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 베스트 7
1.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70. 6. ‘창작과 비평’에 발표)
2. 동네
나 사는 곳.
도봉구 상계1동,
서울의 최북방이고,
변두리의 변두리.
수락산과 도봉산,
양편에 우뚝 솟고,
공기맑고 청명하고,
산위 계곡은 깨끗하기 짝없다.
통틀어 조촐하고,
다방 하나 술집 몇 개
이발소와 잡화점,
이 동네 그저 태평성대.
여긴 서울의 별천지
말하자면 시골 풍경
사람들은 다 순박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향토(鄕土) 아끼다.
(80. 1. <월간문학>에 발표)
3. 갈대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51. 12. <처녀지>에 발표)
4.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70. 7. <詩人>에 발표)
5. 기쁨
친구가 멀리서 와,
재미있는 이야길 하면,
나는 킬킬 웃어 제낀다.
그때 나는 기쁜 것이다.
기쁨이란 뭐냐? 라고요?
허나 난 웃을 뿐.
기쁨이 크면 웃을 따름,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라.
그저 웃음으로 마음이 찬다.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생색이 나고 활기가 나고
하늘마저 다정한 누님 같다.
(79. 시집 <주막에서> 민음사)
6. 수락산변(水落山邊)
풀이 무성하여, 전체가 들판이다.
무슨 행렬인가 푸른나무 밑으로.
하늘의 구름과 질서있게 호응한다.
일요일의 인열(人列)은 만리장성이다.
수락산정으로 가는 등산행객.
막무가내로 가고 또 간다.
기후는 안성마춤이고,
땅에는 인구(人口).
하늘에는 송이 구름.
(79. 시집 <주막에서> 민음사)
7. 계곡
수락산 자락에는
이상적인 계곡이 있다.
여름에는 숱한 인파다.
물이 왜 이리 맑은가.
바위들도 매우 겸손하다.
나는 이것들로부터 배움이 많다.
산자락의 청명한 공기여.
아취(雅趣)로운 절간이여,
푸르디푸른 등성이의 숲이여.
(79. 시집 <주막에서>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