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

桃花源記 -陶潛-

桃花源記(도화원기)

 -陶潛- 晉나라 때의 시인. 理想鄕을 그린 작품

 

()나라 태원(太元) 연간(A.D 377-397),  무릉(武陵)에 고기를 잡는 어부가 살았는데,

어느 날 시내를 따라 가다 어디쯤인지 길을 잃고 말았다.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진태원중, 무릉인포어위업, 연계행, 망로지원근.

 

배는 어느새 복사꽃 숲을 지나 강 언덕을 끼고 수백 보나 흘러갔는데,

잡목은 보이지 않고 향기로운 꽃들이 곱게 피어 있고 꽃잎은 어지럽게 날리며 떨어졌다.

어부는 이를 아주 기이하게 여겼다.

忽逢桃花林, 夾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 漁人甚異之,

홀봉도화림, 협안수백보, 중무잡수, 방초선미, 락영빈분, 어인심이지,

 

다시 앞으로 나아가니 숲이 끝나는 데에 水源이 있었고 문득 산이 하나 앞을 가로막았다.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 便得一山.

부전행, 욕궁기림 림진수원, 편득일산.

 

거기에 작은 동굴이 있었는데 마치 동굴 안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동굴입구로 따라 들어갔다. 처음에는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로 좁았는데, 몇 십 보 들어서자 시야가 확 트였다.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捨船從口入.

산유소구, 방불약유광. 편사선종구입.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朗.

초극협 재통인, 부행수십보 활연개랑.

 

너른 들판에 집들이 늘어서 있고, 기름진 전답,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같은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집들은] 논두렁 밭두렁 길로 오가며 개와 닭소리를 서로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토지평광 옥사엄연, 유량전미지상죽지속, 천맥교통, 계견상문.

 

그 가운데 사람들이 오가며 농사짓고 있는데 남녀의 의복이 모두 이국적이었다.

기름도 바르지 않고 장식도 없는 머리를 하고, 모두 기쁘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其中往來種作, 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髫, 竝怡然自樂.

기중왕래종작, 남녀의저 실여외인, 황발수초, 병이연자락.

 

어부를 보더니 크게 놀라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자세히 대답했더니, 집으로 불러서 술을 내고 닭을 잡아 음식을 대접하였다.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견어인 내대경, 문소종래, 구답지, 편요환가, 설주살계작식.

 

이 낯선 사람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몰려와 이것저것 물었다.

村中聞有此人, 咸來問訊.

촌중문유차인, 함래문신.

 

그들 스스로 말했다. “선조가 진()나라 시대의 난을 피하여 처자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아름다운 이 곳으로 왔다가, 다시 나가지 않아 마침 바깥세상과는 격리되고 말았지요.

自云,“先世避秦時亂, 率妻子邑人來此絶境, 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자운, “선세피진시란, 솔처자읍인 래차절경, 불부출언 수여외인간격.

 

또 “지금은 어느 시대지요?” 하고 묻기도 하였다.

이들은 한()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 후 위진(魏晉)시대가 있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 “今是何世” 乃不知有漢, 無論魏晉.

,  “금시하세”  내부지유한, 무론위진.

 

어부가 아는 대로 하나하나 말해 주니, 모두들 놀라며 탄식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기 집으로 안내하고, 모두 술과 음식을 내왔다.

此人一一爲具言所聞, 皆歎惋.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차인일일위구언소문, 개탄완. 여인각부연지기가, 개출주식.

 

며칠을 묵고 작별 인사를 하니,

그 중 어느 사람이 “바깥사람에게는 이야기 할 것이 못됩니다.”라고 부탁했다.

停數日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정수일사거. 차중인어운, “불족위외인도야.

 

어부는 그곳을 떠나 배를 타고 왔던 길로 나가면서 곳곳에 표식을 해 두었다.

旣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志之.

기출 득기선, 변부향로, 처처지지.

 

고을로 돌아와 태수에게 자초지종을 고했더니,

태수는 사람을 보내서 그 길을 따라 표식을 찾아 나가게 했으나 다시 그 길을 찾지 못했다.

及郡下 詣太守, 說如此. 太守卽遣人隨其往 尋向所志, 遂迷不復得路.

급군하 예태수, 설여차. 태수즉견인수기왕 심향소지, 수미불부득로.

 

남양(南陽)의 유자기(劉子驥)는 고상한 선비였다.

南陽劉子驥, 高尙士也.

남양유자기, 고상사야.

 

이 이야기를 듣고 기뻐서 그곳을 찾아 가고자 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이 후로는 그 나루터를 묻는 이가 없었다.

聞之 欣然規往. 未果 尋病終. 後遂無問津者. <『陶淵明集』卷6>

문지 흔연규왕. 미과 심병종. 후수무문진자.

