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최고위과정

예술과의 대화 / 진중권

예술과의 대화


/ 강사 : 진중권 / 성남아트센터

서울대 미학과 졸업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졸업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중앙대학교 독문학과 겸임교수

SBS 라디오 시사프로 'SBS 전망대' 진행

인물과사상 연재

* 강좌소개

"디지털 미디어와 더불어 새로운 마니에리스모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혁명은 생산으로부터 육체성을, 세계로부터 물질성을, 현실의 질료로부터 저항을 빼앗아갔다.

빌렘 플루서의 말대로 세계는 결정적으로 주어지는 것(datum)에서 만들어지는 것(faktum)으로 변했다.

정보공학은 허구를 현실로 기획하고, 유전공학은 생명까지 디자인한다.

예술과 기술이 합쳐지고, 상상과 기계가 결합하는 가운데 새로움은 디자인에서, 충격은 기술의 영역에서 나오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 네오마니에리스모


회화는 재현을 포기하고, 음악은 조성을 회피하고, 시는 의미를 파괴하고, 연극은 부조리해졌다.

현대 예술이 시작된 지 어언 100여년, 그 동안 두 번의 모던이 있었고, 한 번의 포스트모던이 있었다.

‘단절’이냐 ‘연속’이냐,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포스트모던’의 종말론적 제스처마저 이제는 또 하나의 과거로 회고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현대예술의 100년의 역사 속에서 그 동안 무슨 일이 발생했던가? 그리고 앞으로 현대예술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 유럽의 모더니즘


모더니즘은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전통적 예술의 규정을 파괴했다.

예술은 재현을 포기함으로써 ‘가상’이기를 그치고, ‘미’를 포기함으로써 스스로 추해졌다.

이런 급진적 변화는 당시의 낡은 예술 관념에 큰 충격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물론 아방가르드가 이미 고전이 된 오늘날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마저 아름답게 느껴지나,

이는 충격의 효과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충격’을 지향하는 전략은 계속된다. 과거의 예술이 감각에 쾌감을 주었다면,

현대 예술은 지적 충격으로써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려 한다.


모더니즘은 ‘새로움’의 이름으로 전통을 거부했다. 전통은 하나씩 깨져나갔다.

먼저 르네상스 이래의 원근법적 공간이 무너졌다. 이어 추상이 등장하여 회화의 정의나 다름없었던 재현을 붕괴시켰다.

나아가 형과 색의 배치라는 ‘구성’도 포기되고, 마침내 캔버스라는 프레임까지 사라져 버렸다.

개념예술의 비(非)물질성 속에서 예술의 마지막 물적 토대인 마티에르마저 증발해 버린다.

예술제도 자체에 대한 공격도 있었다. 이렇게 ‘혁신’(innovation)은 고전적인 예술 원리의 열사(熱死)로 이어졌다.


붕괴한 예술의 원리만이 아니었다.

과거에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었다. 이때 ‘자연’은 무엇보다도 신을 닮은 인간의 신체를 의미했다.

하지만 현대예술에서는 바로 이 고전적 예술 이상 역시 무너진다.

초현실주의는 인간을 이성이 아닌 본능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다다이즘과 미래주의는

“인간 신체의 금속화”를 꿈꾸며 인간을 기계와 같은 무기물로 해체시켜버렸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제들 마이어 같은 이는 모던의 예술이 “중심을 상실”하고 퇴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대예술은 전통적 예술 원리의 죽음이자 고전적 예술 이상의 죽음이기도 했다.

제들 마이어와 달리 아도르노는 이 미적 엔트로피의 증가를 철학적으로 축성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이론은 모더니즘의 미적 강령이라 할 수 있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예술이 추해졌다면 그것은 사회 자체가 추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화해가 미학적으로 촉진된다면, 그것은 기만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현대예술은 불구가 된 자신의 현존으로써 그 사실을 증언하려 한다.

그리하여 “현대의 예술작품들은 죽음의 원칙인 물화에 미메시스적으로 따른다.”



* 미국의 모더니즘


4~50년대에 미국에서 일어난 두 번째 모더니즘 운동은 현대성의 기준을 '반성‘(reflection)에서 찾았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재미있게도 칸트의 ‘판단력비판’이 아니라 ‘순수이성비판’에서 현대예술의 원리를 끄집어낸다.

칸트가 이성을 가지고 먼저 이성의 한계를 반성함으로써 현대성에 도달한 것처럼,

회화 역시 현대성에 도달하려면 자연을 탐구하기 전에 먼저 제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주제화해야 한다.

예술이 현대적이려면 현상학에서 말하는 ‘지향성’을 포기하고 ‘평면성’(flatness)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린버그는 ‘자기지시성’이라는 모더니즘의 원리를 반복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더 협소한 형식주의로 좁혀 놓았다.

추상과 더불어 현대 예술의 주요한 흐름이었던 초현실주의는 그에게 그저 모던 이전(以前)의 현상일 뿐이었다.

제 자신이 아니라 매체 밖의 다른 것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현대예술의 또 다른 주요한 흐름인 뒤샹의 레디메이드 전략은 그에게 아예 예술 이외(以外)의 현상으로 비쳤다.

앤디 워홀과 더불어 팝 아트의 이름으로 구상이 복귀했을 때 그는 이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유행으로 여겼다.


아도르노는 예술이 칸트의 말대로 “합목적성의 한갓된 형식”인 한 “아무 것도 가상성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

예술은 여전히 가상”이라고 보았다.

