니
벼를 가득 누려 쥐도 살지어 보고
헐린 터전에 새로 주추를 놓고
저마다 내 고장으로 돌아올 줄 믿나니
<내고장>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데나 정들면 못살리 없으련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가
방과 곳간들이 모두 잿더미 되고
장독대마다 질그릇 쪼각만 남았으나
게다가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봅시다
삼베 무명옷 입고 손마다 괭이 잡고
묵은 그 밭을 파고 일구고
그 흙을 새로 걸구어 심고 걷고 합시다.
<고향으로 돌아가자>
앞의 세 작품은 모두 고향을 제재로 한 노래들이다. 동일한 대상을 노래하고 있지만 작품마다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고향길에>가 전쟁 전의 고향풍경을 서경적인 목가풍으로 그린 작품이라면, <내 고장>과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전쟁 후의 황량한 고향풍경을 제시하고 새로운 희망과 기원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고향은 환유적 의미를 지닌다. 전쟁을 치르기 전의 평화롭던 고향의 목가적 풍경이 그후 모든 것이 파괴된 황폐한 풍경으로 바뀌어져 있다. 초토화된 조국의 모습이다.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옥같은 몸들이 불티 되어' 날아간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처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화(戰火)는 전선과 후방이 따로 있을 수 없었고 어느 도시나 농촌도 폭격으로부터 안전지대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방과 곳간들이 모두 잿더미되고', '장독대마다 질그릇 조각만' 남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황폐화한 고향의 모습은 <해방전>의 살풍경한 심상을 현실적인 현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 고장>과 <고향으로 돌아가자>의 시적 의도는 물론 전쟁을 고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헐린 터전에 새로 주춧돌을 놓고', '깨진 질그릇에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 봅시다'라고 경건한 어조로 재건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전쟁에 대한 분노나 이념적 비판보다는 휴머니즘 정신으로 인간을 감싸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휴머니즘 정신은 그의 생명의식과 민족주의 기치에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밤이면 그 밤마다 잠은 자야 하겠고
낮이면 세때 밥은 먹어야 하겠고
그리고 또한 때로는 시도 읊고 싶고나
지난봄 진달래와 올 봄에 피는 진달래가
지난 여름 꾀꼬리와 올 여름에 우는 꾀꼬리가
그 얼마 다를까마는 새롭다고 않는가
태양이 그대로라면 지구는 어떨 건가
수소탄 원자탄은 아무리 만든다더라도
냉이꽃 한 잎에겐들 그 목숨을 뉘 넣을까
<냉이꽃>
자연은 영원한 침묵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또 길러 낸다. 그리고 그 자연의 질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동양인의 삶의 지혜요, 동양 지성이 추구하는 예지였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온 서양인들의 삶의 태도와 구분되는 점이다.
동양의 지성이 피는 꽃과 새소리를 통해 계절을 헤아리고 오도의 경지를 열어가는 데 그 목적을 두어 왔다면 서양의 지식은 자연의 물질적 요소들을 결합(융합)하여 과학의 산물을 얻어내는 데 목적을 두어 왔다. 그리고 수소폭탄이나 원자탄으로 상징되는 과학문명의 위력이 어떠함은 이미 잘 알고 있는 터이다.
수소탄이나 원자탄이 한국전쟁에 쓰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세계 제 2차대전중 일본에 투하되어 그 위력을 과시한 바 있다. 20세기 과학문명을 상징하는 원자탄은 결국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로 사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인간이 탐구한 지식들을 모아 개발한 문명이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의 개발이었다면 그것은 인류전체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킬 수 있는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무기의 개발에 반대하는 것은 비단 시인뿐만은 아니다.
시인은 수소탄과 원자탄이라는 구체적인 무기를 통해 전쟁을 고발하고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어떠한 과학의 힘도 문명도 냉이꽃으로 표상되고 있는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당할 수 없음을 지적하며, 평화로운 삶과 생명의식을 고양시키고 있는 것이다.
