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외규장각 도서, 과연 무엇인가?
10월18일부터 21일까지 외규장각 도서반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한불간의 2차 전문가 회의가 빠리에서 열린다. 이번 회의는 지난 4월29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린 1차 전문가 회의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과 자크 살루아 프랑스 감사원 최고위원간 양국 대표 단독회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현재 한국측은 외규장각 도서의 영구임대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프랑스측은 단기 또는 장기 임대형식을 통한 한국내 외규장각 전시회 개최를 고집하고 있어 이번회의도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2차 회담을 앞두고 리용3대학 이진명교수가 외규장각 도서들이 어떤 것인지 재불한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원고를 보내왔다. 학자들간에도 340권의 외규장각도서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론이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 현재 학계에서는 이교수와 다른 의견도 나와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공부하는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이 기사를 읽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한동안 한불관계의 '뜨거운 감자'로 남을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를 둘러싼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도서들이 어떤 것인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
빠리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가 한불 간에 중요한 외교 현안의 하나로 되어 있다. 이 문제는 1991년 10월 이태진 교수가 규장각 도서관장으로 있을 때 서울대학교가 외무부를 통해 프랑스측에 반환을 제기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그후, 1993년 9월에 미테랑 대통령이 의궤 한 권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그 사건을 전후하여 양국의 여론이 비등했다. 그 이후 양국 외교 당국 간에 얘기도 오고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이태진 교수와 백충현 교수가 쓴 소책자 『외규장각 도서, 무엇이 문제인가』참조바람)
1998년 4월 3일 김대중 대통령과 작크 시락 대통령이 영국에서 있은 아시아-유럽 정상 회담 자리에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양국이 보다 적극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하고 협상 대표를 임명했다. 프랑스측은 1999년 1월, 전 문화부 박물관 국장이었으며, 현재는 회계감사원(Cour des Comptes) 최고감사위원인 작크 살로아(Jacques Sallois) 씨를, 한국측은 3월 말에 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였으며 현재 정신문화연구원 원장인 한상진 씨를 협상 대표로 임명하여, 지난 4월말 서울에서 1차 회담을 벌렸고, 2차 회담은 오는 9월 23-24일 빠리에서 열 예정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면 이 회담의 대상(對象)이 되는, 1866년에 프랑스 해군이 강화도에서 약탈해 갔다는 책과 물건은 과연 무엇인가? 그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궤류에 대해서는 박병선 여사의 연구 등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나머지 것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고 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밝히고 이 도서들이 갖는 의미(가치)도 살펴보고자 한다.
1866년 병인란(丙寅亂) 당시 강화도에 왕실의 전적(典籍)과 책이 보존되어 있던 장소는 두곳이었다.하나는 강화성내의 강화부(읍)에 있던 외규장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강화읍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정족산성 내의 전등사 부근에 있던 사고(장사각)와 그 별고인 선원보각이었다.
강화부는 1866년 10월 16일 로즈(Roze) 준장이 지휘하는 프랑스 해군에 의해 함락되었고, 프랑스군은 이곳에 20여 일 주둔했다. 이때 프랑스군은 외규장각에 있던 서적 340권, 몇 점의 족자, 지도 등을 모아, 목록을 장석한 후 공식적으로 접수하여, 주민들도 동원하여 군함에 적재했다. 11월 11일 퇴각할 때는 외규장각을 포함하여 행궁, 장년전, 관아, 창고, 등에 불을 질러 파괴했다.
정족산성 내에 있던 사고에는 『왕조실록』의 진본(眞本), 의궤, 등의 책이 보존되어 있었고, 선원각에는 왕실의 족보가 보관되어 있었다. 1866년 11월 9일 프랑스군 분견대 130여 명은 대포는 두고, 총만 메고, 강화읍 숙영지를 출발하여, 소풍 가는 기분으로 40리 길을 걸어 정족산성에 접근했다가, 천총(千摠) 양헌수의 휘하에 있던 조선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부상자만 30여 명을 내고 퇴각했다. 로즈 제독은 그 다음날 강화도에서 철수할 것을 결정, 인원과 물자의 탑재를 완료하고, 11월 11일 강화도를 떠났다. 따라서 정족산성 내의 사고와 선원각은 이때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으며, 1871년 미국 해군의 강화도 내침(신미양요) 때에도 무사했다. 여기 있던 『왕조실록』과 책들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관에 보존되고 있다.
그러면 이때 프랑스군이 가져간 조선 왕실의 책과 유물은 과연 무엇이며, 어디 있는가?
빠리에 책이 도착하자, 로즈 제독의 요청대로 해군성은 이 책들을 기증 형식으로 1867년 1월 당시의 황립도서관, 현재의 프랑스국립도서관(Biblioth que Nationale de France, BNF)에 넘겨 주었고, 그때부터 현재까지 BNF의 동양필사본부(D partement des Manuscrits Orientaux)에 보존되어 오고 있다. 그러니까 130여년 이상을 한 자리에서 일정한 온도, 습도, 광도(光度), 즉 동일한 환경에서 서가에 세워져 소중히 보존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BNF는 완성된지가 얼마 안되는 실로 엄청난 규모의 세계 최대 최신의 신관(新館)(프랑소아 미테랑 관이라고도 함)과 종래의 구관(舊館)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관은 빠리의 13구 톨비악 구역에 있고, 구관은 빠리 2구 리슐류 가(街)에 있다. 동양필사본부와 지도-도면부는 리슐류 가의 구관에 그대로 있다. BNF는 그 규모에 걸맞게 전 세계를 향한 문화의 전파력도 대단하다.
