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고려와 조선사회에서는 국가나 왕실의 중요 행사를 꼼꼼하게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을 ‘의궤(儀軌)’라고 한다. 의궤는 국왕에게 보고용으로 바치거나, 관청에 두고 여러 사람이 돌려 보면서 나중에 같은 행사를 하는데 참고하기도 했다. 의궤에는 국왕과 신하 사이에 주고받은 명령과 보고, 행사와 관련된 관청의 문서, 행사에 필요한 물품의 조달, 행사의 준비 과정, 행사에 동원된 사람과 그들의 업무, 행사가 끝난 다음 공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포상 등 행사의 절차와 행사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일일이 기록되어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그림을 실어서 행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하였다. 의궤가 작성되는 중요 행사는 왕비나 세자의 책봉, 왕실의 결혼, 장례나 제사, 국왕의 농사 시범이나 왕비의 양잠 시범, 공신들에 대한 포상 등 주로 의식 절차에 관한 것이었다. 대규모 토목 공사, 중요 건축물에 대한 보수 때에도 의궤가 만들어졌다. 경복궁을 만든다든지,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은 세종과 단종의 태실을 보수한 기록 등이 그 예이다. 이런 종류의 의궤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화성성역의궤>이다. <화성성역의궤>는 정조 때 현재의 수원에 화성을 쌓고 새로운 도시를 만든 일을 정리하여 기록한 책이다. <화성성역의궤>에는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의 숫자와 봉급이 맡은 일에 따라 밝혀져 있으며, 공사에 들어간 물품의 종류와 가격, 구입 경로가 종류별로 상세히 나타나 있다. 건물 각 부분과 공사에 사용된 도구들도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성을 쌓기 위해 헐어낸 기존 민가들의 철거 비용과,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에 대한 포상이나 공사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 등에 대한 치료비용까지 기록되어 있다. 마치 오늘날 건물의 설계도를 보거나, 대형 공사에서 시행되고 있는 ‘공사 실명제’를 생각나게 한다. <화성성역의궤>는 당시 사회에서 의궤를 작성하는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보여준다. 1781년 정조 때, 조선 정부는 왕실과 관련된 책들을 보관하기 위해 왕립 도서관의 역할을 하던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인 외규장각을 강화도에 만들었다. 이후 많은 의궤가 강화도의 외규장각에 보관되었다.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들은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일시 점령하였던 프랑스군에 의해 불에 타거나 약탈되어 프랑스로 건너갔다. 1990년대 초, 한국의 고속철도 차량 선정을 놓고 프랑스는 자기 나라의 떼제베가 일본, 독일의 고속철과 경쟁을 벌이게 되자, 당시 가져간 의궤를 비롯한 일부 책들을 반환하겠다는 뜻을 흘렸다. 그러나 막상 떼제베가 선정된 뒤에는 반환에 소극적인 자세로 바뀌어, 고속철 개통을 눈앞에 둔 지금에도 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김한종/한국 교원대 교수 |