반문명적(反文明的)인 것은 아니지만 <촛불>에 나타난 불안감 역시 같은 느낌을 준다. 현대문명과 아울러 전쟁을 부정하고 비판하기에 이른 것은 물론 한국전쟁의 체험에서 비롯된다. 한국전쟁은 그만큼 이 땅의 많은 인명과 재산을 앗아 갔고 궁핍과 혼란만을 남겨 놓았다. 궁핍한 시대의 혼란한 사회는 그만큼 가치관을 전도시키고 불합리한 세태로 굴러가게 마련이다.
지난 가을에는 거둘 것이 있었더냐
어린 밀보리야 어서 잘 자라다오
우리는 지금에 너나 바랄밖에 없다
<밀보리>
눈 눈 싸락눈 함박눈 펑펑 쏟아지는 눈
연일 그 추위에 몹시 볶이던 보리 그 참한 포근한 속의 문득 숨을 눅여 강보에 싸인 어린애마냥 고이 고이 자라노니
눈 눈 눈 아니라 보리가 쏟아진다고 나는 홀로 춤을 추오
<보리>
<밀보리>와 <보리>는 평시조와 사설시조라는 형식상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전후의 궁핍한 생활상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주제의 작품이다.
밀과 보리는 잡곡에 속한다. 그러나 해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밀이나 보리와 같은 잡곡도 쌀 이상의 진곡이 아닐 수 없다. 서민들의 주된 양식으로서 생명줄과 다름없는 곡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보리밥도 밀개떡도 마음껏 먹고 살 형편이 아니다. 그것이 전후의 우리 생활상이었으며 오직 바라는 것은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보리싹에서 눈을 뗄 수 없고, 내리는 눈마저도 보리로 보이는 환상 속에서 풍년의 염원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농인(農人)의 말>은 '해마다 풍년이 들어도 주려 죽게 되었다'고 하고, <상인(商人)의 말>은 '팔리긴 팔린다 해도 배꼽이 배보다 크다'고 한다.
지루한 苦痛보다는 차라리 自殺이 쾌하다
그 전쟁 끝에 强盜는 자주 나고
해마다 豊年은 들어도 주려 죽게 되었다
<농인의 말>
이들의 하소연을 통해 우리는 전후(戰後)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가를 알 수 있으며 그들(서민)의 삶에 대한 절망과 고통이 다름 아닌 현실적 비리와 모순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농인은 '지루한 고통보다는 차라리 자살이 쾌하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 역설적인 표현에서 그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적인 고통과 절망감을 헤아릴 수 있으며 해마다 풍년은 들어도 주려 죽게 되는 원인(遠因)이 전쟁이라는 원인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강도'들에 있음을 중장은 암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의 '강도'는 실제의 도둑일 수도 있고, 정치 권력이 자행하는 수탈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의 행태가 자행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는 아무리 '팔리기는 팔린다 해도 배꼽이 배보다' 더 클 수밖에 없고 주판은 아니 맞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인들의 삶은 적자더미로 쌓일 수밖에 없고 마침내는 자학과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시인은 이렇듯 절망의 늪에 선 농민과 상인의 말을 빌어 이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고발하고 공론화하고 있다.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적 상황이 비애와 분노의 정서를 전한다.
시인이 인식한 현실적 상황은 이미 사회 정의도, 질서도 무너진 상태다. 그러나 비록 사회가 혼란하고 진공의 상태라고 하더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삶의 명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집 앞으로는 지나기도 두렵다
겹겹이 둘러 둘러 가시성을 쌓았노니
지금도 안치(安置)를 받을 무슨 죄를 지었을까
홍수 맹수보다 음악(陰惡)한 이 세상에
탱자울은 커녕 철옹성인들 믿으리오
갈외고 저히는 도적이 맘속에도 있으니
<탱자울>
<탱자울>은 우리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같은 이야기다. 사회적인 혼란을 틈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신의 부귀영화를 노리는 무리들에게 비수같은 질책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겹겹이 둘러 가시성'을 쌓는 주체는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권력자이거나 부정축제자들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그들이 누구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비밀스럽고 부정한 행위로 말미암아 야기된 불안심리(不安心理)와 죄의식을 감추기 위해 철옹성같이 굳고 단단한 담을 높이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정한 행위는 죄의식을 낳으며 불안한 심리상태에서는 외부를 경계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맹수보다 더 흉악한 세상이다. 가시성을 친다고 해서 그 대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두려움과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시인은 어떠한 시대에도 부정은 안치될 수 없는 죄악이며, 그 죄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마음의 도적을 내쫓는 길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부정과 비리로 착취한 치부의 높이만큼 겹겹이 쌓인 담의 위압감이 한 시대의 불안과 한 사회의 만연한 불신 풍조를 대변해 주고 있다.