강화부를 점령한 프랑스 해군은 사령관 로즈 준장의 명에 따라 장교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선의 신비를 밝혀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책과 유물을 공식적으로 접수하여 나름대로 엄격한 목록을 작성했는데. 그 목록은 이렇다 :
큰 가철서(假綴書) 300권 작은 가철서(假綴書) 9권 흰색 나무 상자에 들어 있는 작은 책 13권 흰색 나무 상자에 들어 있는 작은 책 10권 흰색 나무 상자에 들어 있는 작은 책 8권 한-중-일 지도 1점 평면천체도 1점 여러 문구가 적힌 족자 7개 한문이 적혀 있는 회색 대리석판 3개 10.구리 경첩으로 묶여, 접을 수 있게 된 흰 대리석판으로 된 책(玉冊?) 3권 11.투구가 붙어 있는 갑옷 3벌 12. 가면 1개
최선을 다해 작성한 목록이지만 애매하기 짝이 없다. 그 이유는, 당시 프랑스군의 통역으로 동행했던 리델신부는 그 전에 조선에서 숨어서 10여년 전교활동을 했기 때문에 한국말은 잘했지만, 한문은 몰랐던 것이 틀림없으므로, 누구도 이 책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을 것이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는 다음과 같다. (괄호 속은 BNF 동양필사본부 한국본 "Cor en" 분류 번호임).
필사본 : 儀軌 191종 297권 (2402∼2697번, 2434'번, 24 93'번 (297권+나중에 추가된 1권) 인쇄본 : 璿源系譜記略 1종 3권 (유럽식 장정 1권)(2124번) 列聖御製 3종 26권 + 4책 (유럽식 장정 10권) (2125∼2134번) 列聖御製編 1종 2권 (유럽식 장정 1권) (2135번) 列聖御製目錄 1종 2권 (유럽식 장정 1권) (2136번) 楓皐集 1종 8권 (유럽식 장정 3권) (2137∼2139번) 합계 338권+4책(이를 2권으로 보면) 340권
지도 : 王伴 天下輿地圖 (190x 180cm, 1594년) (실은 17세기초의 조선본 동아시아지도)(지도-도면부 R s. Ge A 1120) 천체도 : 天象列次分野之圖 (138x46cm) (3470번) 족자 : 7점, 武安王朝碑銘(景慕宮睿製睿筆)외 6점(3476 ∼3482번)
1-5번 (프랑스 해군 목록 1-4번) : 이에 해당하는 책은 목록에 권수와 대강의 크기만 있으므로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리스 쿠랑(1865-1935)의 『조선서지』에 나와 있다. "한국 서지학의 금자탑", "불후의 명저"라 불리우는 이 책(전3권)이 출간 된 것은 1894-1896년이며, 증보 제4권은 1901년에 나왔다. 이 책은 숙명여대 이희재 교수(여,<한국서지>)가 한국어로 번역하여 번역판도 나와 있다. 1894년 이전에 프랑스국립도서관에 들어온 조선본은 강화도에서 온 것 뿐이므로 쿠랑의 이 책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의궤 191종 297권은 이미 정확히 파악되어 알려져 있다. BNF에 나중에 들어온 1권은 1970년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로즈 제독이 공식적으로 접수하여 가져온 책과는 관계가 없다. 아마도 병인양요 당시 참전했던 장교나 사병이 숨겨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BNF에 매각되었거나 기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의궤 297권 중 1권인 『휘경원 원소 도감 의궤』상권(Cor en 24 95번)은 1993년 9월 미테랑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하여 현재 서울에 있다.
쿠랑에 따르면, 위의 목록 2∼5번에 해당하는 책은, 2절판 크기의『璿源系譜記略』(선원계보기략, 왕실의 족보로 권 7, 8, 9 -덕종, 예종, 성종의 후손-가 유럽식 장정 1권으로 묶여 있음)(Cor en 21 24), 2절판 규모이지만 크기가 각기 다른 3종의 『列聖御製』(열성어제, 역대 임금이 지은 글을 모은 책)(Cor en 2125∼2134) 및 『列聖御製編』(열성어제편)(2135번),『列聖御製目錄』(열성어제목록) (2136번)이다. 그러니까 '열성어제' 관련은 원래 5종, 30권+4책(2권?)인데, 이것을 두권을 한데 묶어 서양식으로 장정한 것도 있어 현재 BNF에는 12권으로 되어 있다. (이 책들은 『列聖御製合附』(58권)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규장각에는 완질이 있다.)