이때 그가 염두에 둔 것은 현대예술의 ‘구성’(composition)이었다. 예술작품이 형과 색의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한,

아무리 현실의 재현을 포기해도 어차피 미적 가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그라미와 삼각형으로 이루어진 리시츠키의 작품에서도 우리는 모종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재현의 가상성과 구별되는 구성의 가상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은 그것이 작품으로 규정되는 한 이미 현실과 구별된다.”

예술은 실제의 합목적성이 아니라 합목적성의 한갓된 형식만 가지고도 현실과 구별된다.

가상성의 파괴라는 면에서 그린버그의 형식주의는 아도르노의 칸트적 형식주의보다 멀리 나아간다.

폴록의 작품은 추상회화마저도 일종의 가상으로 만들어주던 이 구성마저 포기하기 때문이다.

추상표현주의의 유럽적 대응물인 앵포르멜도 그 이름 속에 이미 형식의 해체를 함축하고 있다.

게다가 이 시기에 작품을 “현실과 구별”시켜주던 액자마저 사라졌다.



* 시대의 꿈


로사리오 아순토는 아직 원근법을 몰랐던 중세예술과 이미 원근법을 모르는 모더니즘 사이의 유사성에 관해

얘기한 바 있다.

한 시대는 다른 시대를 꿈꾼다고 보았던 벤야민은 모던의 전조를 바로크와 낭만주의에서 찾았다.

움베르토 에코는 다분히 냉소적인 어조로 중세와 포스트모던의 유사성을 지적한 바 있다.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앞으로 도래할 시대의 맹아는 이미 지나간 시대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마니에리스모에서 바로크로 이어지던 시대의 판타지다.


네오마니에리스모-네오 바로크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까? 빌렘 플루서는 ‘기술적 상상력’에 관해 얘기한다.

주술적인 것이든, 신화적인 것이든, 아니면 과학적인 것이든, 과거의 상상력은 한갓 허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날 상상은 기술의 힘으로 곧바로 현실이 되고 있다. SF는 더 이상 장르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아예 현실의 원리가 되었다. 모든 자연의 탐구가 끝나고, 모든 형식의 반성이 완료되고,

초현실의 세계마저 탐색이 끝난 지금, 남은 것은 미(未)현실의 영역, 즉 상상력으로 기획하고 기술로 실현해야 할 세계다.


기술과 예술, 과학과 상상이 결합되는 시기가 세 번 있었다. 하나는 마니에리스모의 시기다.

다빈치는 이미 마니에리스트의 면모를 갖고 있었다. 이 면모는 특히 그가 남긴 수많은 드로잉과 발명품들 속에 잘 드러난다.

당시로서는 별 쓸모가 없었던, 그래서 실현되지 않았던 그의 발명품 속에서 과학과 상상은 하나로 결합된다.

자연과학이 태동하던 이 시기의 과학적 사유는 아직 중세적-르네상스적 판타지와 뒤섞여 있었다.

이는 17세기 바로크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 이 시기의 과학자들은 아직 진지하게

연금술이라는 화학적 마술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두 번째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다. 이론적 가능성으로만 존재했던 과학이

동력과 다양한 기계장치의 발명으로 실현되던 시기다.

전 세계에서 발명된 기계와 장치들은 파리의 만국박람회에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거기서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볼 수 있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쥘 베른의 비전은 바로 그곳에서 탄생했다.

20세기 초의 예술, 특히 미래주의, 다다이즘, 구성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계적 상상력은

이 시기에 모습을 드러낸 기술적 상상력의 뒤늦은 반영이었을 뿐이다.



* 네오마니에리스모


세 번째 마니에리스모는 새로운 미디어, 즉 컴퓨터와 더불어 최근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혁명은 생산으로부터 육체성을, 세계로부터 물질성을, 현실의 질료로부터 저항을 빼앗아갔다.

빌렘 플루서의 말대로 세계는 결정적으로 주어지는 것(datum)에서 만들어지는 것(faktum)으로 변했다.

정보공학은 허구를 현실로 기획하고, 유전공학은 생명까지 디자인한다.

예술과 기술이 합쳐지고, 상상과 기계가 결합하는 가운데 새로움은 디자인에서, 충격은 기술의 영역에서 나오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상상은 현실이 되고 있다.


실재는, 그것이 이미지든 오브제든, 복제의 형태로 귀환했다. 하지만 이 복제는 더 이상 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본이 없기 때문이다. 형상과 사물의 존재론적 지위에 일어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데리다가 지적한 것처럼 디지털 혁명은 이미지로부터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본질로 들었던 지표(index)의 성격, 즉 카메라 앞에 있었던 것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능을 앗아가 버렸다.

때문에 더 이상 복제는 가상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현실이다.

현실을 증명해야 할 의무에서 해방된 이미지는 비례를 일탈한 마니에리스모-바로크의 회화처럼

어떤 시각적 ‘과도함’(excess)을 띠게 될 것이다.


예술가는 기술자가 되고, 기술자는 예술가가 될 것이다. 예술은 점점 더 생산의 영역에 포섭되어 갈 것이다.

오늘날 다이달로스의 꿈은 주술적으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이것은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이며,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차원의 일어남이다.

하지만 예술과 기술의 결합, 과학과 상상의 결합은 현재의 조건 하에서 예술과 자본의 결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예술과 자본의 공모는 예술에서 비판적 기능을 앗아감으로써 예술에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추상기계’에 관해 얘기할 때 들뢰즈-가타리는 실은 마니에리스모의 부활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

그들이 모나드의 ‘주름’을 논하며 “우리는 여전히 라이프니츠적”이라 했던 것은

이 시대를 새로운 바로크로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