가시성.맹수.음악(陰惡).도적 등 폭언에 가까우리만치 가열해진 언어와 독설에 가까운 풍자, 그리고 역설적인 표현의 알레고리에서 우리는 시인의 비판정신과 만나게 되며, 이렇듯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비롯된 참여의 정신이 후기 시조의 특징인 저항적 시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향토성과 생활의 서정
시조는 본질적으로 서정시에 속한다. 가람은 누구보다도 한국의 풍토에 민감한 시인이었고 그의 시조는 민족적 정서를 노래하면서부터 출발하였다. <오동꽃>, <어머님 가시는 날>, <고향으로 돌아가자> 등 전통적이며 향토적인 서정세계의 작품들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다.
시인은 "문학이 반드시 사실(寫實)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되 비록 그 무엇을 가설적으로 상상한 것이라도 그것이 과연 복받치는 정열의 표현이고 보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 (가람문선, p.469)고 했고, 그의 자연시편들이 보여주는 관조와 난초의 고고한 정신 및 현실에 대한 치열한 비판정신도 따지고 보면 '복받치는 정열'의 승화요, 그 변용에 다름아니다.
이 시인의 생활의 시편들은 대체로 1인칭 독백서술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그리운 날>은 그 제목부터가 서정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종달이 귀가 솔고 하루살이 눈에 드다
진펄밭 웅굿 캐고 뫼를 올라 고사리 꺾고
방안에 오똑이 앉아 글을 외기 싫어라
풀도 없는 강변 쬐는 볕은 따가와라
모래도 놀이삼아 날마다 물에 살고
옷처럼 검은 몽뚱이 빛은 아니 나더니라
콩서리 하여다가 모닥불에 구워먹고
밀방석 한머리 신삼는 늙은이 졸라
끝없는 옛날 이야기 밤을 짧아 하였다
그 겨울 동지 섣달 추위도 모르든지
눈속에 발을 벗고 동무와 담음질치고
볏가리 고드름 따라 이를 서로 겨루다
<그리운 그날.2>
종달이.하루살이.진펄밭.웅굿.고사리.콩서리.모닥불.밀방석.볏가리.고드름.옛날 이야기 등의 향토적인 소재와 낱말들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이끌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시켜 준다.
담머리 넘어드는 달빛은 은은하고
한두개 소리없이 내려지는 오동꽃을
가려다 발을 멈추고 다시 돌아보노라
<오동꽃>
<오동꽃>에서는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오동꽃잎이 소리 없이 지고 있다. 보라빛 오동꽃잎에 유심한 시인의 정서가 한국적 리리시즘을 재현시키고 있다.
몸을 담아 두니 마음은 돌과 같다
봄이 오고 감도 아랑곳 없을러니
바람에 날려든 꽃이 뜰 위 가득하구나
뜰에 심은 나무 길이 남아 자랐도다
새로 돋는 잎을 이윽히 바라보다
한손에 백묵을 들고 가슴 아파 하여라
<백묵>
이 시인의 시조에서 추상적인 소재나 관념적인 낱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서경적인 시들이 구체적인 소재와 언어로써 그 실경과 사물을 감각화시켜 주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는 서경과 서정이 조화로운 표현을 얻고 있다.