6번(불 해군 목록 5번)의 작은 책 8권은 『楓皐集』(2137-2139번)으로, 큰 8절판이며, 원래 8권 16책인데 유럽식 장정으로 3권으로 묶었다. 이 책은 김조순의 문집이며 1854년에 철종이 쓴 서문이 있다.
이 '선원계보-열성어제'류 및 『풍고집』에다 가장 중요한 의궤류 191종 297권을 더하면 책은 숫자상으로 프랑스 해군이 작성한 목록과 거의 일치하는 것 같다 [338권 + 4책(=2권?)]. 의궤류의 권 수는 박병선 여사의 책에 의한 것이다. 쿠랑은 이를 108종 294권으로 분류했는데, 쿠랑의 저서는 방대한 자료를 다룬 것으로 약간 혼동도 있다. 물론 서고에 들어가서 정밀히 검토해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7번(불 해군 목록 6번) 한-중-일 지도 1점은, 현재 BNF의 지도-도면부에 소장되어 있으며, 중국인 "王伴 天下輿地圖 (1594년)"(R s. Ge A 1120)로 알려져 있는 지도임에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는 1867년에 해군성이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기증 번호 1235번)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의 『조선서지』에 이 지도가 빠져 있는데, 원래는 동양필사본부(Chinois 3466)에 있던 것을 1970년대 초에, 관리와 열람의 편의를 위해 지도도면부로 넘긴 듯하다. 이 지도에 대해서는 프랑스 학자 마르셀 데스통브(Marcel Destom- bes)가 1974년에 『아시아 학보』(Journal Asiatique) (162호)에 발표한 논문과 일본 학자 에노키 카즈오(1976) 및 우노 카츠타카(1977) 등의 논문이 있다. 이들 학자들은, 왕반의 원도(原圖)를 기본으로, 이를 수정하고, 한반도 부분은 과장되에 크게 그리고, 일본은 작게 그리는 등, 17세기 초기에 조선에서 제작된 것이 확실한 것으로 보고 있다. 5색 컬러 대형(190x180cm) 지도로, 지리학적인 면에서 기념비적이라 할 만큼 정교할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도 대단히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진명,『독도, 지리상의 재발견,삼인 간, 첫지도)
8번(불 해군 목록 7번) 천체평면도는 天象列次分野支圖(138x 46 cm) (3470번)인데, 하늘의 별자리를 돌에 새겨 서울의 관상청에 두었던 것의 탁본이다. 같은 이름의 천체도가 빠리의 동양어대학 도서관과 빠리 천문대에도 한 점씩 있는데, 이들은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였던 콜랭 드 플랑시(Collin de Plancy, 그는 1887-1991 및 1896-1906의 13년 간 서울에서 근무)가 수집하여 기증한 것이다.
9번(불 해군 목록 8번) 7개의 족자는 BNF 동양필사본부에 있다. 그것은 무안왕조비명(武安王朝碑銘)(경모궁예제예필 景慕宮睿製睿筆 - 사도세자의 글씨) 외 6폭(3476∼3482번)인데, 1980년 당시 한국 국회도서관의 成宅慶 사서국장이 빠리에 와서 BNF의 한국본 책들을 조사한 후 의궤 62권과 이들 족자도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도 해 갔으므로 그 복사본이 국회 도서관에 있을 것이다.
그 외, 프랑스 해군의 목록 9∼12 중 9∼10은 로즈 제독이 나폴레옹3세, 대군성 대신 샤스루-로바에게 각 1점씩 선물로 증정한다고 되어 있으나, 이들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언젠가 발견될 수도 있겠지만.
이상이 강화 외규장각에서 온 책과 유물의 전부인 것으로 보인다. 혹 빠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중국본으로 중국책 가운데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 도서관에 일단 들어온 책이 없어 지거나 하는 일은 도난등의 경우를 빼고는 생각할수 없다.
지금까지 언급한 도서 외에도 BNF에는 『소학집성』, 『수능엄경』,『천자문』 등 72종의 고서(Cor en 1∼72), 『여지요람』(輿地要覽, 13세기),『여지도』(輿地圖, 1644년 이후) 등 34점의 고지도와 고지도책(73∼106번), 삼재부 1장(107번), 부적 1장(108번)이 있다. 한국본 109번은, 1377년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한 물적 증거가되는, 유명한『직지심경』이고,110번은『육조대사법보단경』(1310년 목판 인쇄)이다. 이 고서 중에도 한글로 된 『뎡니의궤』(40번),『화성(수원)성역의궤』(41번),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 (42번) 등의 책도 있다.
이 책들은 병인양요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책들은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였던 콜랭 드 플랑시(1853-1923)가 수집하여 가지고 있다가, 1911년 3월27∼30일,그의 소장품이 빠리의 드루오(Drouot) 경매장에서 경매될 때 국립도서관이 구입한 것이며, 도서 목록에 플랑시의 이름의 약자 CP가 적혀 있다.
『직지심경』과『육조대사법보단경』은 그 경매 때 보석상 베베르(Vever)가 사서 가지고 있다가, 그가 죽은 후 1950년에 국립도서관에 기증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