 

蘭亭敍 -王羲之-

중국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가 《난정집(蘭亭集)》에 쓴 서문. 그 법첩(法帖)을 《난정첩(蘭亭帖)》이라고 한다. 왕희지가 회계내사(會稽內史) 재임 중인 353 3 3일 상사일(上巳日)에 사안(謝安) 등 회계의 명사(名士) 41명이 명승 난정(蘭亭)에 모여 악()을 쫓는 제()를 지내는 주연(酒宴)을 가졌다. 그 때 사람들이 만든 시를 모아 왕희지가 붓을 들어 서문을 썼다. 그 진필은 왕희지의 7대손이 되는 승려 지영(智永)이 가지고 있었으나, ()대에 와서 왕희지의 글을 지극히 좋아한 태종(太宗)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유언에 따라 소릉(昭陵)에 순장(殉葬)시키게 되어 망실되고 말았다. 오늘날 전해 내려오는 여러 종류의 법첩은 태종이 탑서인(복사전문가)을 시켜 만든 모사본(模寫本)이 아니면 구양순(歐陽詢)·우세남(虞世南)·저수량(楮遂良)의 임서(臨書)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왕희지의 필체를 방불케 하여 중요시되고 있다.

永和九年, 歲在癸丑, 暮春之初, 會於會稽山陰之蘭亭, 修契事也.

영화구년, 세재계축, 모춘지초, 회어회계산음지난정, 수계사야.

群賢畢至, 少長咸集. 此地有崇山俊嶺, 茂林修竹;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군현필지, 소장함집. 차지유숭산준령, 무림수죽; 우유청류격단, 영대좌우.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 雖無絲竹管弦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

인이위류상곡수, 열좌기차; 수무사죽관현지성, 일상일영, 역족이창서유정.

是日也, 天朗氣淸, 惠風和暢; 仰觀宇宙之大, 俯察品類之盛; 所以游目騁懷, 足以極視之娛,

信可樂也.

시일야, 천랑기청, 혜풍화창; 앙관우주지대, 부찰품류지성; 소이유목빙회, 족이극시지오,

신가락야.

夫人之相與, 俯仰一世,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부인지상여, 부앙일세, 혹취제회포, 오언일실지내; 혹인기소탁, 방랑형해지외.

雖趣舍萬殊, 靜躁不同; 當其欣於所遇, 暫得於己, 快然自足, 不知老之將至.

수취사만수, 정조부동; 당기흔어소우, 잠득어기, 쾌연자족, 부지노지장지.

及其所之旣倦, 情隨事遷, 感慨係之矣. 向之所欣, 俯仰之間,

급기소지기권, 정수사천, 감개계지의. 향지소흔, 부앙지간,

以爲陳迹, 猶不能不以之興懷; 況修短隨化, 終期於盡. 古人云: "死生亦大矣." 豈不痛哉!

이위진적, 유불능불이지흥회; 황수단수화, 종기어진. 고인운: "사생역대의." 개불통재!

每覽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 未嘗不臨文嗟悼, 不能諭之於懷.

매람석인흥감지유, 약합일계; 미상불림문차도, 불능유지어회

固知一死生爲虛誕, 齊彭傷爲妄作. 後之視今, 亦由今之視昔, 悲夫! 故列敍時人, 錄其所述,

雖世殊事異,

고지일사생위허탄, 제팽상위망작. 후지시금, 역유금지시석, 비부! 고열서시인, 록기소술,

수세수사이

所以興懷, 其致一也. 後之覽者, 亦將有感於斯文.

소이흥회, 기치일야. 후지람자, 역장유감어사문.

 

  영화9년 계축년 3월초 회계군 산음현의 난정에 모여 "수계"행사를 열었다. 많은 선비들이 모두 이르고 젊은이와 어른들이 다 모였다. 이곳은 높은 산과 고개가 있고 깊은 숲과 울창한 대나무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여울이 좌우로 띠를 이루었다.

  흐르는 물을 끌어 잔을 띄우는 물굽이를 만들고 순서대로 자리를 잡으니 비록 성대한 풍악은 없어도 술 한 잔에 시 한 수씩 읊으며 또한 그윽한 정회를 펼칠 만 하였다.

  이 날은 맑은 날씨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머리를 들어 세상의 넓음을 우러르고 고개를 숙여 사물의 흥성함을 살피니, 경치를 둘러보며 정회를 펼침은 족히 보고 듣는 즐거움을 다하기에 참으로 기쁘기 한이 없었다.

  무릇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서 한 평생을 살아가되, 어떤 사람은 벗을 마주하여 서로 회포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정회를 대자연에 맞기며 유람을 한다. 비록 나아감과 머물음이 서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도 같지 않건만, 자신의 처지를 만족하며 잠시나마 득의 하면 기쁘고 흡족하여 장차 늙어 죽으리라는 것도 모르는 법이다.

  (그러나) 흥에 겨우면 다시 권태롭고, 감정이란 세상사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감흥이란 단지 그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예전의 기쁨도 잠깐사이에 곧 시들해지니 더더욱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사람 목숨의 길고 짧음이 비록 하늘에 달려있다 해도 결국에는 죽어야 할뿐임에랴. 옛사람이 이르기를 "삶과 죽음은 역시 중대한 일이다." 라고 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은가.

  매번 옛사람들이 감흥을 일으켰던 까닭을 살펴보면 마치 계약문서가 들어맞듯 일치하여, 그들의 문장을 보면 탄식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가슴에 와 닿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즉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장수와 요절이 똑같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겠다. 후세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를 보는 것 또한 오늘의 우리가 옛사람을 보는 듯하리라. 슬프도다. 오늘 모임을 가졌던 사람들이 모두 그 술회를 시로 적었으니 비록 후세에는 세상이 달라져도 정회가 일어나는 까닭은 한가지인즉 뒤엣 사람이 이 글을 보면 또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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