백묵은 시인의 유일한 생활수단이다. 시중의 화자는 지금 강의를 하다 멍하니 교정을 바라보고 서 있다. "바람에 날려든 꽃"과 "새로 돋는 잎"이 비극적인 현실과 내일에 대한 예감의 비유적 의미를 지니며 이윽히 바라보고 섰던 시중의 화자는 가슴을 저며오는 아픔을 느끼고 있다. 조국이 처한 현실과 앞날의 걱정에서 온 아픔이다.
깊고 깊은 뫼이 숲도 그리 그윽하다
번히 트인 곳이 저 아니 광릉인가
허울한 양마석(羊馬石)머리 지는 해는 잦았다
외롭고 쓸쓸하기 영월(寧越)과 어떠하리
해마다 봄이 오면 자규야 울지마는
오르고 눈물을 지을 누대(樓臺)하나 없도다
<광릉>(光陵)
<광릉>은 단종(端宗)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을 제재로 한 작품이다. 시중의 화자는 지금 깊은 산속의 숲을 헤치며 광릉을 찾아가고 있다. 자규의 울음조차 그친 깊은 산속은 조용하기만 하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이 깊은 산속에 오똑 앉아 있는 광릉의 모습이 외롭고 쓸쓸한 정회를 일으킨다. 비록 복위는 되었으나 생전의 유적지 영월에서의 삶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생전과 사후의 모습이 겹치면서 역사의 무상함과 인생의 허무함이 쓸쓸함의 정서를 도우며 '눈물 지을 누대 하나 없음'이 외로움의 정서를 진폭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애상적 정서와 한국적인 리리시즘이 가람 시세계의 한 흐름으로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끝으로 자전적 시조 한 편을 감상하기로 한다.
한몸에 지은 짐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 짐을 다 버리고 이리저리 오고 가매
새로이 두 어깨 밑에 날개 난 듯하고나
쌀값은 높아가며 양화(洋貨)는 범람하고
거리 거리에 자동차 트럭 버스
이것이 서울특별시 새 풍경이로고나
늙어 가면서도 술잔은 놓을 수 없고
늙어 가면서도 분필은 던질 수 없다
분필과 술잔으로나 내 한생을 보낼까
<내 한 생(生)>
가람의 시조시학은 섬세하고도 우람한 모습으로 우뚝한 면모를 지닌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시인은 어느덧 외로움에 싸여 있다. 가람, 그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짐을 지웠고 조국과 한국학의 짐을 짊어지고 시인은 여기까지 왔다.
'후일 반드시 큰 일을 이루리라'(他的必期偉業傳)던 그 뜻이 다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룬 시조시학과 한국학의 업적은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김윤식은 가람의 한 생애를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1968년 9월, 하늘은 그가 준 날개를 되돌려 받아갔다. 가람은 그가 하늘로부터 받았던 날개를 되돌려 주어야 했다. 너무나 많은 짐을 지우게 한 것은 가람의 조국 쪽이었다. 가람, 그는 하늘로부터 날개를 부여받았으나 바로 그 날개의 의미 때문에 그의 조국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짐을 강요당했다. 더구나 수난 속에 처한 조국이 아니었던가. 그로부터, 가람 그는 날개를 펼 수 없었다. 그러나 광명의 날은 왔다. 가람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게 한 조국은 해방된 것이다. 가람은 이제 날개를 다시 찾으로 한다. 그 조국의 짐을 벗는다는 것은 두 어깨에 날개를 다시 찾는 일이다. 이 날개를 다시 찾으려 했을 때, 하늘은 그 날개를 다시 회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람에게서 완결의 양식을 보고 동시에 출발의 양식을 보는 것이다(한국문학사 논고, p. 227).
분명 가람시조 시학과 그 양식은 현대시조의 출발의 의미를 지닌다. '양화가 범람하고' 서울의 풍경이야 어떻게 바뀐다 하더라도 그가 날리던 분필가루며 한지에 박힌 묵향으로 하여 그 날개의 의미는 민족문학의 영원한 생명력으로 살아 숨쉬게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